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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여행기/이란) 페르세폴리스

by 빛의 예술가 2017. 7. 20.

[영화 페르세폴리스]


영화와 대중문화 읽기라는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거기서 소개해주는 영화는 대중문화와 관련되었다기 보단, 세계 정세와 역사 그리고 문화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예를들어 킬링필드, 블러드 다이아몬드, 호텔 르완다와 같은 그 당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영화를 보며, 

캄보디아에서 왜 학살이 있었으며, 시에라 리온은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으며, 르완다 내전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항상 영화를 함께 관람한 뒤에는 '그럴 듯한'분석이 뒤따랐는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 '분석'은 맘에 들지 않았다.

서른명 정도나 되는 사람이 한 영화를 본 뒤에 한 가지 생각을 할 수 없듯이,

강사가 연단에 서서 주장하는 그 나름의 분석은 '하나의 생각만이 정답'이라는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업의 막바지에 난 페르세폴리스라는 영화(만화 영화)를 관람했다.

중동이나 무슬림 세계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지식조차 없었던 나는 그 만화 영화를 보고 생각했다.


'와 흑백 색감 좋네'

(페르세폴리스는 흑백 영화다)


그렇게 난 이슬람 혁명이나 원리주의자의 주장이나, 서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진보와 퇴보의 관점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색감이 아름다운, 그래서 조금은 더 슬펐던 영화정도로만 기억한 채 사고의 회로를 꺼버렸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나, 난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한다.






[시라즈 - 마르다쉬에 - 페르세폴리스]


시라즈 셋째날 일정은 페르세폴리스 방문이었다.

아침 8시에 눈을 뜨자마자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오늘은 이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걸어야겠구나, 모자라도 쓰고 나가야겠네"


페르세폴리스 유적은 시라즈에서 가깝지만, 사실 마르브다슈트에란 도시가 훨씬 더 가깝다.

시라즈에서 마르브다슈트까지는 대략 52km, 그리고 마르브다슈트에에서 페르세폴리스까지는 약 8km정도가 떨어져있다.

다시말해 시라즈에서 페르세폴리스까지 가기위핸 대략 60km를 달려가야하는 것이다.


맘 같아선 택시를 잡아타고 한 방에 달려가면 좋겠지만, 우린 가난한 장기 여행자다.

절약할 수 있을 때는 비용을 절감하는 편이 좋다.


그래서 난 택시를 탔다.

물론 카란디쉬 버스 터미널(Karandish bus terminal)까지만이다. (20,000리알)

하지만 목적지는 이 터미널이 아닌데, 우린 저렴한 미니버스를 타고 마르다쉬에까지 가기 위해 조금 발걸음을 옮겨야한다.



내가 계속해서 '페르세폴리스', '마르브다슈트'라고 말하고 다니자 친절한 이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오- 아부함제"

아직도 아부함제가 뭔진 모르겠지만, 그게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터미널 맞은편 건물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아부함제, 아부함제"


그리고 그 곳으로 걸어가자 미니버스가 모여있었는데, 내가 "마르브다슈트?"라고 묻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이제 테헤란에서 받았던 일종의 압박도 많이 사라진 듯 했으며, 하루 종일 내리꽂는 햇볕에도 꽤나 익숙해진 상태였다.



카란디쉬 버스 터미널 맞은편으로 걸어가면 이렇게 미니버스를 타고 근교로 갈 수 있는 터미널이 나온다.

이 곳에서 52Km떨어진 마르브다슈트까지는 11,000리알, 한국돈으로 400원 정도다.



[마르브다슈트행 미니버스에 탑승하고 즐거워하고 있는 내 모습]


그리고 난 여행 중 처음으로 (벙)거지 모자를 썼는데, 세계일주 여행을 위해 준비물을 구입하던 중 동대문까지 걸어들어갔었다.

그러던 중 시장에서 발견한 모자가 이 거지 모자인 것이다.

이 모자를 쓰자 마치 인디아나존스라도 된 양,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버스는 9시 13분에 출발한다.

그리고 이란의 잘 닦여진 도로를 쌩쌩 달려 10시에 마르브다슈트 터미널에 도착한다.

미니버스여서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50분도 채 되지 않아 52km를 달려온 셈이다.



이제 이 곳에서 페르세폴리스까지는 8Km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선 걸어가는게 최선의 방법이지만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나도 한국에서는 10Km씩 조깅을 하곤 했지만, 이 곳에서 그런거 했다간 생명 보장 못한다.


행복하게 살자고 이러고 있는데, 생명이 위태로워지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택시 타자.


페르세폴리스는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택시 호객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보통 60,000리알에서 100,000리알까지 부르는데 절대 비싼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타도 된다. (한국돈 2~4천원)



물론 나는 깎았다.

50,000리알 낙찰


[너무 깎았나? 택시 기사님의 표정이 밝지 않다.]


계산해보면 택시 20,000리알, 미니버스 11,000리알, 또 택시 50,000리알

총 81,000리알로 시라즈에서 페르세폴리스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약 2.5$, 3,000원)


그렇게 10시 20분 택시는 출발한다.



이 곳에서 대략 20분 정도만 더 가면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하는데,

가는 길은 이처럼 아무 것도 없다.

길 옆에 심어놓은 가로수마저 없었다면, 이 택시기사가 나를 사막 한가운데로 납치해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저 뒤쪽 흙산이 보이면 제대로 가는게 맞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하자.

페르세폴리스 유적은 저 산 중턱을 포함, 아래쪽 평지에 있다.



10시 40분 페르세폴리스 정문에 도착한다.

이 곳 역시 UNESCO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는데, 정문에서 매표소까지 걸어가는데만도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엄청 넓기 때문에, 10분 정도 걸어서 들어가야된다.

그럼 이런 매표소가 나타난다.



페르세폴리스 유적 관람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니 참고하도록 하자.

그리고 입장권은 150,000리알이다.

물론 테헤란의 골레스탄 궁전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 유명한 페르세폴리스 유적 입장료와 150,000리알로 똑같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이 곳은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을 위해 'Tourist Information'을 따로 비치하고 있는데,

이란에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설움을 이 곳에서 전부 다 풀 수 있으니 별로 궁금한 것이 없더라도 찾아가자.


난 이 곳에서 테헤란에서 경찰에게 잡혔던 신세한탄도 하고, 마르브다슈트에서 이 곳까지 지불한 택시요금이 적정했는지, 그리고 시라즈의 맛집따위를 물어봤는데 나의 이 어처구니 없는 질문에 활짝 웃으며 하나씩 대꾸해주는 친절한 직원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티켓과 지도 한 장을 들고 난 페르세폴리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페르세+폴리스]


페르세폴리스는 사실 이 나라 말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사가르마타란 이름의 산을 에베레스트 산이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은 개념인데, 이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 말이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어인 파르사(Parsa)와 도시국가를 의미하는 폴리스(Polis)를 조합하여, '페르시아의 도시국가'인 페르세폴리스가 탄생한 것이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이 지명 역시 승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름인 셈이다.

(이란 사람들은 이 곳을 'Takht-e Jamshid'(잠쉬드 왕의 궁전) 이라고 부른다.)



이 페르세폴리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동/서양 최초의 전쟁을 알아둘 필요가 있는데,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그 것이다.


기원전 약 500년 경, 고대 그리스는 아테네를 비롯한 여러 도시 국가들의 군집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적을 스파르타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고대 그리스의 최대의 적은 동쪽의 제국 페르시아였다.



기원전 499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이오니아(현재 터키의 아시아 부분)는 페르시아에 독립을 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때 아테네에서 군대를 보내 이오니아의 독립을 돕게 된다.


아테네의 입장에서는 에게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기위한 둘도 없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가난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는 이오니아를 진압하고 보복이란 명분으로 아테네를 정벌하러 나선다.


이 것이 그리스-페르시아 1차전쟁인데, 페르시아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그리스 북부의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를 차례로 정벌한다. (B.C 492)

그리고 다음으로 아테네를 향해 군대를 전진시키는데, 페르시아 함대가 폭풍을 만나 함락에는 실패한 채 전쟁이 끝난다.



그리고 여기서 끝낼 수 없었던 다리우스1세는 제 2차 정벌에 나서게 되는데 불과 2년 후 이뤄진 일이었다.

전쟁터는 그 유명한 '마라톤 평원'이었다.

아테네는 일종의 학익진 전법으로 페르시아 군을 에워싼 후 학살을 했는데, 여기서 페르시아는 대패를 하고 만다.



그리고 기원전 480년, 다리우스1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1세는 아버지가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아테네로 향하는데

이 것이 3차 원정이다.

세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은 채 페르시아에 대항했지만,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에 전멸하고 만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페르시아 해군과 아테네의 해군은 해전을 치르게 되는데, 이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다.


아테네는 페르시아 해군을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해 박살을 내버린다.

(이순신 장군 명량 대첩의 기원전 판이라고 보면 된다. 조류가 세기로 유명한 울돌목으로 왜군을 유인해 섬멸시킨 전법과 유사하다.)


여기까지가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사다.

그렇다. 

페르시아는 동서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었지만 일개 도시국가인 아테네를 정복하지 못한 채 끝난 것이다.



그리고 이 페르세폴리스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준공이 시작된 아키메네스 왕조의 수도다.

처음 입장을 한 후 보이는 만국의 문 그리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터를 바라보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이 정도로 거대하고 섬세한 유적을 남길 정도로 번성했던 제국이 왜 아테네 하나 정벌하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페르세폴리스 안을 걸었다.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얘기했으니, 이제 마케도니아 얘기를 조금 더 하기로 한다.


내가 적은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마케도니아가 기억날텐데, (기억 안 나면 대충 읽은거다. 올라가서 자세히 읽어라)

두 나라의 1차 전쟁 때,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당한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가 그 곳이다.


이 마케도니아가 유명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3세 때문인데,

페르시아에 점령을 당한 후 대략 150년 후 알렉산드로스 3세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일대를 점령하기 시작하는데,

내분에 빠져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차례차례 이 알렉산드로스3세에 점령당한다.


이 것이 마케도니아 제국 혹은 알렉산드로스 제국이라 불리는 헬레니즘 세계의 시작인 것이다.


알렉산드로스3세는 페르시아를 향해 군대를 움직이는데, 이소스, 바빌론, 페르세폴리스까지 차례차례 순식간에 점령하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출하는데 불과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페르세폴리스 유적은 그때 파괴된 것이다.


여기서 학살이 조금씩 갈리는데,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 웅장한 규모의 유적(과거에는 도시)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불태웠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과거사를 설명한 것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페르세폴리스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페르세폴리스에는 이렇게 부숴지고, 깨지고, 송두리째 날아간 건축물들이 공터에 방치되어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유적 정도를 상상하고 이 곳에 도착한다면 크게 실망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사를 알고 보면 그 아픔과 절실함을 남아있는 건축물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유적의 90%이상이 무너진 채, 그 자취를 감춘 상태이지만,

남아있는 10%가 채 되지 않는 기둥과 탑, 건축물에서, 그리고 그 웅장한 터에서 기원전 만들어진 페르시아 제국의 실로 강력한 힘을 알 수 있었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면 정교하게 음각과 양각을 활용한 벽화부터, 마치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동물 조각상들이 온종일 시선을 빼앗는다.



지도에는 남아있는 건물들의 이름과, 그 곳의 용도나 목적에 대해 설명이 되어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페르세폴리스를 느끼기 위해서는 그 건축물과 이름과 목적에 대해 매칭을 하는 작업이 아니라 산을 올라가는 편이 바람직하다.



땅에서 보면 이러한 터와 남아있는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유적 뒤편을 감싸고 있는 흙산을 올라가게 되면 비로소 페르세폴리스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산을 올라가는데는 대략 1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으니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산을 올라가보도록 하자.


심호흡 한번 하고, 땀을 닦는다.

그리고 난 진짜 페르세폴리스를 만난다.



거의 대부분의 유적이 불타고, 파괴되었지만 이 곳에서 터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페르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이 될 수 있었는지'


산중턱에 걸터앉은 채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이 무너진 부분에는 어떤 건물이 있었을 것 같고, 저 반토막난 건물은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지. 또 현재 복구하고 있는 저 탑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 채 생각했다.





[개인, 사회 그들의 이야기, 역사]


글의 서두에 적은 만화 영화 페르세폴리스는 이 유적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마이클 잭슨과 아바를 좋아하며, 'Funk is not dead'라는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이란 소녀 마르잔의 눈에 비친 '이슬람 혁명'시절 이란의 모습이다.

영화는 이 꼬마 소녀의 눈에 비친 이해할 수 없고, 참담한 모습을 잘 그려냈는데,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이뤄내는 이란 사회의 모습.

격변기를 거친 후 현재가 된 지금, 이미 그 이야기는 역사가 되었다.


때로 그 '역사'는 부흥하기도 하지만 동명의 유적지인 페르세폴리스처럼 처참하게 무너지기도 하고, 

언젠가 다시 멋지게 부활할 그날을 위한 인내도 갖는다.




그렇게 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겨나고, 가장 강력했던, 하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제국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안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오만가지 상념이 생각이 되고, 그 생각은 이 유적처럼 산산이 조각나 이내 내 머릿속은 공허해진다.



이 곳, 페르세폴리스는 깨지고 부숴지고, 불타오르고, 약탈당해 과거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린 채 우뚝 솟아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떤 것을 떠올리든, 그건 모두가 같지 아니할 것이다.

입장할 때는 설렘과 기대에 젖어 모험에 대한 기대를 한껏 품은 채 웃으며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상념에 빠져 쉬이 웃음지을 수 없게되는 곳.


페르세폴리스다.




물론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줄 때는 웃어야한다.




페르세폴리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