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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여행기/이란) 세계의 절반 이스파한으로

by 빛의 예술가 2017. 7. 25.

[시라즈 - 카란디쉬 버스 터미널]


시라즈에서 보내는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이스파한으로 갈 예정인데, 버스티켓은 어제 저녁 미리 예매해두었다.

이 곳은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 답게, 터미널 내부에 여행객들을 위한 안내소도 마련되어 있었고.

외국인이 구매한 버스 티켓을 해독(?)하는 업무도 겸해주고 있다.



이렇게 출발 시간과 플랫폼을 아라비아 숫자로 친절하게 적어준다.


하지만 이란을 여행하고 있는 우리는 이미 아랍숫자를 해독할 수 있다.

(테헤란 남부터미널에서 표를 예매하며 아랍숫자 학습에 대한 중요성을 배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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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숫자를 봄과 동시에 읽어내려갈 정도로 능숙하진 못하지만, 그건 이 곳 시라즈 카란디쉬 터미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버스 출발 시간은 아침 8시였기 때문에, 느긋하게 7시 30분에 도착하여 플랫폼에 앉아있자.

그럼 무수히 많은 버스가 오고 가는 장면을 목도할 수 있는데, 그 때마다 버스 번호판을 해독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30분 정도 버스 번호판을 읽고 있으니, 아랍 숫자를 능숙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배워둔 아랍 숫자 해독 능력은 북부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까지 나에게 큰 도움을 줬는데,

이슬람 문화권인 이집트, 수단에서도 이 아랍 숫자를 쓰는 경우가 허다하니 지구를 한바퀴 여행하는 우리들은 이 숫자를 꼭 공부해야만 한다.


더불어 이 시라즈 버스 터미널은 하나의 거대한 공원처럼 잘 꾸며져있는데, 

언뜻보면 관리를 하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란 것 처럼 보이지만, 이 곳의 기후와 지리적 조건을 고려하였을 때 이 '녹음'은 꽤나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녹음 짙은 멋진 버스 터미널에서는 아랍어 읽기 공부를 하고 있자니,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유치원에 다시 입학해서 숫자 읽기 공부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느껴질 정도로.


장기간 여행을 하다보면 외딴 곳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그 곳에서는 개인이 살아왔던 과거 경험과 지식이 통용될 때도 있겠지만, 그런 경험과 지식이 배격(排擊)당할 때도 존재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느끼는 것이 '인지 부조화'인데 이 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지는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혹은 부조화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그 때 발현되는 태도나 생각, 행동에서 난 '자아'를 강력하게 느낀다.

지금 외딴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아랍 숫자 읽기 공부를 하며 느낀 단상이다.




버스는 정확하게 8시에 도착했으며,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풍성한 간식 꾸러미를 받는다.



8시 10분 버스가 출발함과 동시에 나는 간식을 먹으며 창 밖으로 펼쳐진 끝도 없는 흙색 광경을 멍청히 바라본다.

이란에는 사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암괴석도 존재하는데 키가 작은 식물들이 빼곡히 자라있는 것을 보며 그들의 생명력에 탄복한다.



이란 시라즈에서 이스파한까지는 대략 7시간 정도가 걸린다.

테헤란에서 시라즈로 내려갔던 길을 다시 거슬로 올라가는 셈인데, 이스파한은 테헤란과 시라즈의 대략 중간 지점에 위치해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곡선이 거의 없는 일직선 도로에 덧대어 푹신한 버스 좌석은 나를 단잠에 빠져들게 한다.

그렇게 눈 깜빡 하면 이스파한에 도착할 수 있다.




[세계의 절반, 이스파한]


이란, 이스파한을 수식하는 문장 중 가장 멋지고 유명한 문장이 있다.


"세계의 절반, 이스파한"


조금은 배타적이고, 또 자부심도 느껴지는 이 문장은 이란 속담에도 등장할 정도로 꽤나 역사가 오래 된 말이다.

1598년 수도를 천도하며 16~17세기경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된 이스파한은 자그로스 산맥에서 발원한 자얀데 강이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이 때문에 유명한 다리(Bridge)가 4곳이나 있고,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모스크와 미나레트를 발견할 수 있고, 엄청난 규모의 광장인 이맘 광장이 있는 곳이다.




이스파한의 중심 도로라 할 수 있는 Chahar Bagh Paeen ST.다.

시오세 다리에서 내가 이스파한에서 묵을 숙소인 Amir Kabir 호스텔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져있는데,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로수 조경이 잘 되어있다.

나무가 충분히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이 거리를 걸어다니더라도 시라즈에서 보다 훨씬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여행할 당시는 이란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자주 가는 숙소로 찾아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이 호스텔 역시 테헤란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이 추천한 숙소였다.



4인실 도미토리 모습

왼쪽 파랑색 배낭이 내꺼다.


그리고 나는 이 이스파한이란 도시가 과연 세계의 절반이랑 호칭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인지 궁금했다.

당장에라도 도시 구석 구석을 걸어다니고 싶었지만 해가 저물기까진 4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에서 약 1.5Km정도 떨어져있는 이맘 광장만 보고 돌아오기로 마음 먹는다.



지도를 보며 광장을 찾아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이맘 광장에 찾아가서도 '대체 어디가 이맘 광장인지 쉽게 알 수가 없다'는데 있다.


이 이맘 광장(Naqsh-e Jahan sq.)은 가로 512m, 세로 160m로 8만 제곱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장인데 하늘에서 찍지 않는다면 그 모습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예를들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광장인 광화문 광장은 가로 34m, 세로 740m로 이루어져있는데 대략 2만 5천 제곱미터 수준이다.

단순 계산으로 대략 3배 정도가 넓은 셈이다.

(물론 우리 광화문 광장은 유사시에 10차선 도로를 봉쇄하고 예비광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 밖에 중국의 천안문 광장은 44만 제곱미터로 세상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다.)



광장의 모습은 대략 이렇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전체 광장을 찍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사진으로도 충분히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스파한의 명물 이맘광장은 이러한 거대한 크기 로 유명할 뿐만이 아니라 가족 단위, 혹은 친구 단위로 소풍을 오는 장소이기도 한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단한 음식이나 차를 나눠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는 단란한 모습이 꽤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늘은 동쪽 끝에 위치한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만 보기로 하자.

어차피 이맘광장은 너무 넓어 오늘 내로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고 집중하는 편이 옳다.


그렇게 한참을 동쪽으로 걸어가면 셰이크로프트폴라 모스크의 초입에 들어설 수 있다.






테헤란 그리고 시라즈에서 수없이 봤지만 언제나 이 나라의 모스크는 아름답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굉장히 안정적으로 설계되어있었고, 타일의 장식이나 색감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고려청자는 OO색이기 때문에 매우 아름답습니다. 여기서 OO색을 쓰시오." 따위의 교육을 받아온 내가,

과거 유물이나 유적에 관심을 가질리 만무했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고, 찾아보게 되고, 어쩌면 사랑하게 된다.

이 나라의 모스크는 내가 '유물과 유적' 다시 말해 과거를 생각하는 관점을 바꿀 수 있게 한 계기일지도 모르겠다.



입장료는 100,000리알이다.

이 쯤 되면 테헤란의 골레스탄 궁전이 얼마나 비싼 입장료였는지 알게 된다.

이 광장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있는데, 이란에서 가게 되는 유적지나 관광지는 보통 100,000~200,000리알 수준의 입장료를 유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시간이 갈 수록 가격이 오른다, 참고하자)




그렇게 입장료를 지불하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 우린 모스크에 들어왔는데 별천지가 보이는 것이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진 내부에서 난 고개를 들어 한참 천장을 바라보며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백이 말했던 별유천지비인간은 이런 장면을 보고 쓴 시일까? 아니다. 그럴리 없다. 그 사람은 자연을 노래한 사람이었지, 그런데 이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뭐라고 해야하지? 별유천지유인간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입구로 들어간다.

이 곳이 별천지라면 천사라도 만날 수 있는걸까? 라고 기대하고 들어가지만 그런거 없다.

이런 털복숭이 아저씨들이 특정한 부분에 모여있는데, 막 수다도 떨고 그러신다.



감상적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던 나는, 털복숭이 아저씨들을 만나 매우 실망했는데

역시 이백이 옳았다는 생각까지 하며 허탈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들은 왜 저기 모여있는걸까?

궁금해하며 다가간다.



그러던 중 까만색 대리석에 올라선 아저씨가 크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런 털복숭이 이란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에 나는 깜짝 놀란다.





궁금했던 나는 '어떻게 이렇게 소리가 크게 울려요?' 라고 물어본다.

과연 내 질문을 알아들은건진 모르겠지만, 털복숭이 아저씨는 손가락을 천장으로 향한다.



그와 동시에 다시 노래(사실 이슬람의 기도다)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설명으로 듣는 것보다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설교를 하거나, 기도를 하게되면 그 소리가 이 화려한 천장에 반사되고 모스크 앞에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린다는 것이다.


설마 이 털복숭이 아저씨가 마술처럼 트릭을 쓰는건 아니겠지?

라는 의문에 나도 서봤다.



잘 생긴 동양인 남자가 이 곳에 서자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난 '춤이라도 춰야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신성한 모스크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시 이란 경찰에 잡혀갈 지도 모른다.


소심하게 "아~~" "아~~~~~"하고 소리를 내어보는데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분명 들렸다.

내 목소리가 모스크의 천장을 때리고 온 사방으로 울려펴지는 멋진 순간이었다.


소리를 질러 머리가 핑핑돌아 별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정말 여기가 별까지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구나.

그렇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맘 광장의 북쪽은 이렇게 길고 긴 바자르가 형성되어있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다시 이 곳을 찾기로 마음 먹은 후 발길을 돌린다.

이 바자르(시장)에서는 이런 접시와 호리병도 판매하고 있는데, 내가 장기여행자가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몇개 구입해서 잘 포장한 뒤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마치 모스크의 타일을 형상화한 듯 아름다운 무늬에 새파랗게 빛나는 색감이며, 모든 것이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띄고 있었다.



고작 3,4시간 정도 구경했을 뿐인데,

왜 이 곳이 세계의 절반이라 불리는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곳.


이스파한 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