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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여행기/이란) 시오세 다리

by 빛의 예술가 2017. 8. 17.

[사막의 오아시스]



사실 이 도시 이스파한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이란이 거대한 사막의 나라라고 하면, 이 도시는 북쪽 자그로스 산맥에서 발원한 자얀데강이 도시 한 복판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상상속의 오아시스라고 하면 온통 모래사막이 펼쳐져있고, 사막 한 가운데 어디쯤 푸른 빛으로 빛나는 호수가 보이고, 그 주변에는 야자수 몇 그루정도 서 있는 모습일게다.


하지만 호수 대신 강이 흐른다고 해서 그 곳이 오아시스가 아니라는 법은 없다.


우리 상상속의 오아시스가 '샘 오아시스'라면, 이 곳은 '하천 오아시스'정도 되는 셈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자얀데 강변에 세워진 다리들을 보러 가는 길이다.






숙소에서 자얀데강으로 걸어가는 길은 쉽다.


남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되는데, 이렇게 거대한 가로수가 조성되어있어 따가운 햇살을 피해 기분좋게 걸어갈 수 있다.


그리고 길을 걷다 보면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꽃들도 보이고 한다.




난 유독 이란에서 무궁화를 많이 발견했는데, 테헤란에서 발견한 후로 두 번째이다.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국화'라고 해서 그 꽃이 그 나라에만 서식하는건 아닐테니 전향적인 사고로 넘어가기로 한다.


어쩌면 가지가 잘 꺾이지 않아 울타리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란의 국화는 '튤립'이다.


'뭐야 이란이랑 완전 어울리지 않는 꽃 아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논리로라면 Hibiscus syriacus와 대한민국의 공통점에 대해 서술할 수 없음은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갑자기 눈 앞에 들이닥친 건축물이 있었다.


시오세 폴 (시오세 다리)이다.






[시오세 다리]



그런데 뭔가가 부족하다.


웅장하게 2층으로 페르시아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다리는 맞는데, 중요한 것 하나를 빼먹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이유없이 초조해하고 있을 찰나, 중요한 것 하나가 생각났다.


그래 오아시스.


물이 없었다.




[시오세 다리의 측면]



물이 메말라버려 사람들이 다리 위로 걸어다니는 것이 아닌, 햇빛을 피해 다리 아래로 천천히 걸어다니고 있었다.


혹시나 왼쪽 측면은 물이 남아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본다.




좌우가 온통 메말라 버렸다.


'이게 뭐야'


그때 내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였다. '이게 뭐야'



라오스 방비엥에서 자전거를 타고 힘들게 찾아갔던 '블루 라군'에서 황토빛 물을 봤을 때도 이렇게 처참한 기분은 아니었는데,


메말라버린 강변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시오세 다리를 보자 처참한 기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눈물이라도 조금 흘려서 말라버린 자얀데강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하며,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나 같은 여행자일 수도 있겠고, 이스파한에 살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 중에서 왠지 영어를 잘 할 것 같은 사람을 골라 묻기 시작한다.


"여기 왜 이렇게 말랐어? 가뭄이야?"



첫 번째 만난 사람은 손사레를 치며 나를 떠났으며,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이유 없이 생글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난 사람이 그에대한 답을 주었다.


"벌써 수 년째 가뭄이 지속되고 있어, 강이 메말라버렸다."




그렇다.


이 곳은 메말라버린 강 위에 우뚝 서 있는 시오세 다리다.


난 비가 내리지 않는 땅을 바라보며 하늘을 원망하는 농부의 심정으로 다리 주변의 카페에 들어가 차이를 마신다.


생각한다.


'화석연료의 남용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자얀데 강의 증발에 대한 글이라도 써야하나?'


난 배경지식이 없는데, 아니 이게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있긴 한걸까?


그렇게 고심하며 다시 다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뭐 강이 말라버린 덕분에 이런 영화 포스터 같은 처참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그래도 저 부분은 풀이 조금 남아있는걸로 봐서, 지하수까지 메말라버린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뭐 어쩌겠나, 그래도 왔으니 한번 돌아봐야지.




아저씨가 주저앉아있는 모습이 내 마음과 같았다.


나도 저렇게 주저앉아 한숨이라도 퍽퍽 쉬고 싶었지만, 이 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중 나만 잘생긴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또 다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주목 = 경찰 연행


이란에서는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최대한 현지인들과 동화되어 다리 곳곳을 누비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잘생긴 동양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이스파한에는 시오세 다리 뿐만이 아니라 3개의 다리가 더 있다.


시오세 다리를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쭉쭉 걸어가면 다리가 곳곳에 펼쳐져 있는데, 상황이 이 지경에 처했으니 다른 다리를 가 봐도 큰 감흥이 없을거라 판단했다.


차라리 한 밤중이 되어서 이 다리를 다시 오자. 


한 밤중이라면 강이 보이지 않아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테다.


그리고 이 곳의 야경은 기가막힐 정도로 아름답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오세 다리 1층은 이렇게 햇볕을 피해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feat.물도 메말랐는데 그냥 다리 밑에서 놀자]






그래, 내일 저녁에 다시 오자.


그렇게 다짐하고 시오세 다리를 등지고 걷기 시작한다.



이번엔 반대쪽 길에서 숙소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난 고향의 음식을 발견하고 만다.





[고향의 음식]



난 이란에서 터키를 여행하는 동안 생각한 것이 있었다.


"이란과 터키 사이에,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난 평생동안 케밥을 먹지 않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난 케밥에 실증이 났는데, 가난한 여행자에게 그리 다양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여 적어도 이틀에 한 끼 정도는 케밥을 먹어야만 했는데, 오늘 메말라 버린 자얀데 강에 실망한 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고향의 음식을 발견해버린 것이다.


소개한다. 


이란, 이스파한에서 발견한 고향의 음식


치킨이다.




테헤란 편에서 말했듯이, 이란은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


'사이가 좋지 않다'는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더욱 심각하게 와닿는 설명은 이것이다.


"이란에는 KFC없고, 맥도날드 없고, 버거킹 없고..."



가난한 여행자가 타지에서 맛볼 수 있는 고향의 음식을 전혀 팔지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현지에서 치킨을 발견하다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게로 들어간다. (심지어 가격도 무지 저렴하다)






[아차, 사진을 찍고 먹었어야 했는데,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한잎 베어물고 사진을 찍었다]



군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햄버-그 빵'도 주는데, 사실 탄수화물은 섭취하지 않아도 좋았다.


치킨이 너무 맛있어서 이렇게 먹고, 이 것과 똑같은 메뉴를 포장해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난 이 곳에서 고향의 맛을 느끼는 도중에 정말 감격해서 강이 말라버린데서 느꼈던 '실망감'을 잊어버렸다.


아마 나란 인간은 '포만감'과 '그리움'이란 감정이 '실망감'을 압도하는 듯 했다.



배가 불렀다.


참, 시오세 다리는 내일 밤에 다시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