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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여행기/이란) 이스파한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

by 빛의 예술가 2017. 8. 10.

[테헤란과 이스파한]


테헤란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들은 그렇게 말했었다.

"숙소 바깥으로 가기 싫어"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다.

나 역시 이란에 입국한 첫 날부터 경찰에 연행(?)당했으며,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 동양인 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일삼는 개구장이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 정도 되면 양자택일의 문제가 남는다.


떠날 것이냐? 

남을 것이냐?


개개인의 사정은 있었겠지만, 테헤란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들은 이 나라(혹은 도시)를 떠나지도 않았고 남아서 여행을 하지도 않았다.

호스텔에 고립된 채 제대로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반대로 떠나지도 않았었다.



이스파한 둘째날.

또 다시 일본인 친구를 만났다.

테헤란에서 만났던 친구들 중 한 명은 아니었지만, 같은 동양인 여행자를 만났다는 사실로도 나를 수다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일본어로 인사했다.


"곤니치와~"

- "아 곤니치와~ 니혼징데스까?"


일본어로 시작된 대화는 보통 거기서 끝난다.

하지만 난 일본어로 조금 더 많은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닙니다. 전 한국 사람입니다.' 그 밖에 '날씨가 좋네요', 혹은 '바보야, 닥쳐' 따위의 문장을 정확한 발음으로 구사할 수 있다.


(물론 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바보라고 말하지도, 닥치라고 하지도 않는다.)



22살, 이름은 료라고 했다.

어떻게 자기가 일본인인줄 알았냐는 질문에, 대답 없이 웃어넘겼다.

이 꼬맹이(?)는 그냥 봐도 일본 사람처럼 생긴 것이다.



[그냥 봐도 일본 사람 처럼 생긴 료氏 22살]



난 오전에 체헬소툰 궁전과 이맘모스크를 다시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후에 시간이 된다면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얘기한다.

료는 흔쾌히 수락하며, 친구들이 더 있으니 다 같이 저녁에 보자고 얘기한다.



테헤란에서 몇 명의 일본 친구들을 만났더라?

확실히 기억나는건 여자가 두 명 이상이었고, 남자가 두 명 이상이었다.

그리고 난 이스파한에서 다시 일본인 친구들 네 명을 만난다.

이번에도 여자가 두 명, 남자가 두 명이었지만, 테헤란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마 이 곳이 이스파한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


이란에 도착한지 일 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당신이 어느 국가에서 왔든 이란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을텐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케밥'이다.


이 나라는 음식점에서 파는 케밥이 썩 맛있지 않다.

우습게도 케밥을 제외한 음식은 모두 맛있게 먹었는데, 문제는 케밥 파는 음식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케밥을 먹으러 갔다.




왼쪽 남자는 미쯔.

나보다 나이가 많은 31살이었다.


두번째 여자는 나와 방을 함께 쓰고 있는 사람이었고 남자친구가 일본에 있다고 했다.

왜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남자친구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일본인들은 이란이란 나라 어떻게 생각해요? 조금 위험한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맞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걱정 안된대요? 혼자 여행하는데 안 말리던가요?"


무서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건 자기가 상관할 바 아니며, 자기가 좋아하는 여행을 만류할 경우 곧장 헤어지겠다고 대답한다.



세 번째 여자는 처음 만날 때 부터 범상치 않아 보였다.

외국인 여자 여행자들은 보통 히잡을 사서 머리에 두르거나, 지니고 있는 스카프로 그 것을 대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에서나 입을 법한 부르카를 입고 있었다.


농담삼아 물어본다.

"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셨어요?"


- "어머, 어떻게 알았어요?"


"..."


네번째 남자는 아까 소개한 료.

이 중에 영어를 가장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친구였는데, 자꾸 내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따위의 질문.

(이 당시 한국의 대통령은 박근혜 氏 였다)


뭔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린 일본판 지구를 간다 (한국에는 '세계를 간다'란 이름으로 번역된 책이 있음)에서 소개해주는 맛집을 찾아 걷기 시작한다.




지구를 간다 이란편을 쓴 저자가 케밥을 사랑하는건지, 온통 케밥집이 적혀있었다.

그 중에 맛있기로 소문난 가게로 찾아들어갔는데, 그냥 케밥맛이 나는 케밥집이었다.


난 궁금했던 점을 몇 가지 더 물어보기로 맘 먹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일본 여자.


"그런데 정말 아프가니스탄에서 온거 맞아요?"

- "네, 그럼요"


"한국은 아프가니스탄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되어있는데.."

- "아 그래요?"


"거짓말 하는거죠?"


그러자 아프가니스탄에서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진짜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덧붙여 남자친구가 미군인데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자 료는 내게 자꾸 질문을 한다.

- "아까 대한민국 대통령이 싫다고 했는데 이유가 뭐야?"


거기서 한계가 왔다.

나름 영어로 의사표현을 확실히 할 수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대통령이 싫은 이유를 설명하려하니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혹시 대통령을 향한 증오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게 내가 여행 중 처음으로 느꼈던 좌절감이었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못하다니' = (대통령에 대한 증오가 이렇게 부족하다니)


하지만 이 것 하나만은 제대로 이야기 했다.

"지금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이었고, 그 아버지가 하던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자꾸 이런 얘기를 하니 정치적인 블로그로 변질되는 느낌이지만, 이건 정치적 평가의 영역이 아닌 사실에 기반한 영역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란 차이 (Irani Chai]


식사를 마친 후 난 이 기묘한(?) 혹은 특색있는(?) 친구들과 함께 차를 마시러 갔다.

이번에도 지구를 간다란 여행 소개책에 나오는 유명한 찻집이었는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질문한다.


"일본 사람들은 여행할 때 항상 그 책에서 소개된 곳만 가는거야?"

 -"응. 대부분 그래"


이 사람들은 정말 이상하다.



하지만 여행 책자에 소개될 정도로 특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카페였는데, 

천장에 산만하게 장식된, 하지만 그 것 자체로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었다.



산만한 구성속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이란 사람들은 이런 카페를 올 때 보통 남자들 따로, 여자들 따로 자리를 구분한다.

(물론 가족들이 함께 앉는 가족석도 따로 있다)



우리는 누가봐도 전혀 가족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여행자라는 특수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남녀가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서빙되는 이란 전통차]



이란 사람들(주로 남자)은 차를 마시며 물담배(시샤)를 피우는데, 

이건 중동 어느 나라를 가도 만나볼 수 있는 문화였기 때문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역시 이들은 달랐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여자는 저건 꼭 해봐야겠다고 노래를 부른다.




이란에서 이런 카페에 남녀가 함께 앉아있는 와중 여자가 물담배를 피워도 되는걸까?

난 그런 광경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걱정되는게 사실이었지만, 당연히 아프가니스탄 일본소녀는 그런거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웃기는 사진을 찍기 위해 료에게 선글라스까지 빌려쓴 채, 물담배 삼매경인 아프가니스탄 소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친구들을 만나 엄청나게 웃을 수 있었다.

조금 괴팍하게 소개를 했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일본인인 이 그룹은 나를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대화를 해줬다.

(료를 제외한 나머지는 영어를 잘 못했다, 그 것만 봐도 배려심 깊은 친구들이었음이 확실하다.)


이들은 테헤란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친구들이었다.

어쩌면 이 곳이 테헤란이 아니었기 때문에 웃고 떠들고 기괴한 사진을 찍으며 다시 웃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차를 마시고, 이들과 얘기하는 와중 모처럼 긴장이 풀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