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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여행기/이란) 이란 여행의 끝 혹은 재개

by 빛의 예술가 2017. 8. 26.

[케밥에 지쳐갈 때]


어제 발견한 고향의 맛집도 한계가 있었다.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케밥에 질린걸까?' 천천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곳에 도착하기 전 내가 여행했던 곳이 인도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인도를 여행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사실 인도에서 매일같이 먹던 커리나 탄두리치킨, 난, 차오멘(엄밀히 따지면 중국 음식이지만 인도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 같은 음식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었다.

그 정도로 맛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때는 생기 발랄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 만큼 맛있게 음식을 먹었던게 아닐까?


난 아마 지쳐있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케밥 냄새가 났다.


'도저히 못 해먹겠다. 아르메니아로 가자.'


그렇게 난 갑작스레 이란의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 '타브리즈'행 버스 티켓을 끊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타브리즈에서 이란-아르메니아의 국경도시 졸파로 쉽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카베 터미널?"


이라고 묻는 내게 한 사람이 친절히 다가온다.

선글라스를 낀 잘 생긴 이란 남자였는데, 영어를 꽤나 유창하게 했다.

그래서 몇 마디 덧붙인다.


"타브리즈 행 버스표를 사려고 한다. 카베 터미널로 가면 되느냐?"


그 남자는 그 곳으로 가면 된다고 하며, 버스 카드가 있는지 내게 물었다.


"버스 카드? 그런거 없는데?"


그렇게 대답하며 순간적으로 머리를 회전했다.

'대체 버스 카드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는걸까? 그런데 왜 나한테 시내버스 카드 유무 여부를 확인하는거지?'


난 그렇게 남자를 조금 경계하며 다가오는 버스에 올라탄다.

그때 남자가 나를 잡더니 기다리라고 얘기를 한다.

-_-? <- 내가 이런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자 기상천외한 광경이 벌어졌다.

자기 지갑에서 버스 카드를 꺼내더니 나 대신 카드를 찍어주고 기사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_^ <- 순간 표정이 이렇게 바뀌었다.

본인은 버스를 타지도 않았지만, 버스카드가 없는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이렇게 큰 선물을 준 것이다.

이렇게 이란에는 장난꾸러기들도 많지만, 외국인에게 친절한 사람도 꽤나 많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뭐 어쩌면 내가 가난해 보여서 찍어준 걸지도 모른다, 사진을 정리하던 중 내 몰골을 보니 그럴 법도 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공짜(?)로 버스를 탑승하고 즐거워하며 셀카를 찍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온통 여자 뿐이다.


'음.. 뭐지?'


또 머리를 광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테헤란의 지하철에서는 분명 여성 전용칸이 있긴 했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여성 전용 버스도 있는건가? 혹시 내가 잘못 탑승한건가?'



심지어 사람들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넌 대체 뭔데 이 버스에 탑승했냐?' 고 얼굴로 말을 하는 듯한 이란 여인들.


'젠장 또 경찰에 연행되겠구나,'

(본인은 이란 입국 첫날부터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다)


다시 경찰서에서 영어로 내가 버스에 탑승한 당위성을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있을 찰나, 남자 한 명이 버스에 탑승한다.

'휴~'

안도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큰 벌은 받지 않겠지만, 경찰에 연행되는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버스는 카베 터미널에 도착한다.


[육교 위에서 바라본 카베 버스 터미널 전경]


오밀조밀하게 황토빛으로 지어진 카베 터미널은 숙소에서 북쪽으로 대략 3~4km 지점에 위치해있다.

이스파한은 관광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에 영어로 친절하게 표기가 되어있으니 잘 보고 걸어가면 된다.



이란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친절함이다.

심지어 간판에 대문짝만하게 '이 곳이 너네가 찾는 카베 터미널이 맞다'라는 것을 영어로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도 그 친절함은 끝나지 않는다.



무려 자국어보다 훨씬 잘 보이는 노란색깔로 영어 표기를 해두는 친절함을 넘어선 자상함까지 보여주는 것이다.


버스카드를 찍어준 잘생긴 남자부터 시작해서 오늘은 이란이 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일 떠나는 타브리즈행 버스 티켓을 구매한다.



이스파한-타브리즈행 버스 티켓

티켓 가격은 225,000리알



놀라지 마시라.

심지어 난 카베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가는 버스를 탑승했는데, 그 때도 이란인 커플이 버스 카드를 찍어주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도덕 시간에 외국인을 발견하면 버스표를 찍어줍시다 이런 내용이라도 단체로 공부하는걸까?'


첫 번째는 호의라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그 것도 단 하루만에 두 번이나 버스를 공짜로 타게 되어 토끼눈을 한 채 놀란 나를 향해 이란인 커플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사실 눈물 찔끔, 날 정도로 감동했었다.




[아쉬움]



케밥에 질려서 이 곳을 떠난다고 마음을 먹었다.

심지어 내일 당장 타브리즈로 떠나면 그 곳에서 바로 아르메니아로 이동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아쉬워졌다.


'난 정말 이 곳을 떠나고 싶은게 맞을까?'


그래도 떠나기 전에 못 가본 곳들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목적지는 하쉬트 베헤쉬트 궁전.


과거의 찬란함은 잃어버렸지만 이 곳 이스파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궁전 중의 하나라고 했는데, 녹음이 잘 조성된 공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쉬트 베헤쉬트 궁전 가는 길.

이처럼 녹음이 잘 조성되어있고, 깔끔하게 꾸며져있어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하쉬트 베헤쉬트 궁전의 이름에서 '하쉬트'의 의미는 숫자 8이다.

궁전이 팔각형으로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과거 8명의 후궁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어질 당시에는 굉장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조금 쓸쓸한 모습으로 공원 한 복판에 우뚝 솟아있다.


그래도 뭐 어떤가, 이렇게 낭만적으로 소풍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주위를 거닐고 있기 때문에 

한번쯤은 찾아가볼 만한 궁전이라 생각한다.



이란에서 너무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많이 봤기 때문일까?

사실 이 궁전을 처음 봤을 때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특이한 사실은, 목조를 사용하지 않는 페르시아 건축법에 반해, 큰 나무기둥 두 개가 있는 것 정도.

(사실 알리 카푸 궁전도 목조 건축을 사용하긴 했다)



그렇게 멍하니 나무 기둥을 쳐다보고 있자니 이 것도 동쪽 어느 나라에서 전래된 건축법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곳 사람들은 예전부터 돌과 흙을 사용해 외관을 꾸며왔는데, 갑자기 나무를 사용하여 기둥을 세울리 없지않은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우리네 사찰에서 쓰는 건축 기법과도 비슷해보이기도 했다.


'이 궁전 정말 우리나라 목조 건축 기술이 전래되어서 지어진거 아닐까?'

그런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머리에서 굴리며 천천히 궁전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답을 이 표지판에서 깨닫는다.

'실크로드'가 그 키워드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벽란도(개성 근방)와 중국의 위해(혹은 연태)를 연결하여 실크로드의 끝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전래된 목조 건축법이 이 궁전에 적용된건 아닐까?


그런 고고학과 건축학이 융합된 어려운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봤자 사실 답이 나올리는 만무했다.

뭐 언젠가 이 곳이 다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면 그때 다시 찾아보기로 결정한다.

그 전까지는 이렇게 생각하련다


동쪽에서 유래된 목조 건축기술과 페르시아 건축이 융합된 '궁전' 


[사실 실크로드는 이 한 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3~5개의 지선과 간선이 복합적으로 운영되던 길로 추정하는 것이 정설이다]


궁전을 떠돌다 보니 이런 글귀도 보였다.

사실 눈물이 날 뻔했다.


무려 '한글'로 적힌 이란 이스파한과 대한민국 경상북도 교류의 간판이다.

(심지어 내가 도착하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 간판이 세워졌다)



그 당시에도 신라에서 사신이 도착하면 페르시아 경찰이 막 잡아가고 그랬을까?

괜시리 웃음이 났다.


어쨋든 두 도시의 우정을 기원하며 숙소로 발걸음을 돌린다.




[터키에서 온 연락]


내일 이 곳을 떠나야하기 때문에 타브리즈와 국경도시 졸파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근처 호텔로 이동했다.

TOTIA란 이름의 호텔인데 (내가 있는 숙소에서는 와이파이를 쓸 수 없었다) 이 곳에서 와이파이 이용권을 구입한 후 인터넷을 쓸 수 있다.



느낌상 중국만큼 인터넷 환경이 폐쇄적인 국가가 이란인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막아놓은 것이 양 국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에서는 구글에 접속할 수 있다. )


어쨋든 난 인터넷 사용권 100Mb를 구입한 후 호텔 로비에 앉아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인터넷 사용권 100메가바이트 : 20,000리알)



그러던 중 강연이(이 녀석과는 안나푸르나 등반을 함께 했었다)에게 연락이 온다.


녀석은 인도를 여행한 후 터키로 날아가 터키 여행을 하고 있었으며,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온다.


'당연하지~ 형도 이제 아르메니아 조지아 지나서 터키 들어갈거니까 루트 맞으면 다시 같이 돌아다니자'


그렇게 약속을 하고 계속 정보를 찾고있던 찰나 녀석이 사람을 한 명 소개해준다.


 - "형 여기서 만난 누나가 있는대, 이란에 간대요. 이스파한. 근데 혼자 가기 무섭다고해서 형 소개시켜줄까 하는데 괜찮아요?"

"응~ 그런데 난 내일 타브리즈로 갈건데, 뭐 맘대로 해"


그렇게 쉽게 대답하자 구입한 100Mb가 모두 고갈되었다.


다시 떠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일말의 아쉬움이 들었다.

히잡을 쓰고 지나가는 여자들에게서도, 나를 보며 '칭챙총'이라 말하는 개구쟁이 꼬마들에게서도, 길을 지나가며 발견한 케밥집에서도

조금 쓸쓸하고 아쉬운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100메가 바이트가 고갈되기 전,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이스파한 도착 할거예요! Totia호텔에서 만나요!"


'이란 여행 정보나 좀 주고, 밥이나 같이 먹고 헤어져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인터넷이 되지 않는 내 숙소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