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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여행기/이란) 이스파한에서 카샨으로

by 빛의 예술가 2017. 9. 9.

[비자]


'참 그런데 내 비자가 언제까지였더라?

분명 테헤란 공항에서 입국비자를 받을 때 2주 짜리였으니, 이제 3,4일 정도 남은건가?'


어제 Y를 만나 얼떨결에 이란 여행이 연장되긴 했지만,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은 비자 때문에 그리 길어지지 않는다.

사실 조금 아쉬웠다.

일본친구들은 끼리끼리 그룹을 지어 이 곳을 여행하는데, 가끔씩 식사를 함꼐한 것을 제외하면 나는 계속해서 혼자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난 동행과도 그리 오래 여행할 수 없는 생각에 초조한 감정, 그리고 외로움이 묻어났다.


오늘은 Y와 함께 이스파한을 떠나 카샨으로 간다.

난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이 곳이 끝일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이스파한에서 카샨까지 가는 방법은 매우 쉽다.

테헤란과 연결된 고속도로를 타면 되는데, 테헤란 그리고 시라즈의 중간 쯤에 이스파한이 위치해 있다면, 

우리가 가는 카샨은 테헤란과 이스파한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버스 요금은 60,000리알, 시간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카샨 택시운전사]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카샨이란 도시는 매우 작기 때문에,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여,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를 찾아보기로 결정한다.


우리가 만난 택시 기사는 영어를 꽤나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당연히도 수다스러웠다.

이란에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매우 수다스러운 법이기 때문이다.

(이란을 여행하며 10여명을 만났는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모두가 수다스러웠다. 물론 일반적인 사실은 아니다)


"유 코리안? 코리안?"

- "응~ 우리 코리안"


그런 이야기를 하며 숙소를 찾고 있던 중 택시 기사는 노키아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마이 프렌드, 코리안 프렌드"

- "뭐? 당신한테 한국 친구가 있다고?"


그리고 이란 말로 잠깐 통화하더니 우리에게 전화기를 건넨다.


- "여보세요?"

30대 초반정도로 짐작되는 여자가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 "누구세요?"

"아- 전 친구예요, 예전에 이란에서 공부할 때 만났거든요"


그 여자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며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신기했다.

어쨌든 이 곳은 테헤란이나 이스파한이 아닌 카샨이었기 때문이다.

(카샨의 중심가는 대략 반경 2~3km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다)




게스트 영문 스펠링이 틀렸지만, 전혀 의심하지 않고 들어간 게스트하우스.

물론 게스트하우스가 맞았다.


'겟츠하우스' 뭐 그런거 아니다.

이 곳은 이란이니 이해하기로 하자.


택시 기사는 헤어질 때 아비아네 투어가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Y에게 전화 번호를 준다.

그제서야  허기가 졌다.



[즐거운 식사, 즐거운 만남]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란이 거대한 병아리라면, 병아리의 발톱 수준으로 작은 이 도시에 색다른 식당이 있을리 없는 것이다.



나는 질릴만큼 질려버렸지만, Y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뭐 그럴만도 하다. 이제 이란에 도착한지 3일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 이거 정말 맛있네, 그런데 터키 케밥이 더 맛있어요. 터키 이스탄불에 가면 고등어 케밥이란게 있는데요, 와 그거 진짜 맛있는데.."


그렇게 우린 당연히(?) 케밥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끔찍하게도 터키 케밥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 코카서스 3국을 지나면 나도 터키로 들어가야되는데.... 설마 거기도 계속 케밥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터키고 뭐고, 이틀 내로 그 나라를 벗어나 동유럽으로 가야겠다.

그렇게 굳게 다짐하며 케밥을 씹었다.

(물론 터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즐거운(?) 식사를 마친 후 우린 카샨 이곳 저곳을 걸어서 산책하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이고, 특별히 유명한 유적이나 관광지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며 거리를 걸었다.


이란에서 큰 도시만 여행하다, 이렇게 흙으로 벽을 칠한 작은 마을에 도착하니 기분이 묘했다.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던 이국의 시골 풍경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까?

우린 이 사람들에게 초대를 받는다.



Y와 나는 페르시아어를 단 한 문장도 구사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한 사람들은 영어를 단 한 문장도 구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우린 이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 왼쪽 어여쁜 여자는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다. 

2. 하지만 오른쪽 남자가 예비 신랑은 아니다.

3. 오른쪽 남자는 예비 신랑의 동생 혹은 왼쪽 여자의 동생이다.

4. 그리고 오른쪽 여자는 시어머니가 될 사람이다.

그렇다면 남편은?

5. 그래, 남편은 일을 나가고 지금 이 곳에 없다.


정말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이게 바로 원 월드구나'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Y가 왼쪽 여자의 손에 이끌려 어떤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저렇게 대놓고 납치하는건 아니겠지?'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나도 건물로 따라 들어간다.

옥상에서 Y와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옥상에 도착하자 새(鳥) 우리가 있었다.


'음.. 설마 여기 가둬놓고 협박을 할 셈은 아니겠지?'



망상이었다.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내 손에 새를 쥐어줬으며, 난 새침한 표정을 짓는 이름 모를 새와 셀카를 찍었다.


[비둘기는 아닌거 같은데 사실 뭔지 모르겠다. 그냥 새]


이제 와서 보니 활짝 웃는 나와는 달리 새의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사실 새가 도망가면 어쩌지란 걱정에 꽉 잡고 있었다. 아팠나보다. 그나저나 저 사람들은 나만 빼고 대체 뭘 보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Y의 친화력은 굉장했다.

영어를 전혀 구사할 수 없는 이란 여자와 이미 절친이 된 것처럼 보였다.



우린 옥상에서 내려온 후에도 한 참을 이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나씩 하나씩 모이다보니, 이제 꼬마들에게 포위를 당해버렸다.


녀석들은 잘생긴 동양인과 예쁜 동양인을 처음 만난 것인지, 우릴 보는 내내 얼굴에서 '신기함'이 묻어났다.



꼬마들은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데, 

DSLR을 게스트하우스에 놓고 온 사실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스냅용 카메라로 꼬마들을 한 명씩 찍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사실이다.


1. 이 꼬마들은 포즈 뿐만이 아니라 표정이 다양하다.

웃을 때는 정말 활짝 웃을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으며, 웃지 않을 때는 또 감정이 얼굴에서 드러났다.



2. 이 꼬마들은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나도 어릴 적엔 이 꼬마들처럼 영롱한 눈을 가지고 있었을까?

사진을 찍어주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연유로 인해 그 눈을 잃어버렸고, 이제와서야 다시 그 눈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건 아닐까?

그것도 이란의 카샨이라는 작디 작은 마을에서 말이다.



3. 그런데 이 꼬마들은 집에서 인터넷이나 게임을 안하고 여기서 뭘 하는거지?

한국에서 살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나라의 꼬마들은 집에서 인터넷을 하거나 게임을 한다.

어쩌면 조기 교육을 시작(당)했을 지도 모른다.

놀이터는 폐허처럼 변해버렸다.


서울에서 살 때,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분명 몇 차례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억나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페르시아 말이었지만,

꼬마들은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웃었으며, 장난을 쳤다.

그리고 그들의 에너지는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었다.






사진을 찍고 나자, 아이들은 손을 맡잡고 강강수월래 같은 춤을 추며 놀기 시작했다.

충격적이었다.

20여년 전 내가 이 꼬마들 나이였을 때도 이런 식으로 놀진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 아이들이 순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이 테크놀로지(High-Technology)의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크게 소리를 치르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고민이 사라졌다.


'그래 그런게 뭐가 중요한가'



아이들과 놀이에 절정은 이 아저씨였다.

갑자기 나타난 이 아저씨는 우리를 발견하곤 씨익 웃더니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꼬마들과 놀아주기 시작했는데, 한두번 놀아본 솜씨가 아니었다.

특히 아이들은 이 아저씨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잠깐 바라만 봐도 마음을 놓고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유쾌한 남자였다.



그리고 우린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나 역시 함께 춤을 췄는데, 영상을 찾을 수가 없다.

아마 Y혹은 이름 조차 알지 못하는 이란 사람들의 핸드폰에 저장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갑작스런 춤을 추고 난뒤, 이 곳이 정말 사랑스럽게 보였다.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의자에 앉아 인터넷을 하거나, 의자에 앉아 게임을 하는 한국의 꼬마들

거리를 뛰며 소리를 지르거나, 거리에서 놀이를 하거나, 거리에서 웃고 싸우는 이란의 꼬마들


정답은 없다.

일반화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우리네 꼬마들과, 처음 만난 이란의 꼬마들이 계속해서 상반된 모습으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두 번째 초대]


Y와 나는 우리를 초대해줬던 사람들 그리고 꼬마들과 헤어진 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내일은 아비아네로 가요, 미리 기사 아저씨한테 전화 해둘까요?"


아비아네는 내가 이란에 도착하고 나서도 알지 못하던 곳이었지만, Y는 그 곳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이제 2,3일 정도 시간이 있으니 아마 그 곳이 이란의 마지막 여행지가 될 예정이었다.


-"그래요~ 전화해서 미리 얘기해두죠"


게스트하우스 프론트에서 전화를 하고 온 Y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런데요, 지금 놀러오라고 하는데요? 또 초대받았네? 갈까요? 데리러 올 수 있대요"



택시 기사는 의기양양하게 우리 게스트하우스 앞에 차를 댄 채 웃고 있었다.


또 초대를 받았다.

차를 타고 10여분을 달려가 그의 집에 도착했다.

첫 인상은 혹시 미니멀리스트인가? 라고 생각될 정도로 간소한 거실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이란 가정식을 대접받았는데 케밥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흐를정도로 고마웠다.



인도에서 먹던 커리와 비슷한 맛이 났는데, 아이들과 놀아주고 난 뒤라 더욱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내내 택시 기사의 가족들은 우리 앞에서 이런 포즈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가족은 아니고, 친인척이 모여서 살고 있는 집이어서 그런걸까?

모두가 조금씩 어색해보였다.

혹은 잘생기고 예쁜 동북 아시아사람들이 바닥에 앉아서 헐레 벌떡 밥을 먹고 있는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런 어색한 상황 해결은 Y가 전문이다.



조금 강제성이 엿보이긴 하지만, 사진기를 들이밀자 사람들은 조금 웃기 시작했다.


참, 그런데 이 집엔 남자들만 살고 있느냐고?

아니다.


처음에 집에 들어올 때 여자들과 인사를 했었는데, 그 후로는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뿐이다.

대신 이 꼬마는 구석에서 우리에게 자꾸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다.



남자들 중 한 명의 딸이거나 조카, 뭐 그런 셈일텐데 굉장히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있는 모습에,

다시 한번 내가 이란에 왔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남녀칠세 부동석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여자 꼬마가 가져다준 스위트

맛있었다.



어차피 말이 통하는 것은 택시 기사 뿐이고, 모두가 조금씩 어색어색하게 앉아있으려니 졸음이 몰려왔다.

Y에게 이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게 어떠냐고 말했는데, 택시기사가 그 장면을 보더니 얘기했다.


"너희 자고 가~ 2층 다 비어있어."


오, 이런게 이란의 초대 문화인가?

감탄하며 올라갔다.


1층보다는 훨씬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시스템의 에어컨이 창 밖에 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자고 가도 되나요?"

-"그럼~ 여기서 자고, 내일 바로 아비아네로 출발하는게 편해"


Y도 조금 피곤한 듯, 이 곳에서 자고 가자고 말했기 때문에 난 소개받은 방으로 들어간다.



'이란 사람들은 돌더미에서 잘 줄 알았더니, 침대에서 자는군'


이런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하며 2층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Y는 나와 다른 방으로 가야했는데, 이 곳의 문화이기도 하겠지만 서로 다른 방에서 자야하는건 조금 위험해보이기도 했다.

해서 그렇게 말해두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소리 질러요~ 그 쪽으로 갈게요"


Y는 씨익 웃더니 걱정말라고 한다.

표정이 다양하고 사람이다.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안심이 되었으니 말이다.




끝날 뻔 했던 이란 여행이 조금 더 연장되었다.

이란의 작은 도시 카샨으로 왔다.


그 곳에서 난 현지인에게 초대를 받았으며, 생동감 넘치는 꼬마들과 함께 놀며 사진을 찍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또 다른 현지인에게 초대를 받아 저녁을 얻어 먹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잠까지 자게 된 상황.


우스웠다.

그리고 오늘, 내 안에 죽어있던 꽤나 많은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게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외딴 곳에 떨어져,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전혀 생소한 것들과 만나게 될 때, 가장 잘 보이는 건 자기 자신이다.


그렇게 난 내 모습을 바라봤다.

거울이 있었다.

거울에 비춰진 나를 바라본다.

생각했다.




"역시 난 잘 생겼어"





결론이 이상하다고?

이상한 건 당신들의 고정관념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뭐? 그래도 아니라고?

그럼 할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