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주식(主食)]
테헤란에서 마지막 날이 밝았다.
여행기에 적진 않았지만 거리를 산책하던 중, 날씨가 너무 더워 바지단을 몇번 접어 올리고 걸어다녔더니 현지인들이 경계의 눈으로 날 봤던 일이며
심지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바지단을 가리키는 사람들을 만난 일도 있었다.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니던 중 미술관도 발견했으며, 근처에 서양식 레스토랑을 발견하곤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먹은 일도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씨익 웃으며 "주몽" 이라는 말을 했는데, TV를 잘 보지 않는 난 처음에 그게 무슨 얘긴 줄 몰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드라마 "주몽"이 수출되어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그 전에 "대장금"과도 같은 한국 사극이 많이 수출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극은 여자 배우의 전통 의상에 노출이 적고, 대장금의 경우에는 의녀들의 상징인 '전모'(독특하게 생긴 모자)까지 쓰고 나오니 안성 맞춤이었을 것이다.
결국 노출이 없는 의상이 드라마 수입의 주된 이유가 되버렸는데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지만,
또 한편으로 문화의 상대성을 존중하자면 중요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래서 나를 보면서 그렇게 "주몽", "주몽"거렸던 것이다.
이처럼 난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사실 음식점은 많이 발견하지 못했는데,
호스텔 주인장에게 물어보자, 이란은 가족적인 문화가 많이 발달해 있고 그와 더불어 외식 문화가 발달해있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럼 이란 사람들은 밥을 집에서만 먹어요?"
라는 내 질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그렇다고 대답했다. (물론 시대가 많이 바뀌어 치킨이나 피자, 파스타 프랜차이즈도 생기는 중이다)
하지만 가끔 예외가 있는데, 빵은 빵집에서 사먹는 일이 많다.
그 중 테헤란의 마지막 날 아침식사 메뉴였던 넌-에 바르바리(nān-e barbar)를 소개한다.
왼쪽은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달걀 요리이고, 오른쪽이 바르바리라고 부르는 빵이다.
언뜻 보기에도 커보이는 빵이지만 사실 저게 3~4등분 한 크기다.
아침에서 저녁까지 빵을 굽는 시간은 정해져있고, 사람들은 그때마다 시간에 맞춰 이 빵을 사러 온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집의 밥솥에 밥을 짓는 대신, 밥 짓는 가게에 끼니 때마다 찾아가 밥을 사오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가격도 4~5,000리알로 지하철 편도 요금(약 200원) 밖에 하지 않으며, 무엇과 함께 먹든 제법 어울린다는 장점이 있다.
참, 위쪽에 보이는 내가 먹은 아침 식사 가격은 35,000리알이다.
달러로 대략 1불, 한국돈으로 1,100원정도인 셈.
놀랍지 않은가?
별로 놀랍지 않다고?
600ml 코카콜라 포함 가격이다.
이래도 안 놀라면 거짓말이다.
[테헤란에서 시라즈로]
테헤란에서 시라즈(Shiraz)까지 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이전 여행기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테헤란의 "남부터미널"로 가서 버스만 타면 끝이다.
2017/07/12 - [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 (여행기/테헤란) 골레스탄 궁전 그리고 전 미국대사관
지도가 궁금한 사람은 다음 지도를 보면 된다.
북쪽의 파랑 점이 테헤란이고 남쪽의 파랑 점이 시라즈이다.
이렇게 보면 테헤란에서 시라즈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테헤란에서 시라즈까지는 대략 900~1,000km떨어져있다.
1,000km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설명하자면, 우리 남한만으론 부족하다.
상상속에서 남북통일을 이루어낸 뒤, 남서의 끝인 목포(혹은 진도)에서 북동의 끝인 온성군(혹은 라진, 선봉)까지 달려가면 대략 1,000km가 나온다.
어제 395,000리알(약 12불)을 주고 구매했던 시라즈행 버스 티켓을 들고 남부 터미널로 향하기 시작했다.
Mashhad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인 아주머니도 나와 함께 시라즈로 가기로 했는데, 외딴 나라의 외딴 곳에서 처음 타 보는 시외버스에 동승자가 생겼다는 사실은 든든한 동료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시간은 오후 7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였는데, 조금의 오차도 없이 버스가 도착한다.
심지어, 지금까지 여행해보며 탑승했던 버스 중에 가장 좋은 버스였다.
의자도 널찍널찍하고, (한국의 우등버스와 비슷), 개인 LCD디스플레이를 제공하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게 12불 밖에 하지 않는다는 셈이다. 대략 100km를 가는데 1불인 셈이다.
하지만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런 간식도 준다.
개인적으로 물과 간식거리를 챙겨왔지만 버스에서 나눠주는 현지 간식이 훨씬 맛있었다.
대체 이렇게 퍼줘서 버스회사 경영은 잘 할 수 있는걸까? 라며 3세계의 회사 걱정을 해줄 찰나 잠에 빠진다.
이란은 우리나라 보다 고속도로도 훨씬 잘 닦여있다.
급커브도 거의 없고, 일직선의 도로가 대부분이다.
사막을 관통하는 그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아주 약간의 흔들림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간다.
잠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도중 휴게소에 한 번 들렀는데, 사실 그게 한 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테헤란 - 시라즈 행 버스 중간 휴게소, 차와 커피, 간식거리 등을 판매한다)
잠에 빠져 휴게소에 정차했는데도 내가 못 일어나고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버스는 12시간을 달려 정확히 아침 8시 23분 시라즈에 도착한다.
[태양아래 가장 부유한 제국, 수도 페르세폴리스]
기원전 500년 경,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대략 2,500년 전에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제국이 있었다.
아케메네스 제국으로 시작한 페르시아 제국이 그 것이다.
이 아케메네스 제국은 북서쪽으로는 지금의 터키, 불가리아까지, 남서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일부지방까지 포함한 거대한 제국이었는데, 기원전 300년 경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점령되기 전까지 태양아래 가장 부유한 제국이라 불렸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도착한 시라즈(Shiraz)에 그 찬란했던 페르세폴리스 유적이 있다.
(시라즈에서 페르세폴리스 유적지까진 차로 약 1~2시간가량 떨어져 있다, 로컬버스 이용 기준)
버스 안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꿀잠을 잔 나는 힘차게 숙소를 찾기 위해서 로컬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아주머니는 피곤한 듯 내게 택시를 타자고 이야기 했다.
표정을 봐도 정말 피곤해보였고, 얼굴에서 열도 나는 듯 꽤나 상기되어있는 모습이었다.
합승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아간다.
그 와중에도 아주머니는 표정이 좋지 않았고, 숙소를 잡은 뒤에도, 본격적으로 시라즈를 여행하기 시작한 후에도 상기된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시라즈에 도착한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다시 터키로 가야겠어"
난 가만히 앉아서 그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테헤란에서 부터 받았던 '압박'부터 시작해서 찌는 듯이 더운 날씨, 그리고 페이스북에 접속이 되지 않는 다는 사소한 사실부터, 그녀에겐 모든 것이 맘에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 이미 적응을 한 듯,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 곳 시라즈에서도 우리를 툭툭 치고 지나가거나 호의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이란 사람들에게 질려 더 이상 이란 여행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 것도 당장 오늘 버스를 타고 테헤란으로 돌아간 후 터키까지 갈거라 얘기한다.
뭐 어쩔 수 없다.
모처럼 동행인이 생겨서 기쁘긴했지만, 떠나는 사람을 붙잡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 대신, 아주머니라고 칭한 이유는 바로 이 것이다.
나와 그녀는 테헤란에서 만났고, 사흘 째 되는 날 시라즈까지 함께 왔지만 그 날 다시 헤어진다.
그리고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카림 칸 요새 (Arg of Karim khan)]
시라즈(Shiraz)에 숙소를 잡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시를 산책하는 일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곳곳에 어마어마한 유적이 보이기 때문에 산책의 재미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카림 칸 요새가 그 것이다.
시라즈 하면 페르세폴리스밖에 모르고 왔기 때문에,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요새인데,
처음 보고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위용을 자랑한다.
대략 12~14m정도 되는 4개의 벽돌 탑을 기준으로 모든 모서리를 성벽으로 채운 것이 이 요새인데, 잔드 왕조(Zand Dynasty)시절 카림 칸의 이름을 본따 만든 건축물이다.
1766년부터 1767년까지 지어진 이 건축물은 우리가 테헤란에서 봤던 골레스탄 궁전과 그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물론 그 사이 왕조가 바뀌긴 한다)
이 카림 칸 요새도 잔드 왕조를 지나 카자르(Qajar)왕조가 몰락한 후에는 감옥으로도 쓰였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 중이다.
이 사진을 보면 요새가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측에 보이는 탑이 얼마나 정교하게 지어졌는지 잘 알 수가 있는데, 하측 면도칼 하나도 들어가지 않게 설계된 하부구조부터 시작하여, 벽돌로 꾸민 화려한 문양이 탑의 최상층부까지.
이 도시가 페르시아의 심장이라고 불리우는 이유중 하나이다.
[아이스크림]
천천히 요새를 구경하며 크게 한바퀴 돌면 30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게 되는데,
이 곳은 사막 한 가운데 지어진 도시라는게 체감될 정도로 땀이 뻘뻘 흐른다.
그 더위는 혹서기의 가뭄처럼,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갈되지 않았는데,
그 것에 지쳐갈 때쯤 기묘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JAMSHIDIAN 레몬 주스라고 써진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느꼈다.
"아 맛집이구나"
그리곤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전에 나도 후다닥 달려가서 줄을 선다.
주스가 굉장히 맛있는 집일거란 내 예상과는 달리, 가게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스크림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사실 주스든 아이스크림이든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테헤란은 카스피해와 굉장히 가깝고, 북쪽에 엘부르즈 산맥(해발고도가 3,000m가 넘어간다)이 있어 사막처럼 덥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시라즈에서는 '과연 내가 사막의 나라에 왔구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땀이 뻘뻘 흘렀다.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받으며 빠져나갈 수록, 땀에 범벅이된 내 얼굴에서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 곳 사람들에게 그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잘 생긴 동양인 여행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줄을 선 채 희미하게 웃고 있는 모습
어쩌면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찰나,
내 차례가 돌아왔다.
손가락 하나를 내보이는 내게, 잘 생긴 아이스크림 가게 종업원은 하얀색 아이스크림을 퍼서 내게 전달한다.
줄을 선 채 뒤쪽에서 계속 지켜봤는데 사람들은 이 아이스크림만 주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이란 아이스크림.
점도로 따지면 터키시 아이스크림과 굉장히 비슷한 점도를 유지하는데, 이게 어느 정도로 맛있냐면,
아이스크림 하나를 계산하고 (가격은 15,000리알) 바깥으로 나가며 수저를 입으로 향하는 그 순간.
다시 가게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맛이다.
분명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지만, 당장 가게로 돌아가 하나를 더 주문해서 먹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시라즈에서 머무는 내내 난 매일 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 것도 보통 2번씩 사먹었다.
지금 한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당장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시라즈로 달려가 아이스크림 10개를 주문해서 그 자리에서 먹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세계 일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간식을 꼽으라면 단연 시라즈의 이 아이스크림일 것이다.
당신이 시라즈에서 이 여행기를 읽고 있다면, 그 것은 일종의 축복이다.
당장 카림 칸 요새로 달려가, 그 옆에 위치한 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방문하자.
[그리고 다음 목적지]
숙소에 도착하자 오늘 시라즈에 함께 도착해, 오늘 시라즈를 떠난 아주머니가 주고 간 여행 가이드북이 눈에 보였다.
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다시 말해 코카서스3국 합본 영문판 론니플래닛이었는데,
본인은 터키도 좋았지만 조지아, 아르메니아도 좋았다고 말하며 내게 이 가이드북을 선물한 것이다.
이란에 도착했을 때, 사실 다음 목적지로 어딜 가야할 줄은 몰랐다.
"서쪽"이란 대전제가 있었지만, 이란의 서쪽은 이라크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폭탄이 스콜처럼 쏟아지고 있던 이라크에 갈 용기는 나지 않았었는데(심지어 입국 금지 국가다), 이 가이드북이 내게 귀중한 길을 소개해준 것이다.
이란의 서쪽 접경 국가는 총 네 곳인데,
한국인이 갈 수 없는 이라크, 그리고 터키, 마지막으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가이드북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나라인데,
구미가 동했다.
아마 이란에 와서 그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했다면, 또 이 가이드북을 선물받지 못했다면 알지 못하고 지나가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래 무사히 이란을 여행하고 난 뒤에는 아르메니아로 가자"
그렇게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가야할 곳인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정보를 찾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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