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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여행기/이란) 극과 극 테헤란(2/2)

by 빛의 예술가 2017. 6. 19.


2017/06/13 - [세계일주 여행기/◆중동(Middle east)] - (여행기/이란) 극과 극 테헤란(1/2)


[글, 말, 숫자]


이란의 수도 테헤란 입국 첫 날부터 양 극단을 오간 체험을 했다.

물론 1년도 아니고, 채 하루를 이 곳에서 보낸 나는 아직 테헤란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것도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의 '나이'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사랑도 그러하다.

10년 20년을 만나 사랑을 싹틔워온 두 사람의 것과, 만난지 채 하루밖에 되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

이 경우에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오래되었다고 하여 반드시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올바른 것도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치 난 굉장한 현명한 여행자라도 된 양

어깨까지 으쓱하며 호스텔 주인에게 추천받은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음식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산산조각 났다.



분명 주인이 알려준 대로 걸어왔는데,

이 곳이 음식점이 맞는지 부터가 의심되었다.


난 저기에 적혀있는 글씨를 단 한글자도 읽을 수 없었으며, 심지어 숫자조차 읽을 수 없었다.

단지 풍겨오는 고기 냄새가 '이 곳이 음식점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들었는데, 

가격대도, 어떤 음식을 판매하는 줄도 모르면서 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자 이란인 주인이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난 당연히 그와 단 한마디도 대화할 수 없었으며 손가락으로 작은 네모를 그리며 '메뉴'만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벽을 가리켰다.

가게 바깥에 붙어있는 '메뉴'로 추정되는 그 그림(?)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사진도 없고, 글을 읽을 수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음식의 가격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

그럴 때는 방법이 있다.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음식을 그대로 주문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옆 테이블조차 텅텅 비어 있다면 매우 곤란한 방법이긴 하지만)


[두 명이서 이런 음식을 나눠먹으면 62,000리알 정도 한다. 한국 돈으로 약 3,000원 정도 한다.]


음식을 다 먹고 계산을 할 때는 주인이 계산기를 들고 다가왔다.

(신기하게도 계산기에는 우리와 친숙한 아라비아 숫자가 제대로 적혀 나왔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음식값을 지불하고 가게 밖으로 나온다.


이제 배도 부르겠다, 정보도 얻을 겸 나는 다시 호스텔로 돌아간다.




[모스크]


어제 호스텔 주인이 말한 것 처럼 이 호스텔은 일본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점심 때가 되었는데 이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호스텔 안에서 빈둥빈둥 거리며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화의 주된 주제는 그 것이었다.


"여기 페이스북 접속이 안돼"


어제 나를 제외한 유일한 한국인인 이란여행을 하는 아주머니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일본인들과 친한 듯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주된 주제는 물론,


"페이스북 접속을 위해서는 IP우회를 하는 웹브라우저가 필요하다" 였다.


흥미를 잃은 나는, 그들에게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노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골레스탄 궁전은 내일 가기로 맘 먹었기 때문에, 오후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거리 곳곳을 걸어다녔다.

이 곳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았는데, 물론 모스크(Mosque)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2시간 여 걸어다니며 발견한 모스크만 20개가 넘었는데, 거대하고 유명하지 않은 모스크라 할 지라도 그 아름다운 색깔과 건축 양식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모스크를 쉽게 설명하자면 이슬람교의 예배당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의 교회나 성당, 사찰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국교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이 나라의 어느 곳을 가든 모스크를 발견할 수 있다.



[모스크의 첨탑 (미나레트)]


위 사진이 모스크의 첨탑(미나레트)인데, 모스크의 규모에 따라 첨탑이 하나인 작은 규모에서부터 6개인 대형 모스크까지 존재한다.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이 곳의 본래 목적은 예배시간이 되면 예배당을 지키는 무아진이 확성기에 대고 '아잔'을 외친다.

이슬람 문화권의 나라에 가면 '기묘한 노래'처럼 확성기를 통해 퍼져나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그 것이 바로 이 '아잔'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메카 방향을 향해 절을 하고, 예배를 하는 것이다.




난 몇 군데의 모스크에 직접 들어가보기도 했는데, 

거의 항상 문은 닫혀있지만 예배당을 지키는 무아진에게 손짓으로 '들어가 봐도 돼?' 라는 손짓을 하자, 그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 거대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모스크를 뒤로 한 채 인도를 걸어가고 있노라니 맘이 한껏 평온해진 느낌이었다.

'이히이이이리히이~~'처럼 3세계 노래처럼 시작하는 아잔이 그 느낌을 배가시켰다.


그러던 찰나 나는 이란의 장난꾸러기들을 만난다.

이 곳 사람들은 보통 동양인들 (이 곳도 지리적으로 동양이긴 하지만, 종족 자체가 아리아인이기 때문에 외려 유럽/인도 사람과 닮아 있다)을 만나면 친절하게 대해준다.

혹은 신기하게 쳐다보며 말한다.

"픽쳐~ 픽쳐~"


난 두 시간 가량 걸어다니며 10팀, 30명이 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찍어주고 나서 그들을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바라보면 

'연예인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장난꾸러기들은 달랐다.

스즈키 하야부사 같이 거대한 오토바이에 두 명이 올라탄 채로 나를 똑바로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뭐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 여긴 인도임을 깨닫는다.


장난꾸러기를 쳐다본다.

꼬마(라고 썼지만 일반 동양인의 기준에 따르면 서른은 되어보이는)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를 보고 똑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가까이 다가오자 오토바이를 피하는 나를 따라 이리저리 핸들을 돌려가며 나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오토바이와 부딪히기 2초 전

어제 경찰에게 연행 되었던 기억에서부터, 무지 친절했던 이란인들을 만난 것 까지, 오늘 연예인이 된 기분으로 테헤란 시내를 산책했던 것에서 이 놈들을 만난 지금.

짜증이 폭발했다.

사실 오토바이에 치이는 아픔보다, 장난스럽게 나를 위협하는 꼬마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여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그들을 바라봤다.


당연히 그 꼬마들은 나를 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가까스로 나를 피해 옆을 지나가며 '칭챙총'이란 말을 날림과 동시에 놈들은 인도 방지턱에 부딪혀 고꾸라진다.


이게 3초만에 일어난 일이다.

물론 오토바이가 넘어지거나 하는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운전을 하던 꼬마는 핸들만 간신히 잡고 방지턱에 낀 상태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 쯤이면 됐다.


아무래도 마호메트가 선량하고, 잘생긴 동양인 여행자를 위해 벌을 내렸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난 호스텔로 돌아간다.



[불안]


놀랍게도 일본인 여행자들과 한국인 아주머니는 아직도 호스텔 안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난 페이스북이나 IP우회 웹브라우저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조금 과장을 섞어가며 오토바이를 탄 꼬마 두명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얘기를 하자, 그들도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봇물처럼 터뜨리기 시작했다.


모두 나보다 하루나 이틀 정도 먼저 이 곳에 도착한 여행자들이었는데,

'칭챙총' (중국인 혹은 동양인 비하 발언, 뜻은 없음) 이라던가, 지나가는데 툭툭 때리고 가버린다던가, 그런 류의 불쾌한 경험들이었다.

여자들의 경우 조금 더 심각한 얘기를 꺼냈는데, 영어를 조금 잘 하는 일본인 여자는 "Sexual harassment"라는 단어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히잡을 쓰고, 거리를 돌아다니는데도 남자들이 더듬고, 성희롱을 하고.. 도무지 여행을 다닐 수 없어. 그래서 호스텔 안에만 있는거야"


난 그녀가 입고 있는 힙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스키니진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상황만 악화될 것 같아 아무 말 없이 얘기를 들어준다.

물론 요즘 젊은 이란 여성들은 차도르를 입지 않고 그네들 처럼 히잡만 쓴 채 스키니진을 입고 다니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


그러자 일본인 남자들도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심지어는 이란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인 패거리도 있었단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사실은 모두 이란 사람들이 여행자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


나도 그런 경험을 꽤나 겪었지만, 정반대의 즐겁고 고마운 경험도 그에 준하는 것만큼 겪었기 때문에 

이란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할 순 없었다.


하지만 우습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겠지만, 그게 두려워 호스텔 안에만 있는 꼴이라니.

그들을 폄하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사실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럼 너희들은 왜 여기까지 여행 온거야?"




[수박 파티]


한국인 아주머니와 난 호스텔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본 친구들을 위해 수박을 사러 갔다.

물론 내 아이디어는 아니다.

난 가게까지 찾아가 과일을 사 먹을 정도로, 과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주머니의 걸음걸이는 빨랐다.

그녀 또한 이 곳에서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인도에서 이란으로 넘어온 나와는 달리, 그녀는 터키에서 한 달 정도 여행을 한 후 이 곳까지 왔다고 한다.

'불안'이 배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란의 과일가게.

다른 과일도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참외(?)처럼 생긴 과일은 우리나라의 참외보다 10배는 커보였다.

물론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저 과일이 참외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수박은 우리나라의 수박과 똑같이 생겼다.


그래서였을까?

우린 수박을 산다.




이렇게 큰 수박이 16만 리알, 한국 돈으로 대략 5~6천원밖에 안한다.



참, 그런데 왜 일본인 여행자들 사진은 없냐고?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정말 불안해 보였다.

어느 정도냐면 평생 꿈이었던 남극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두 세번씩 갈아타고 도착한 우수아이아에서 배를 타고 나흘이 걸려 남극의 한 섬에 도착을 했는데, 너무나 매서운 추위에 밖에 나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해서 사진을 못찍었다.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친구도 있었으며, 몸싸움을 했다는 그 친구는 조금만 자극했다간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불안에 빠진 그들을 찍는 것 자체가 일종의 폭력을 덧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은 없지만,

일본인 여행자들과 우린 수박을 맛있게 나눠먹으며 다음 일정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리고 방명록에 적힌, 이미 다녀간 여행자가 적어둔 도시와 가볼 만한 호스텔, 가격따위의 정보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테헤란에서 극과 극의 경험이 이어졌다.

조금 다른 사실이 있다면 나만이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장난섞인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심지어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불안에 빠져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압박에 짓눌리기만 해선 안된다.

적당히 짓눌리되, 내가 어느정도까지 참아줄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참지 않고 화를 내야하는지 알아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곳은 그 역치(値)를 알아내는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라 생각했다.


결국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조금 들어가 어떤 압박까지 참을 수 있고 어디서부터 참을 수 없게 생겨먹은 놈인지.

이 곳이라면 조금 쉽게 알아낼 수 있을거란 생각에 빙긋 웃음까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