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레스탄 궁전(Golestan Palace)]
"세계화(Globalization)가 필요합니다."
10여년 전 처음 대학교란 곳에 들어가서 들었던 수업들 중 꽤나 기억에 남아있는 수업에서 교수가 했던 말이다.
그 당시에도 꽤나 인지도가 있는 교수였는데, 임용되기 전 본인이 경험했던 수 십개국에서의 주재원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라고 했다.
그 반대는 지역화(Localization)라고 말했는데, 거기까지 듣고나자 무슨 얘기를 할지 그 끝이 보였다.
'뭐.. 통합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겠네'
교수는 내가 아연실색할 틈을 주지 않고, 두 단어를 합친 "Glocalization"을 통해 경영전략을 꾀해야한다고 끝맺었다.
결국 이 것도 필요하고, 저 것도 필요하고 잘 배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결론이 맘에 들지 않았었다.
상황에 따라 다른 전략(방법)을 사용해야하고 일변도(一邊倒)해선 안되며 그 힘의 적절한 배분, 즉 중용(中庸)이 필요하다.
마치 동양철학의 한 명제와도 같은, 육중하며 반론조차 불가능한 그 결론이 싫었다.
결국 난 수업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그 과목에서는 A+라는 학점을 받았다.
(흥미가 있고 없고는 시험결과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가 방문하기 불과 3개월 전 UNESCO의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골레스탄 궁전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테헤란에서는 아자디 타워와 함께 이 골레스탄 궁전(혹은 박물관)을 관광 명소로 꼽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이 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반짝 반짝 빛나는 그 모습에 반했다는 얘기에 나도 이 곳이 궁금해졌다.
골레스탄 궁전은 내가 묶고 있던 Mashhad Hostel에서 직선거리로 약 500m 정도 거리이고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가기가 매우 수월했다.
숙소가 멀어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는 Panzdah Khordad 역이나, Imam Khomeini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된다.
이도저도 귀찮을 경우 택시를 타고 "골레스탄"이라고 말하면 갈 수 있는 곳은 이 곳 밖에 없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궁전은 티켓 가격부터가 충격적이었는데,
먼저 입장료가 150,000리알 (약 5$)이다. (2013년 9월 기준)
하지만 입장료만 사면 말 그대로 입장만 할 수 있으며 이 궁전(혹은 박물관)을 이루고 있는 7개의 전시관을 관람할 수 없다.
우스운 사실은 7개 전시관 모두 각각 입장료를 받는다는 사실. (각 50,000리알)
해서 입장료+모든 전시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500,000리알이라는 이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큰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이 테헤란에서 보내는 사흘 째이지만, 진정 500,000리알이란 큰 돈은 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난 900만 리알이 수중에 있다는 사실도, 사실 표 값이라고 해봐야 한국 돈으로 2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라는 사실 역시 잊어버린 채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입장권을 샀다.
'7개 박물관 중 1 곳의 박물관만 보면, 총 200,000리알이니까, 음.. 7불 정도 하겠네. 이걸로 사야겠다'
물론 돈이 없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진심이다)
이 곳은 파사르(궁전의 전면부)가 예쁘기로 유명하고, 정원을 산책하는데도 족히 오랜 시간 동안 궁전을 만끽할 수 있을거란 믿음에서였다.
그리고 돌아본 후 다른 전시관이 보고 싶으면 돈을 더 지불하면 된다.
(조금 더 솔직해 지자면, 난 각각의 전시관에 대체 뭐가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갔다, 매표소 아저씨에게 물어봐도 말이 잘 안통한다)
이 곳이 골레스탄 궁전의 파사르 (전면부)이다.
사실 이 지점에서 궁전을 보기만 해도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원과 인공 호수는 이렇게 길다.
천천히 피톤치드를 마시며 궁전 앞으로 가면 이런 게 보인다.
거짓말을 한웅큼만 보태자면, 난 파사르에서 이어진 이 궁전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천장을 포함한 사면이 반짝거리는 거울로 꾸며져 이었으며, 그 모양도 가히 '내가 정말 페르시아에 왔구나'란 생각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섬세했다.
하지만 이 골레스탄 궁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는 페르시아의 미(美)가 전부는 아니다.
글의 서두에 인용했던 세계화(Globalization) 에피소드의 실체가 이 궁전이기 때문이다.
카자르(Qajar) 시대(1779-1925)에 준공된 이 골레스탄 궁전은 사실 서양의 영향을 받아들여 이전 페르시아 공예와 건축을 성공적으로 융합한 산물이다.
그 시절 일종의 Globalization을 통해 탄생한 건축물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우리들은 이런 설명을 들어봤자 어디서부터 서양의 건축 양식이 반영되어있는지, 왜 융합된 이 상태가 아름다운건지 쉽게 알 수 없다.
그럴 땐 얕은 지식으로 평가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자.
이 골레스탄 궁전은 그런 곳이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와서 아무 것도 모른 채 나갈지라도, 찬란히 빛나는 궁전의 모습 만큼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곳.
그리고 구매했던 전시관에 들어갈 차례다.
전시관 바닥은 온통 대리석으로 꾸며져있는데, 심지어 이런 귀여운 천을 신고 입장해야한다.
나는 신이 나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처럼 휙휙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입장한 Mirror Hall
이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천 수만장의 거울이 온 방을 휘감고 있는데,
이 곳이 대단한 점은 붉은 빛이 감도는 아주 작은 조명만으로도 그 무한의 거울에 반사되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이 곳에서는 파사르와 이어진 정문의 유리와는 또 다른 반짝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장소가 외부의 빛이 반사되어 만들어내는 야외의 장관이라면, 이 곳은 내부의 포근함이 빛으로 표출하여 수 억번의 반사를 통해 내 속으로 그 포근함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아쉽지만, 전시관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이 곳이 궁금하다면 직접 가보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 걸어오면 과연 페르시아와 서양이 조화되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더 느낄 수 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헬레니즘 양식의 기둥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두개가 쌍으로 나란히 서있다)
그리고 아치형 창문과 그와 정확히 비례하는 창틀은 분명 페르시아의 상징일 것이다.
그 아치는 건물 곳곳에 비밀처럼 숨겨져있는데, 건물 외벽을 꾸미는 타일 조형과 절묘한 조화까지 이루고 있었다.
이 골레스탄 궁전은 내가 한 곳의 전시관 입장권만 샀던게 조금도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입장 자체만으로도 꽤나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코카콜라, 그리고 티켓팅]
목이 말라서 찾아 들어간 슈퍼마켓에서 터무니없는 물건을 발견했다.
코카콜라가 떡 하니 들어와있는 것이다.
국제정세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이란과 미국은 대표적인 앙숙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반증으로 이란에는 KFC나 맥도날드와 같은 미국 발 대형 프랜차이즈가 단 한 곳도 없다.
그런데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음료인 코카콜라가 이 곳에 있다니, 아까 골레스탄 입장료에 화들짝 놀랐던 것보다 조금 더 놀라며 콜라를 집어든다.
놀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격이 8,000리알 (약 25센트, 원화 300원)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아마도)으로 콜라를 구입하곤 벌컥벌컥 마셨다.
인지부조화란 이런 상태일까?
적어도 이란에서는 미국과 관련된 그 어떠한 것도 찾아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만국 공용어인 영어는 제외하고),
미국의 상징이 내 식도를 타고 짜릿하게 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
하여 가게 주인에게 왜 여기에 코카콜라가 있는지 손짓 발짓으로 물어봤지만, 이야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에 찾아갈 전 미국대사관 (이 나라에는 당연히 미국 대사관이 없다)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 곳이 테헤란의 남부터미널 역이다.
테헤란의 중심 이맘 호메이니 역에서 다섯 정거장 정도 남쪽으로 가면 이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요금은 5,000리알로 15센트... 한국 돈으로 2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 곳에 도착한 이유는 이란 여행의 두번째 도시 시라즈(Shiraz)행 버스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는데,
당최 읽을 수 있는 건 www.으로 시작하는 웹사이트 주소이고, 업체명부터 행선지, 요금, 난 그 어떠한 것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업체 별로 영어를 조금씩 할 수 있는 직원이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당하게 찾아들어가 말한다.
"시라즈!"
매표소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서로 낄낄대며 말한다.
-"오~ 시라~"
거기서부터 발권업무가 시작 될 것 같지만, 오산이다.
그게 끝이다.
그때부턴 영어를 하는 사람을 찾아야한다.
내겐 구글지도와 달력이 있기 때문에 표를 구입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도 상에 시라즈의 위치를 보여주고, 달력을 찍어가며 이때 출발한다고 말하면 수월하다.
단지 내가 산 표가 과연 제 날짜에, 제 시간에, 시라즈로 향하는 표가 맞는지, 플랫폼은 어디인지 확인할 능력이 없다는 점은 끔찍한 불안을 동반한다.
왜 그걸 확인할 수 없냐고?
당신이 이 부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해 못한다에 500원을 걸겠다.
어떤가?
(아마)내 예상대로 당신은 이 버스티켓에서 단 하나의 정보도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최소한 이란 여행을 할 때 아랍숫자 정도는 배워야겠구나.'
전 세계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당신은 인도-아라비아 숫자(0에서 9까지)를 보고 이해할 수 있지만,
아랍권 국가는 표기되는 숫자 거의 대부분을 아랍숫자로 쓰기 때문에, 날짜를 읽지 못하고, 가격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간략하게 알아보는 아랍 숫자]
- 외우는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으니 모두 함께 외우도록 하자.
(물론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1분이 더 걸린다)
이 곳에서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적어도 이 암호 같은 티켓을 해석해 줄) 사람을 찾기 보단,
호스텔에 도착해서 주인에게 행선지와 날짜, 시간이 제대로 적혀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전 미국대사관]
코카콜라 얘기를 하며 언급했지만, 이란에는 미국 대사관이 없다.
하지만 1953년 팔레비 왕조(무함마드 레쟈 샤)가 백색혁명을 주도할 당시 그 배후에 미국이 있을 정도로 친밀했던 적은 있었다.
(웹 상에 1950년대, 1960년대 이란의 모습이 사진으로 떠돌고 있는데, 여성들이 서구화된 복장을 하고 있던 때가 이 시절이다)
하지만 이맘 호메이니를 필두로 한 반정부 조직이 커졌고, 결국 그들이 이슬람 공화국을 건립하는 순간부터 미국 대사관엔 미국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979년 일이다.
주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명명된 그 사건은, 1981년 인질이 전원 석방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이후 수 십년간 이란과 미국은 서로 앙숙이 되어 2017년 현재까지 핵 협상 타결등의 이슈로 으르렁 대는 중이다.
테헤란의 전 미국대사관은 TALEGHANI지하철 역에서 가장 가깝다.
이 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이런 벽면이 보이게 되는데, 지금부터가 과거 미국 대사관이었던 곳의 모습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도 느낌 오지 않은가?
'어떻게 대사관 벅면에 이런 선동적인 문구가'라고 느낄 찰나, 이건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는게 드러난다.
갈기갈기 찢긴 성조기에, 마치 미이라와도 같은 자유여신상.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스라엘이 있다는 이 프로파간다 아트 역시 미국 대사관으로 쓰던 건물 외벽에 그려져 있다.
이렇게 누구라도 지나가면서 볼 수 있게 끔 말이다.
그리고 전 미국 대사관을 한바퀴 돌아보면, 이런 선동적인 그림과 문구로 도배가 되어있다.
이 곳에 방문하는 것 만으로도 이들의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오늘 방문했던 골레스탄 궁전과 전 미국대사관이 같은 테헤란이란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라 생각했다.
이미 페르시아 사람들은 17~18세기에 서양의 영향을 받아들여 세계화 그리고 융합의 산물인 골레스탄 궁전을 건축했다.
그런데 불과 2~3세기 만에, 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글의 서두에 인용했던 교수의 말에 의하면 Localization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의 짧은 지식과, 섣부른 판단으로 어느 것이 더 좋다는 평을 할 순 없다.
분명한 사실은, 아직도 테헤란에는 골레스탄 궁전과 전 미국대사관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역설의 인식은 이란의 근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밑 바탕이 된다.
이란에서 여행하며 공부했던 이 곳의 근 현대사는 다른 지면을 빌어 적도록 하겠다.
골레스탄 궁전 그리고 전 미국대사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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