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전]
비자를 발급받자마자 보이는 환전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마 이 때부터였을 것이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극과 극의 경험을 시작한 것 말이다.
"환전하러 왔어. 환율이 어떻게 돼?"
나의 질문 한마디에 환전소 직원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나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만 본다.
'아- 내가 그렇게 잘생겼 영어를 못 알아듣는구나'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보통 환전소 직원은 계산기를 두드리거나, 유리창에 적힌 환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종이에 적어서 환율을 알려주는 방법을 사용할텐데, 대체 무슨 상황이지? 라고 생각하는 찰나 답변이 돌아왔다.
-"1달러, 20,400리알. 그런데 여기서 환전하지 마. 더 환율 좋은 곳이 공항 2층에 있어"
매우 유창한 영어였다.
하지만 그 보다 놀란건 이 곳에서 환전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직원.
뭔가 이상했다.
분명 더 좋은 환율이란 합당한 이유까지 대면서 내게 말을 건넸는데도, 나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반신반의하며 공항 2층으로 올라가보니 정말로 환전소가 있었다.
심지어 환전소 직원의 말이 맞았다.
이 곳은 1달러를 31,800리알로 바꿔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지점부터 오만가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란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할리 없다'
'아니 이건 친절의 정도가 아니라, 너무 이상하다'
'2층 환전소는 위조 지폐로 환전해주는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 국제공항인데, 위조 지폐는 아니겠지?'
'그래 위조지폐가 아니라면 밑장빼기 기술을 사용하려고 하는건가?'
하지만 2층의 환전소 직원은 아주 간단한 영어밖에 구사할 줄 몰랐기 때문에
난 체념한 듯 100불짜리 지폐 3장을 건넨다.
위조지폐로 환전 해주거나, 내 100불 지폐를 1불로 바꿔치기 하는 순간, 공항 경찰을 불러서 응징하기위한 계획도 맘 속으로 세워둔 참이었다.
"환전해줘"
그리고 내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 버리듯,
직원은 9,540,000리알을 내게 건넨다.
밝은 빛에 지폐를 비추는 나를 보며 직원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거 위조 지폐 아니야"
밝은 웃음이었다.
[테헤란 시내로]
이란 여행의 시작부터 이 나라의 친절에 감동했다.
이제 테헤란 시내로 이동해 미리 알아본 호스텔로 움직일 차례다.
(이란이란 나라에 잔뜩 긴장한 나는 숙소를 미리 알아보기 까지 한 것이다)
이 곳 사람들의 친절함은 이미 증명되었으니 이제 묻기 시작한다.
"테헤란 시내로 갈려면 몇 번 버스 타야돼?"
아무나 붙잡고 물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묻기 시작한다.
"우리 지금 여기~ 공항, 나~ 테헤란 저기~ 갈거야. 이맘호메이니 스테이션"
그제서야 사람들은 나를 택시 승강장으로 데려온다.
"아니야~ 아니 택시 NO NO, 버스, 버~~스"
나를 이 곳까지 데려온 사람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끼리 말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난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니 가격이 적혀있었다.
SAMAND가 뭔진 모르겠지만 도요타, 폭스바겐, 밴 순으로 적힌걸로 보아, 작은 차종일 거라 판단하고 가격을 본다.
400,000리알에서 500,000리알까지 의미는 알겠는데, 대체 이 가격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천사같은 이란여자가 다가와 말을 건다.
나는 귀를 쫑긋하고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영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맘 호메이니 스테이션을 반복하는 내게 끄덕이며 택시에 타라고 말한다.
가격 흥정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목적지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 사람과 함께 택시 셰어를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건 순전히 이 꼬마 덕분이다.
'어쨋든 꼬마가 있으니, 내게 쉽게 사기는 치지 못하겠지'
그렇게 난 얼마를 내야하는 지도,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현지인들과 택시를 함께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맘호메이니 공항에서 테헤란 시내쪽으로 향하다 보면 이런 건축물이 보이는데, 이름은 아자디 타워다.
1971년 페르시아 개국 2,500주년 (무려 2,500주년) 기념으로 건설한 탑이 이 것인데,
70년도에 만든 건축물 치고 보존상태가 매우 좋고, 화려한 탑이었다.
택시는 아자디 타워를 근접해서 계속해서 달린다.
물론 난 그 와중에 이란 꼬마와 절친이 되어 있었다.
서로 단 한문장의 의사소통도 할 수 없었지만, 꼬마는 본능적으로 잘 생긴 사람을 알아보는 듯 했다.
[잘 생긴 동양인을 쳐다보는 이란 꼬마]
아자디 타워를 지나 수 분을 달렸을까?
택시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내게 내리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난 엉거주춤하며 지갑을 꺼내려던 찰나, 공항에서 말을 걸었던 이란 여자(꼬마의 엄마다)가 택시기사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여자쪽에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고, 택시기사가 꼬리를 내리는 기세였다.
그렇게 1분이 지났을까?
택시기사는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차를 운전해 앞으로 가기 시작한다.
당시는 그 상황을 몰랐지만, 내 목적지는 이맘 호메이니 지하철역이었고 택시기사는 출발 지점이었던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에 나를 내려줄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때 이란 여자가 아마 이렇게 말 했을 것이다.
'외국인인데 여기 세워주면 어떡해, 지하철로 한번에 갈 수 있는 역까진 데려다 줘야지'
[Iran Tehran Metro map]
그렇게 택시는 몇 분을 더 달려 Tehran (SADEGHIEH) 전철역 앞에서 멈춰선다. (위 지도의 빨간점이다)
이란 여자는 나를 보며 싱긋 웃더니, 꼬마의 손을 잡고 흔든다.
택시비는 300,000리알.
아까 공항 택시정류장에 적혀있던 가격보다 저렴하게 온 셈이다.
물론 그 가격이 어디까지 가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란 꼬마와 즐겁게 놀았고, 무엇보다 이란 사람들의 따뜻한 맘을 또 한번 느낄 수 있어 무척이나 좋았다.
아무래도 이 곳은 천사들이 사는 나라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전철역에 들어가서 지도를 본다.
분명 이 곳은 2호선이 시작되는 곳이고, 내 목적지인 이맘 호메이니 역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머리 속에서 과분할 정도로 정직하고 친절했던 환전소 직원과, 택시기사와 다퉈가며 내 편의를 봐준 이란 모녀가 떠올랐다.
빙긋 웃으며 전철표를 끊으러 가던 찰나,
난 이란 경찰에게 연행된다.
[입국 첫날 경찰 연행]
전철역 안에 있는 파출소 안.
경찰 두명은 히죽거리며 큰 배낭을 앞뒤로 맨 잘생긴 동양인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두 명 중 한 명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시비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별 의미없는 질문을 던지며 자기들끼리 껄껄대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기분이 나빠졌다.
"나 숙소로 가야돼. 어제 인도에서 출발해서 엄청 피곤해"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경찰 둘은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자기들끼리 수근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렸을까?
영어를 하는 쪽이 내게 말했다.
-"너 가방 열어봐"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대답한다.
"싫어"
영어를 못하는 경찰 쪽도 'NO'정도는 알아듣는지, 안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가방 열어"
"싫어"
어쩌면 천사처럼 친절하고 착했던 이란 사람들을 만난 직후 이런 기분 나쁜 경찰들을 만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타국에 입국한 첫날부터 공권력에 대항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그네들이 알아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아까 니들이 물어본 한국에서 왔고, 북쪽 아닌 남쪽이고, 정식으로 이란 입국 비자 발급 받았다. 차도르? 히잡? 부르카 ㅅㅂ 어쨌든 그거 안했다. 왜냐고? 난 남자니까. 그런데 지하철을 타려던 나를 다짜고짜 연행해서 의미없는 질문 하더니, 니들끼리 낄낄거리고, 내 가방까지 열어보라고? 싫다. 지금부터 난 아무 말도 안할거고 대한민국 영사관에 전화해라. 감금하든지 말든지 그건 내 알바 아니다."
그렇게 씩씩대며 한참을 영어로 내뱉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삽시간 경찰들의 안색이 바뀌고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또 다른 경찰이 방 안에서 나온다.
두 경찰보다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걸로 보아 상위 직급의 경찰로 보였다.
새로 나타난 경찰은 두 경찰과 계속 말을 하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 이 경찰들이 동양인들을 실제로 못 봐서, 친근감의 표시였다. 그리고 가방은 한번 열어서 보여달라. 테러(까지 이야기하고 경찰은 말을 멈췄다),
음.. 위험물은 반입이 안되고, 우린 경찰이라서 그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한번이면 된다."
이 경찰이 조금 전의 두 경찰과 다른 점은 내게 부탁을 했다는 점이다.
최소한 영어단어 Please를 사용하여 말을 하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다.
사실 이 남자의 체면을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두 경찰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수록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해서 난 가방을 한번 열어 그들에게 보여준다.
거기서부터 경찰서를 나오는 데까지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시시하게도 말이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했다.
설마 내가 테러리스트나 체제 전복을 위해 적국에서 잠입한 스파이처럼 보였다는건 아니겠지?
난 평범하게 잘생긴 순수한 동양인 여행자일 뿐이다.
(머리의 1/3쯤은 밀어버렸지만 말이다)
[평범하고 순수한 동양인 여행자]
[Mashhad Hostel]
감정의 기복이 폭발적으로 오르내렸더니 허기가 졌다.
하지만 다행히 전철은 한번에 이맘 호메이니 역까지 왔고, 거기서부터 미리 알아봐둔 Mashhad Hostel로 발걸음을 향한다.
Mashhad 호스텔은 Amir Kabir St.를 따라 주욱 걸어가면 직선거리로 약 3~400m정도 떨어져 있다.
호스텔 로비 직원은 딱딱했다.
내게 방 열쇠를 던져주며 한마디 덧붙인다.
"여기 죄다 일본 사람들 뿐이야. 그런데 너처럼 한국에서 온 여자가 딱 한명 있지. 이따 오면 소개시켜줄게"
조금 딱딱한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극과 극이구나.
시작부터 친절한 직원을 만났고, 제 편의를 위해 나를 내동댕이 치려했던 택시기사가 있었고, 그 기사와 대신 싸워준 이란 여자를 만났으며, 그 여자의 꼬마와 친해졌다. 1분 뒤 나를 조롱하는 경찰 둘에 잡혔으며 모진 고초(?)를 겪던 중 정중한 경찰을 만난다. 위쪽에 적진 않았지만 지하철 객실에서 만난 어마어마한 근육을 가진 이란 남자는 굉장히 깍듯한 몸짓으로 내게 자리를 양보했었다. 호스텔 주인은 딱딱하다.
양극단을 오간다는 느낌이 이런걸까?
오늘 입국 후 있었던 소소한 사건들 그 자체만으로도 지쳐버린 난 허기도 잊은 채 단잠에 빠져든다.
인도에 처음 입국했을 때처럼 구걸을 하진 않았지만, 이 곳에선 첫 날부터 경찰에 연행되었구나.
그 사실이 우스워 킥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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