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을 치며 랩을 하는 기분이야..]
[그래? 난 드럼따위 쳐보지도 않고, 랩도 해보지 않아 대체 네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어.]
[드럼을 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의 힘을 쏟아부어야해. 모든 신경을 두 손끝에 집중해서 허공을 갈라버리며 소리를 만들어야하는거지. 그런데 랩까지 한다는건 말이 안되는거야. 허섭스레기같은 놈들중에 드럼을 치며 랩을 하는 드러머가 있어.]
이 놈의 말은 거짓이다.
12년 동안이나 스틱을 잡고 있던 이 놈에게 내가 드럼을 치는 법을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농인것이다.
아무리 스틱을 부러뜨렸다 해도 12년이란 세월은 그를 쉽게 놓아두지 않는다. 시간은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이제 부터 그런 엿같은 기분을 어떻게 없애지?]
항상.. 질문.
이 녀석은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으면서.. 항상 내게 질문한다.
기분이 초라해진다기보다 비참해진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절대로.
[맥주를 마시자. 네가 맥주를 몇병 마시면 취하는지 알고 있어?]
[아니.. 맥주를 마시고 취해본 적은 없으니까.]
[그래? 난 있는데.. 정확하게 34병을 마시고 취했어.]
[34병이라..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조금이 아니야]
한병 두병, 테이블에 27병의 빈병이 굴러다니고 있다.
종업원이 몇 번이나 치운다고 찾아왔지만 거절했다.
맥주를 마시고 취하려면 테이블에 빈 병의 수를 확인해야하니까.
그따위 방법으로 밖에 취할 수 없는게 맥주니까.
이제 30병이다.
서로 15병씩 마신 셈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48병.
그 녀석이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테이블에 토악질을 해댄다.
말 없이 등을 두드려주고 화가난 듯한 얼굴로 주인이 병을 치운다.
48병.
아직 멀었다.
[자리를 옮겨선 안돼.. 그럼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니까.]
내가 말한다.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또다시 토악질을 한다.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토악질을 하는건 오랜만이다.
그런데 토악질을 하는 방법은 뭐였더라? 변기로 가서.. 머리를 감아야했던가?
농담.. 그래.. 쓸데없는 농담은 집어치우자.
주인장에게 빈 병을 되찾아온다.
되찾아 오는 방법은 간단했다. 내 지갑을 열어 충분한 지폐가 있다는걸 확인시키고 받아왔으니.
다시 시작한다.
68병..
내가 그날 그 녀석과 68병의 술을 마셨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취하고, 그 녀석 또한 취해버렸으니.. 분명 우리는 각각 34병의 맥주를 마신게 틀림없다.
그렇게 믿고있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미치도록 마셔대더니.. 이제 기분은 좀 좋아졌어?]
[이제.. 기타를 치며 머리를 흔드는 기분이야.]
최상의 기분.
항상 복잡하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대신 나의 상상력도 넓어진다.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염려해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 때부터 나는 보통남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고, 그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네 기타연주를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
집안 어느곳엔가 박혀있던 기타를 들고온다.
아무 말 없이 앰프에 전원을 키고, 잭을 연결하고, Overdriver effecter를 꼽는다.
neil zaza의 I'm alright.
그 녀석이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
난 괜찮아.
곡을 끝까지 연주하고 전원을 끈다. 그리고 젖먹던 힘을 다해 기타를 벽에 집어던진다.
바디와 넥이 두동강 나고 다시 바디를 들어 벽에 집어던진다.
나무가 결대로 갈라지고 6줄의 스트링이 제 멋대로 운동한다.
그가 웃는다.
내가 웃는다.
꽤나 호탕하게.. 우리가 처음 기타를 잡고, 스틱을 잡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나는 기타를 연주하며 헤드뱅잉을 하는 기분이고, 그는 상의를 탈의한 채 드럼을 연주하는 기분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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