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오랫만에 식사를 마친 후 산책을 나갔다.
담배를 피워야하기 때문에.
걸으며 음악을 듣고 담배를 피는게 주목적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그래야만 한다.
잠옷으로 쓰고있는, 회색 면 츄리닝에 티셔츠 한벌, 굴러다니는 패딩을 걸치고 모자를 눌러쓴 채 담배를 물고 걸어가던 중이었다.
심하게 짧은 검정 미니스커트에 망사 스타킹, 뾰족 구두, 그리고 내가 걸친 패딩과 똑같은 패딩을 입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몇 안되는 인간들 중에서도 몇 안되는 여자친구였다.
대뜸 나를 보고 말한다.
"뭐야? 내꺼랑 똑같잖아?"
누나 옷이었구나.. 어쩐지 패딩주제에 엉덩이도 가리지 못하더라니..
그 친구는 이미 만취한 상태였다.
주절주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지껄이더니 내 손을 잡고 근처 술집으로 들어간다.
"오랫만이다."
"그래"
"뭐하고 지냈냐?"
"몸 팔고"
"나랑 비슷하네.. 나도 몸 팔아먹고 사는데"
"웃기지마 새끼야.. 난 여자고 넌 남자잖아."
술은 한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몸을 판다고 얘기했을 때 이해하지 못했을까.
내 주위 사람은 언제나 착실한 일을 하며 살아가야한다는 법도 없는데.
그 상황에서 내가 한 소리는 고작
"힘들겠네."
"그래, 힘들어. 언니, 여기 소주 한병"
소주가 나오자마자 뚜껑을 돌려 따버리고 벌컥벌컥 마신다.
말릴 생각은 없다.
내가 저 따위 방법으로 소주를 마시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으니.
말리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1/3이나 마셔버린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좋을대로"
"우리 학교 다닐때 2년인가? 어쨋든 그렇게 같은반 된 적 있었잖아."
"5,6학년이야"
"그래.. 그때 혹시 내 성적 기억해?"
기억할 리가 없다. 내 성적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리고 내게 묻고싶은게 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
"난 기억해, 줄곧 1등 아니면 2등이었거든"
정적이 흐르고 또 다시 소주병을 든다.
이번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제지한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냥.. 나 같은 놈한테는 직감이란게 있는 것이다.
"무슨 일 있어?"
"만나서 반가웠다. 나 일하러 가봐야돼."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더니 내 앞에 놓고, 핸드백에서 버지니아 슬림을 꺼낸다.
점심때 중국집에서 가져온 성냥에 불을 그어 그녀앞에 디민다.
웃는다. 웃는 모습은 순수한 시절의 그때와 똑같았다.
아주 조금도 변하지 않은채로.
"여자 다루는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예전이랑 엄청 변했어 너."
그렇게 두, 세모금 담배 연기를 흩뿌린다.
"그거 알어? X같은 세상이 나 이렇게 만든거?"
그리곤 일어서 총총사라진다.
내 앞에는 붉은 립스틱이 묻은 소주병과 반도 타지않은 버지니아 슬림이 재떨이에 쑤셔박혀있고, 만원짜리 지폐와 샤넬No.5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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