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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070810)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오랫만에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쯤의 일이다.

 

집 앞에서 일전에 말했던 그녀를 다시 만났다.

 

이상하리만치 이 거리를 걷다보면 자주 그녀를 만나게된다.

 

"잘 지냈어?"

 

내 인사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내 손목을 움켜쥔 채 큰 도로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나는 아무말 없이 끌려간다.

 

이건 조직폭력배에게 끌려가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니까.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녀는 또 다시 소주를 주문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술.. 소주.

 

그녀는 소주가 마치 생명의 물이라도 되는 양, 유유히 미소를 짓는다.

 

"그때 봤을 때 보다 살이 더 빠졌네?"

 

"내 몸무게는 5년 전부터 고정이야."

 

"너랑 얘기하고 싶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핸드폰에는 그녀의 이름조차 저장되어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무슨 얘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웃는다.

 

세상이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 두명이 술집에 앉아 할 얘기가 못 된다.

 

그렇게 말 하려던 찰나

 

그녀가 말한다.

 

"내가 볼때 넌 참 강한 사람이야."

 

잠시후 대답한다.

 

"알아."

 

"그럼, 강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아픔을 끌어안은 채 잠식해버릴 거란 것도 알겠네?"

 

침묵한다.

 

그녀는 하루키를 읽은게 틀림없다.

 

내 주위에 하루키를 읽고,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게 신기하다고 생각할 때 쯤 그녀가 다시 말한다.

 


"내가 볼 때

 

넌 너무 강해서, 혼자 내버려 두면 안되겠어."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가슴까지 오는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세차게 두세번 흔든다음 나를 쳐다본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난 너를 구원해줄 수 없다는 눈으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다라는 몸짓으로.

 

 

난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반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난 끝까지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생각에 잠긴다.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은 채 깊은 심연속으로 침식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