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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120205) 히말라야 등반기

by 빛의 예술가 2012. 9. 26.

폭죽이 멈췄다.
내가 히말라야로 출발하던 그 순간부터, 다시 나의 침대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그것도 쉴새없이.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이 평생동안 바라봤던 폭죽을 모두 합쳐도 나의 열흘에 미치지 못할게다.

암유로서 폭죽은 마치 나의 히말라야 입성을 찬미하는 취주악인양 울러퍼졌고,
직유로서 폭죽은 내가 딛고 있는 이 세계를 별천계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히말라야는 아름다웠다.
멍하니 바라만 봐도 좋았다.
이백이 살아 생전 히말라야를 본 적이 있었던가?

있었다면, 분명 별류천지비인간에 필적하는 문장을 남겼을텐데 말이다.
온몸이 저릴 정도로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에 나란 인간도 사랑을 했을 것이다.
그 것이 언제인지, 상대가 누구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히말라야는 사랑에 빠져 쿵쾅거리던 그 시절 내 심장 박동을 그대로 재현시켜 주었다.


그 것은 순전히 해발고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일요일 점심부터 감상에 빠져 과거의 로맨틱한 기억을 추억하는 억소리 내는 영감같은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가빠지는 들숨, 촉촉이 목덜미를 적시며 흐르는 땀까지
모든 것이 그 때와 동일하였다.



3천미터 이상을 오르자 배가 고파졌다.
이틀 전 묵었던 호텔에서 아침으로 던져줬던 작은 빵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그녀와 클럽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홍대에 난무하는 가짜 클럽말고, 진짜 음악이 울려퍼지는 진짜 클럽 말이다.
그때도 스프와 함께 빵을 먹었었다.
스테이크 종류는 끝까지 기억할 수 없었다.
음료는 웰치스였던걸로 기억한다.

술을 마시는게 제지되는 시대였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술을 마실 수 있던가??
나와 상관 없으니 그리 궁금하진 않지만.




가방을 열어 빵을 꺼내자 우스운 모양새였다.
기압의 영향인지 포장지가 더 이상 부풀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빵빵해져있었다.

'이걸 어떻게 뜯어먹지?'

혼잣말 하며 웃었다.
그리고 우유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유가 가방에서 터져버리면 곤란해지니까.

그리고 고등학생 때 물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만약에라도 포장지가 손에서 폭발하면,
아프니까.


다행스럽게도 빵은 내 손에서 폭발하지 않았다.
의외로 쉽게 포장지를 제거한 후 빵을 먹었다.

그러고나니 우유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빵과 함께 마시는 물은 마치 메이시 그레이가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과도 같았다.


이제 3천 5백미터 
발 주위가 눈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정상까지는 온통 설산인 것이다.

3천 6백미터 
바람이 불었다.

스물 여섯해를 살아오며 이렇게 강한 바람은 처음으로 맞아봤다.
뒤쪽은 낭떠러지였는데, 앞쪽에서 그 바람이 불어와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 엎드리고 말았다.
그 정도로 세찬 바람이었다.

그런데도,
그 바람은 엎드린 채 떨고 있는 나를 서서히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무섭다기보다, 눈물이 났다.

이 역시 감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엄청난 바람이 눈을 자극하자 눈물이 흐른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바람에 날아가 죽은 사람이 있었던가?
그 따위 터무니 없는 실족사는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히말라야의 새 역사를 쓸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살려달라고 외치려던 찰나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일어서는 그 순간 
야속한 바람이 또 다시 불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그 여자와 나는 다툰적이 없었다.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을까?
아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딱 한번,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어?"

화를 내는 것이라기 보단, 실망섞인 발언이었을 게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26살이 된 나를 그 장소, 그 시간으로 돌려놓는다고 해도 아마 같을 것이다.



세상이 정말 작게 보였다.
귀가 멍멍했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 백두산? 혹은 한라산이었던가?
가물가물 했다.

아, 현 정권 하의 백두산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
그럼 한라산.

한라산의 해발고도는 2천미터가 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난 지금 한라산 두 개를 합쳐놓은 이름도 모르는 산을 오르고 있다.



옆 봉우리에서 세차게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치 산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거대한 눈보라를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M83이 생각났다.
슈게이징이 듣고 싶었다.

M83의 신보처럼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미 난 한국을 벗어나 세계 속으로 뛰어 들었으니 말이다.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비인류가 나를 관찰하면 박장대소할 일이겠지만,
지금 내게 있어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은 꿈을 꾸는 일이었다.

바람이 불면 초라하게 바닥에 엎드리고, 가져간 빵을 멋지게 뜯지도 못했으며, 립밤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도 못해 불어터진 입술로 물을 한 모금씩 들이켰지만,

행복했다.

이렇게 히말라야에 다녀온 감상을 쓰고 있지만,
내가 느낀 것의 1할도 말할 수 없다는 것 역시 행복했다.

난 이 지구별의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그렇게 꿈 꿀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어쩌면 이 곳은 당신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히말라야는 아닐 것이다.
그런 히말라야는 수 천만원 짜리 장비를 가지고 오르는 곳이니까.

하지만 이 곳 역시 히말라야임에는 거짓이 없다.

내겐 이 곳이 에베레스트였다.
오르는 매 발걸음, 내쉬는 매 숨소리가 그 지려에 화답했다.
히말라야 산맥의 5천 3백미터짜리 낮은 산이었지만, 정말 이 곳은 내게 에베레스트와도 같았다.



이번에는 바람이 그리 세차게 불지 않았는데 
눈물이 찔끔 흘렀다.


무지 사랑하던 Hurry up, We're dreaming앨범의 intro가 떠올랐다.
we don't need a real world.


생각이 달라졌다.

내겐 이 세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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