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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120314) 100,000,000

by 빛의 예술가 2012. 9. 26.

직원들 월급일은 15일이다.

매월 월급날이 되면 총무팀에서 내게 직원들의 급여 명세서를 보내주는데, 그다지 보고싶지 않아 서랍에 잠시 넣어둔다.

그리곤 이름만 대충 찾아 직원들에게 전달한다.

물론 개별 국가마다 경쟁력이 상이하고, 국부도 그에 따라 분배된다는 객관적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허나 이 것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문제 제기는 가능했다.

난 지구별 일주를 꿈꿀 수 있지만, 내 직원들은 모국 일주도 꿈꾸기 힘들다.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두 번째로 행했던 작년 연말 정산에서는 환급까지 받았다.

아마 국세청장 이하 직원들이 이렇게 말하며 세금을 돌려줬을 게다.

"대한민국 성인이 평균 4.2장을 보유하고 있는 신용카드가 한 장도 없으면서, 체크카드만 들입다 써대는 네 놈의 세금은 필요없다. 이거나 먹고 꺼져라. 올해는 부디 신용카드를 만들어 국익창출에 이바지할 것이며 나아가 각하의 위대한 업적인 국가 브랜드 향상에 힘을 보태라."


흥이다.

난 이제 네 놈들에게 건강보험료는 물론 갑종근로소득세도 내지 않는다.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통장에는 계속 US달러가 쌓이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돈조차 쓰지 않고 있다.




1억이다.

이 속도대로라면 내가 서른 살이 되기 전, 통장에 1억이 꽂힐 예정이다.

단순 사칙연산으로 8개의 동그라미가 결과물로 도출되었을 때 사실 난 웃고 있었다.

조금 비겁했지만 비릿한 미소를 띄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1억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자,

마이클 잭슨이 죽었을 때 처럼 우울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이유로 세계 일주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사실 세계 일주는 올해라도 당장 떠날 수 있다.

노숙을 몇 번 더 하고, 싸구려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되니까.

하지만 여행 내내 노숙을 하고,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실행조차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었다.

용기나 의지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체력과 여유의 문제도 아니다.

오로지 돈 때문이다.



많이 받는 직원들도 있지만, 평균을 내 보면 2,000원을 상회하지 못한다.

그들은 한 달 26일을 일한다.

그들은 하루 11시간을 일한다.

그들의 시급은 6.993원에 못 미친다.

쉼표가 아니라 점이다.

다시 말해 7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중국의 물가는 저렴하지 않다.

외려 어떤 물건은 한국보다 고가로 팔린다.


그런 환경에서 '너희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느냐?' 

물어봤다.

'난 당신이 먹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사는 물건을 사지 못한다. 당신이 가는 곳에 갈 수 없고, 자는 곳에서 잘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의 꿈을 더 이상 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살아갈지 모르지만, 난 오로지 꿈만 꾸며 살아간다. 어쩌면 내게도 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그 것이 꿈처럼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물론 '너희들'에게 얻은 대답이 아니다.

내 머릿속에서 이런 지랄맞은 답변이 도출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서러웠다.



분명 사실이 아닌데,

이미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자본의 힘이 필요하다는 바탕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런 나는,

이십대에 1억을 손에 쥐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이다.

돈이 없으면 어디 가서 괜스레 부끄러워 하겠지만, 1억을 손에 쥐고 헤헤거릴 위인은 처음부터 아니었다.


그렇다면 손에 쥐게 될 1억보다 내 심장을 뛰게 만들 수 있는게 무엇인지 되뇌어보았다.

명석한 내 두뇌에서 답이 도출된다.



"모른다"

그래 

씨발 모르는 것도 정상이다.

하지만 난 알아야겠다.

그래서 난 지구별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1억이 모이면 전부 분탕질을 놓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답을 못 찾으면 다른 수작을 부릴 것이다.

명석한 줄 알았던 내 두뇌가 그렇지 않아 마흔, 쉰이 되어 답을 찾지 못할지라도

난 알아야겠다.



그리고 내 인생을 그렇게 살겠노라 다짐했다.

가슴이 조금 뛰었다.

생각했다.

"병신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애초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생명체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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