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한바탕 난지 매립장을 뛰어 다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른쪽 손목에 5cm정도의 얇고 긴 상처가 나 있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묘했다.
힘이 부쳤다.
좀 더 젊은 시절의 나는 2박 3일 동안 개처럼 슬램을 해도 끄떡없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월요일 저녁까지 끄떡없던 내 신체가 무너지는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침대에 몸을 뉘인지 한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오한이 밀어닥치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웠다.
뭐라도 먹어야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존 메이너스 케인즈가 말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 밖에 케인즈가 위대한 점은 삶의 종지부를 찍은 뒤 반 세기가 지난 현재도
그의 주장엔 조금의 헛점을 찾을 수 없다는데 있다.
"시장은 군중의 결과물이다"
당신은 모두가 개거품을 물고 달리는 중이다.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봤자 소용이 없다.
그건 더욱 비겁하고 멍청한 짓이다.
개거품을 물고 달리는 나를 쫒아
혹은
개거품을 물고 달리는 내게 쫒겨
한참을 달리는 중이다.
당신은 생각한다.
'이대로 멈춰선다면 권문경을 위시한 수 억명의 지구인들이 나를 밟아 죽일 것이다'
혹은
'이대로 멈춰선다면 권문경은 저 멀리 가 있고 수 억명의 지구인들이 나를 밟아 죽일 것이다'
멈춰설 수 없다
아름다운 신 자유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려야하는 것이다.
그게 싫다면 지구 밖으로 꺼져버리는 편이 낫다.
이 와중에도 자아를 배타적 소수로 만들고자 하는 자들에겐 경멸의 메시지를 보내야한다.
멈춰서지 않는다는 것은 소비한다는 것이다.
소비를 하지 않고선 이 곳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은 소비를 배태하고 소비는 생산을 배태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당신과 내가 있다.
이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말할 때는,
우리가 익히 들어 이제는 외울 정도가 된 칼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부루주아지는 거론할 수 없다.
감히 우리가 거론할 정도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던 숭고한 의사와, 신에게 무릎을 꿇은 성직자마저 돈으로 지배하는 존재들이다.
사실 성직자를 지배한다는 말은 옳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막스 베버는 이미 그 본질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자들은 배제한다.
무신론자인 당신과 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 그 자체인 것이다.
고리대금업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목사에게 돈을 건네 면죄부를 사는 것.
물론 이 매매행위는 루터의 격렬한 분노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근본은 자본주의를 잉태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거기서 비롯된 자본주의는 아름다운 시간을 잉태한다.
우리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모습을 견지한 채 그들의 지배 아래에서 힘껏 소비하면 된다.
소비하라.
자본주의는 죽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탑골 공원에서 기웃거리는 당신들은 이미 뒈지고 없다.
당신들이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처먹고, 폐지를 수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자본주의가 죽음에 맞서 싸우기 때문이다.
이미 평균 연령은 80에 육박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은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며 활짝 웃어야한다.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선 안된다.
"죽음만이 공짜다"
아니, 당신은 아직 죽어선 안된다.
소비해야한다.
경제학의 단기적인 면 만을 분석했던 존 메이너스 케인즈에게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장기적인 경제 본연의 치유장치는 어떻게 설명할 거지? 왜 경제를 단기적으로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그러자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시대의 명언을 남긴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잠에서 깨어나니 오한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난 넥타이를 매고 룰루랄라 서울 지하철 3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넌다.
한강은 며칠째 황토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단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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