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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10827)구스타프 클림트와 알베르 카뮈, 그리고 사랑 이야기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사람들이 왜 사랑을 노래하는지 알아요?

 

실존 철학에선 형이상하를 막론하고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가 있다고 규정해요.

 

카뮈가 그린 이방인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이 등장하고,

 

클림트가 써내려간 키스에는 절벽이 있는 것 처럼 말이죠.

 

하지만 초월적 존재 역시 양분되니 오늘은 그 본질에 대해 얘기할게요.

 

 

 

현실을 허구에 입맞춘 채 흘러가는 형이상학적 부속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실존 철학의 근원을 찾으면 니힐리즘에 접근하게 되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가 말한 것처럼 결국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겠죠.

 

그런 니힐리즘에서 실존주의자들이 파생되었다니 참 우스운 일이죠.

 

 

 

허무와 실존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어요.

 

사르트르와 카뮈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사르트르의 지적 한계는 두꺼운 벽에 부딪히게 되죠.

 

혹자는 그 사실을 부인하지만 말이예요.

 

 

 

반면 카뮈는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변하지 않을 이 시대를 그렸어요.

 

공허와 같은 이 곳에서 살아야하는 이유와 그 당위성.

 

그 모든 것이 카뮈의 그림 안에 녹아있어요.

 

그가 만든 시대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는게 재미있는 현실이죠.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

 

그게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예요.

 

허무에서 비롯된 실존철학이 말하잖아요.

 

 

"이 곳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사람은 그래서 사랑을 노래해요.

 

형이상하를 막론하고 그런건 없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