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잡문(旅行雜文)

히말라야와 똥골

by 빛의 예술가 2017. 5. 20.

쓰기 앞서, 해당 글에는 동물의 배설물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에겐 혐오스러울 수도 있으니, 보기 싫을 경우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의 똥골]

똥골이란 동네가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습게도 우리 나라에는 똥골이란 동네가 많다.

서울을 기준으로 종로구 관철동에서 종로2가로 이어지는 동네는 단순히 더럽다는 이유만으로 '똥골'이라 불렸었다.

그 자조적인 가학성에 조금 우스운 일이었다 치부할 수도 있지만,

곱씹어보면 참 가슴아픈 일이다.



대체 얼마나 더러우면 지명에 똥이 붙어버린걸까?

궁금했다.

찾아갔다.

그리고 그 곳은 내 생각보다 지저분하지 않았다.


내가 찾아가보지 못한 '똥골'은 여러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 뿐만 아니라 부산에도 있으며 대구에도 그런 곳이 있다고 들었다.

일일이 찾아가 보진 않았지만 공통점은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지명이 붙을 당시 동네가 지저분 했으리라는 것'

물론 그게 정식 명칭이든 아니든,

참 잔인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실제로 똥이 지천에 널려있어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는 동네라서 똥골이 되버린것이 아닌.

상대적으로 미관상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이름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ABC트래킹 그리고 똥]

ABC트래킹을 하다 보면 여러가지 웅장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동물의 배설물이다.



"아~~C!! 똥 밟았어!!!"


심지어 내가 ABC트래킹을 했을 때는 우기(Rainy season)라 배설물이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 곳 동물들은 모두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겪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되게 할 정도로 지천에 흩뿌려져있다.

물론 거기까지라면 참아줄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사실은, 내리는 비에 흩뿌려져있는 배설물 또한 이동한다는 사실.


노자는 상선약수를 말하며, 물이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말했다.

비에 섞인 똥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물론 트래킹을 하는 우리는 반대 방향이다. 아래서 위로 간다.

쏟아 내려오는 똥을 밟고 가야한다는 말이다.



처음 그 상황에 처해졌을 때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 상황이 반복되기 시작하자, 난 되묻기 시작한다.

"대체 무엇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가?"

답은 쉽게 도출 된다. 동물의 똥을 밟고 올라가야하는게 짜증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동물의 똥을 밟으면 짜증이 나는가?"

이번에는 조금 생각이 필요했다.

음.. 똥은 더럽기 때문에?


하지만 그 생각에는 논리 비약이 존재했다.

"배설물이 과연 의지를 가진 주체로서 나와 조우한 것인가?"

쉽게 자답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난 주체를 발견한다.



나야 나.

내 똥은 잘 밟으며 오르고 있니?

라고 말하는 듯한 히말라야의 염소.



그 밖에 또 다른 주체가 있는데, 그건 당나귀다.



여기엔 사진이 없지만 늑대나, 승냥이도 있을테고, 사슴이나 사자, 살쾡이나 호랑이 또는 삵같은 야생동물이 온 지천에 배설물을 남겨두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금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것, 배설물은 이 동물들의 소화작용에서 나온 부수적 결과물인 것이다.

그래, 모든 동물은 배설을 한다.

질문은 다시 나를 향한다.


"똥이 더러운가? 그럼 배설을 하는 나도 더러운 것이냐?"




그때부터 동물의 배설물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바뀌었다.

여기선 이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리고 이 배설물이 지천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은, 이 곳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억겁의 세월 동안 야생 동물의 배설물에 수차례 뒤덮히고, 자연상태에서 비료로 변해 대지에 영양분이 되고, 거기서 자란 울울창창한 거대한 산이 바로, 

이 곳이다.


만물의 영장이 아닌, 또한 이 곳의 주인이 아닌 우리들은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생각을 한 뒤로, 수분을 가득 머금은 동물의 배설물은 더 이상 나를 자극하지 않았다

물론 일부러 의식하며 배설물을 철퍽철퍽 밟으며 지나갔던 것은 아니다.

적당히 피할 수 있으면 걸음을 옮기고, 피할 수 없으면 밟는다.


하지만 질척이는 똥을 밟았다고 해서, 더이상 내 인상은 지푸려지지 않았다.





똥이 지천에 널려있어 똥골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똥이 지천에 널려 있지만 똥골이란 이름이 붙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대자연을 상대로 가치판단을 하려는 우둔한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