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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잡문(旅行雜文)

기괴한 성지(聖地), 바라나시

by 빛의 예술가 2017. 6. 6.


이 곳은 과거, 빛의 도시(Kashi)로 불려졌다.

한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았다면 누구나 기억할 법한 '갠지스 강' 중류에 위치해 있으며, 몇몇 방송이나 예능 프로그램에도 등장한 적이 있어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인도, 바라나시다.


8대 불교 성지(聖地) 중 하나가 네팔 룸비니였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라면,

이 곳은 힌두교의 성지다.

때문에 사시사철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의 행렬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이 가진 매력은 그들의 존재 유무가 아니다.


인도, 바라나시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성지의 고정관념을 원초적인 형태로 깨부수는 기괴한 아이러니위에 실재하는 공간이란 점이다.




첫 번째 기괴함은 미로다.

마치 도시가 잘 짜여진 한 판의 미로처럼 이루어져있는데, 이 곳에 머무는 내내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오밀조밀한 공간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 동물의 배설물이나, 쥐와 바퀴벌레는 너무도 당연한 모습으로 미로와 공존한다.


그래서 이 곳은 시작부터 사람들이 이제껏 가져왔던 성지에 대한 환상을 깨부숴버린다.

'더럽고 복잡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길을 맨발로 걷는다.




두 번째 기괴함은 사기(詐欺)다.

구걸정도야 받아줄 수 있지만, 이 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그 수준을 넘어서 사기를 친다.

초짜여행자가 아니라면 쉽게 당하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에, 조금 귀엽게 봐주자면 허풍이나 허세섞인 거짓.


카르마(업)에 기반하여 매일 도덕적인 삶을 살고 그를 통해 윤회하는 것이 힌두 교리이지만

힌두 성지에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은 그 교리를 실천하지 않는다.

그냥 사기를 친다.


물론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성지인 이곳에서 그런 거짓이 만연해있음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세 번째 기괴함은 죽음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도시에는 화장터가 있는데, 시체를 화장하며 갠지스강에 띄운다.

그들의 종교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성지인 이 곳에서 죽고 다시 윤회한다는 관점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생소한 사실은, 기다림이다.

이 곳에는 본인의 시체를 기다리며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죽음을 기다린다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그네들 생(生)의 최후의 목적이 화장당해 갠지스강에 뿌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꽤나 많은 액수의 돈이 필요하단다.

당연히 가난한 자들은 시체가되어 갠지스강에 들어갈 수 없다.


역설적인 사실이지만 위대한 자본은 이 먼 나라, 먼 도시까지 들이닥쳐

종교규범따위 간단히 뭉개버린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가 기괴한 이유는, 가트(돌 계단)에 있다.

이 도시의 명물이자, 다양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이 가트들은 18세기경 완공되었다.

사람들은 가트에 올라서 목욕을 하기도 하고, 성수를 담아가기도 하며, 빨래를 하기도 한다.

물론 시체가 둥둥 떠내려오는 황토빛 물이다.


이 정도라면 괜찮은 수준이다.

하지만 우기(雨期)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갠지스강이 범람하는 것이다.

가트를 넘어 크게 범람할 때는 미로와 같은 도시 곳곳으로 범람하기도 하는데,

'아포칼립스를 체험할 수 있다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말했던 모든 기괴함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태운 시체가 둥둥 떠다니던 물이 가트를 넘어 도시 곳곳으로 퍼진다.

그 물은 지저분한 쥐똥, 소똥과 쓰레기를 만나 하나가 되고,

사기꾼들은 그 물길을 맨발로 걷는다.

이 곳은 미로와 같아 한번 물에 휩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모든것이 만나 어우러진 그 물에 발을 담근 채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기괴함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성지다.

이 곳이 과거 빛의 도시로 불리웠던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빛이 보이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이 어둠과 지저분으로 점철된 미로 길을 걷는 중엔 빛을 쉽사리 찾아볼 수 없지만


길이 끝나는 순간, 환한 빛과 조우할 수 있다.



사람의 일생(一生)과 닮아있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괴함위에 세워진 이 곳은 성지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다.

어쩌면 지구상 존재하는 성지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성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과한 성지(聖地), 바라나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