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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코카서스(caucase)

(여행기/이란-아르메니아) 중동에서 코카서스로

by 빛의 예술가 2020. 7. 16.

중동에서 코카서스로 넘어간다.

중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만, 코카서스는 그에 반해 들어본 적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코카서스는 러시아 남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지형을 총칭하는 곳으로, 과거 소비에트 연방이기도 했으며, 이전에는 터키의 침략을 받기도 했던 국가인 아르메니아가 포함되어있다.

그밖에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을 포함해 코카서스 3국이라고 부르는데, 유럽이라 할 수도 없고, 아시아(중동)라 할 수도 없는 접경지역에 위치해있다.

 

어젯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북서쪽 국경마을인 졸파까지 왔으니 오늘은 이 곳에서부터 아르메니아의 고리스란 도시로 이동할 예정이다.

비용은 아래와 같다.

 

-이란 &아르메니아국경넘기 비용 (2013년 9월 기준)

  테헤란-졸파 버스 : 11h/25,000T

  졸파-노두즈 택시 : 1h/20,000T

  노두즈-아가랏 도보 : 1h

  아가랏-메그리 택시 : 2,000D

  메그리-카판 택시 : 10,000D

  카판-고리스 미니버스 : 3,000D

 

 

 

버스는 한달음에 달려 아침 7시 졸파에 도착한다.

이란의 잘 닦여있는 고속도로를 달려와서일까? 덜컹거림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잘 잤다.

하지만 역시 버스에서 자는 건 그리 익숙하지 않다. 

아직 하품이 계속되었고, 찌뿌둥한 몸을 깨우기 위해 기지개를 켠다.

버스에서 내리면 허허벌판에 작은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당연히) 택시기사는 가젤을 노리는 초원의 사자처럼 여행자들을 노리고 있다.

 

흥정을 시작한다.

나는 가젤이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난 역시 가젤이었나 보다.

아무리 흥정해도 잘 되지 않았다.

결국 테헤란에서 이곳 졸파까지 11시간을 달려온 안락했던 버스 가격(약 7~8 USD)과 비슷한 가격(약 6~7 USD)을 지불하고 또 다른 국경 마을인 노두즈까지 이동하기로 협상한다.

 

졸파에서 노두즈까지는 택시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이란에서 계속 보아왔던 지평선과 사막은 이미 오간데 없고, 나무가 없는 거대한 흙과 돌로 이뤄진 산이 장관을 연출한다.

 

국경마을인 이란, 노두즈(Nordooz)에서 아르메니아, 아가랏(Agarak)까지는 도보로 약 30분 ~ 1시간이 소요된다.

해가 뜨며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인도의 라다크 지방을 여행했을 때 봤던 특유의 황톳빛의 거대한 산은 이 곳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보이는 산은 Kantal국립공원과 Arevik국립공원이라고 하는데, 북동쪽으로 갈수록 흙산이 아닌 푸른 식물로 덮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산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걸으면 국경검문소가 나타난다.

 

 

국경검문소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사실, 세관 직원이었다.

여자 직원이었는데 무릎 위까지 오는 치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다리가 보였다.

 

"헉"

 

이란을 여행하며 매번 차도르, 부르카, 히잡으로 온몸을 꽁꽁 동여맨 여자들만 보다 치마를 입은 사람을 만나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고작 며칠 동안 이란에 있으면서 마치 내가 이슬람 원리주의 자라도 되어버린 양, 마음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천천히 출/입국 심사를 받으며 생각했다.

드디어 중동을 떠나 코카서스로 들어가는구나.

 

그렇게 치마 유니폼을 입은 세관직원은 내게 코카서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것을 복장으로 표현해준다.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중동을 떠나는 것에 아쉬움도 생겨난다.

 

 

다음은 아르메니아 비자 가격이다.

 

- 아르메니아 비자 정보 (2013년 9월 기준)

  120 : 15,000 AMD

  21 : 3,000 AMD

  3 경유 : 1,000 AMD

  18 미만 : 무료 AMD

(유효기간 지나면 5,000~10,000 AMD벌금 낼 있음 (Code 201 의거))

(2018년 3월 이후 대한민국 : 비자 면제국)

 

출입국 심사와 아르메니아 비자를 받았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이 곳에서 아가락(Agarak)마을까지 걸어가야 되는데, 그 시간을 포함한 것이 30분~1시간이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물론 택시를 타고 가면 몇 분 걸리지 않겠지만, 우리는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고 있고 여기서 아낀 비용으로 오늘 저녁 식사는 만찬으로 바뀔 수 있다.

아낄 수 있는 건 아껴야 한다.

 

 

이미 해가 중천을 향해 떠오르고, 계속해서 걸었더니 땀이 흐르고 목이 말랐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서 마을로 향하는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이런 멋진 풍경을 내게 선사해준다.

택시를 타고 빨리 지나갔다면 쉽게 볼 수 없는 모습들을 천천히, 내 보폭에 맞춰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행복감을 준다.

 

 

"멈춰 서고 싶으면 멈춰도 된다."

 

 

산과 강, 평화롭게 늘어서 있는 작은 집들은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가락(Agarak)은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고리스로 가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사실 론니 플래닛(Loney Planet)에서 가르쳐 준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아가락에 도착했으면, 메그리로 가라. 그곳에서 고리스로 가는 미니버스를 탈 수 있다"

 

정보가 많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론니 플래닛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답이다.

하여, 메그리(Meghri)까지 거리를 봤더니 대략 8~1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10km를 걸어가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미니버스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택시를 바로 잡아타는 것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아가락(Agarak)시내를 배회하며 메그리(Meghri)방향으로 가는 차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들었지만, 이 곳 사람들은 여행객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대략 20여 분 동안 그 짓을 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가까운 거리고, 한 방향 도로라서 차를 잡기만 하면 무조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쉬웠다.

 

뭐 어쩔 수 없다.

안되면 택시다.

 

기사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아저씨였지만, 손짓 발짓으로 가격을 흥정했다.

12,000 드럼을 불렀는데, 10,000 드럼으로 깎았다.

많은 택시기사들이 그렇지만 가격 협의가 되면 항상 쓴웃음을 지으며 유쾌하게 고개를 젖혀 차에 타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 곳도 마찬가지다.

 

시계를 봤더니 10시 51분이 지나고 있었다.

핸드폰을 봤더니 10시 21분이었다.

어라 뭐지?

 

생각해보니 아르메니아는 이란과 30분 시차가 있었다.

다시 시계를 이 곳에 맞게 조정한다.

30분을 벌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뿌듯한 감정이 생겼다.

 

풍경은 울창하고 멋졌지만, 가만히 있기에 심심해서 론니플래닛 뒤편에 있는 아르메니아 생존 회화를 택시 기사에게 써보기 시작한다.

'도착지까지 몇 시간 걸리나요?' 

택시기사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더니 아르메니아 말로 대답한다.

 

이게 문제다.

생존 회화는 의사 전달은 할 수 있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결국 손짓 발짓으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어낸다.

메그리(Meghri)를 지나 카판(Kapan)으로 간다.

 

메그리(Meghri)는 아르메니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슈니크 주(Syunik Province)의 마을인데, 시계를 돌려 소비에트 연방을 여행한다면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고, 아담하지만, 특유의 투박하고 딱딱한 잿빛으로 칠해진 건물이 온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렇게 건물과 건물을 연결해서 빨랫줄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멋졌다.

세탁물을 집게에 널고 줄을 당겨서 위치를 이동시키는 구조로 짜여져있었는데, 세탁물이 많이 널려있을 때 봤다면 온 마을이 세탁소인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바람과 햇빛에 건조도 빨리 되겠지.

 

단점은, 속옷처럼 프라이버시가 요구되는 건 널 수 없다는 것과 바람에 날려 떨어졌을 경우.

(도로에 떨어지면 그 옷은 버려야된다고 본다)

자동차 타이어가 몇번씩이나 밟고 지나간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을 테니까.

 

 

카판(Kapan)에 도착했다.

지금이 11시 25분이니 택시로 약 1시간 가량을 달려 온 셈이다.

 

그리고 잿빛 건물과 함께 또 여자가 보였다.

(자꾸 이 포스팅에서 여자, 여자 얘기하는데 나는 변태 성욕자나 그런게 아니다. 그냥 이란에서 넘어온지 채 몇 시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사람이 지나가는구나'정도로 느껴졌을텐데, 스키니 진에 웨지 힐을 신고, 차도르나 니캅, 부르카따위를 걸치지 않은 모습이 아직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여자를 보는 내내 이란(Iran) 생각을 했다.

그 곳에서 겪었던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어처구니 없었던 일, 맛있던 음식, 불쾌했던 일, 당황스러웠던 경험, 두려웠던 일, 즐거웠던 일.

모두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벌써부터 이란(Iran)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론니플래닛에 써 있는 정보는 '카판(Kapan)의 Hotel Lernagordz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고리스(Goris)까지 가는 미니버스가 있다' 였다.

먼저 호텔 앞이 공사중이어서 혹시 문을 닫았을까 걱정하며 안으로 들어갔더니 리셉션에 직원이 서 있다.

다행이다.

 

직원에게 여기서 고리스로 가는 버스가 언제 오느냐? 라고 물어봤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러시아 말이나 아르메니아 말을 배워오지 않은 내가 잘못이다.

론니플래닛을 펼쳐 생존 아르메니아 회화를 뒤적거리고 싶지 않아 한 가지만 이야기 한다.

 

"고리스(Goris), 고리스(Goris), 버스(Bus), 버스(Bus)"

 

통했다.

나를 골똘히 바라보던 동네 아저씨들이 "아아~"라는 긍정의 신호를 보내더니 내 팔을 잡아 끌고 바깥으로 나간다.

그리고 손을 뻗어 위치를 가리켜준다.

본인의 시계를 내게 보여주며 12시를 가리킨다.

좋다.

론내플래닛 정보와 동일했으며, 친절하게 안내해준 아저씨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웃으며 인사하는 것은 세계 만국에서 통한다.

 

아저씨들도 희뭇한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도 남았고, 배도 고팠기 때문에 식당을 찾았지만 안보였다. 편의점도 안보였다.

당연히 식당과 슈퍼마켓이 있는 마을이겠지만, 돌아도 돌아도 안나왔다.

 

이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곳의 글씨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과 사이가 좋지않은 이란에서도 '영어 표지판'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 곳은 영어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간판도 그러했다.

그나마 방금 방문했던 곳은 호텔이기 때문에 영어로 Hotel과 Restaurant가 적혀있었지만, 작은 상점들은 내게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동안 도로를 배회하던 중 작은 슈퍼마켓을 찾았다.

그런데, 살 만한게 없었다.

10초간 고민을 하고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을 고른다.

 

코카콜라와 읽지는 못해도 '초콜릿이 들어있는 웨하스'구나 라고 생겨먹은 과자를 구입한다.

가볍게 씹어먹을 요량이었는데, 포장을 뜯어보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작게 나눠져있는게 아니라 저 포장 통째로 웨하스가 하나였다.

 

해서, 웨하스를 고기 뜯어먹듯이 먹는 경험을 한다.

 

 

에너지를 섭취했으니 고리스(Goris)에 도착할 때 까지 문제 없을 것이다.

카판(Kapan)에서 고리스(Goris)까지는 미니버스로 약 2시간 ~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12시 전에 미니버스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사람이 다가와 물어본다.

 

"고리스(Goris)??"

 

끄덕이며 대답한다.

 

"응 고리스(Goris)!!"

 

그게 우리 대화의 끝이었고 3,000드럼을 요구했다. (약 7~8 USD)

그렇게 좌석에 앉아있으려니 미니버스는 12시가 되기 3분 전, 고리스(Goris)를 향해 출발한다.

 

 

미니버스에 기름이 없었는지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유소에 멈춰선다.

이상한 일은 사람들이 모두 미니버스 바깥으로 나가 멀뚱히 서 있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따라했다.

처음에는 '화장실을 가는건가?', '주전부리를 사러 가는건가?'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차에 기름을 넣을 때 까지 바깥에서 멍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르메니아 말로 그 것을 물어보고, 알아들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차에 기름을 넣던 도중 불이 났던가, 그런 일이 있던거겠지' 라고 내 나름대로 정의하고 다시 미니버스에 탑승한다.

 

아제르바이잔의 경계를 따라 굽이굽이 산길을 달린다.

사실 이 도로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경계를 계속 넘나드는데, 다행히도 입/출국 심사는 하지 않았다.

도로가 워낙 굽이치고, 양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그렇게 봐준거겠지.

만약 도로가 국경을 넘어갈 때마다 입/출국 심사를 해야한다면 고리스(Goris)까지 2,3시간이 아니라 6,7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 정도로 나는 미니버스에 탄 채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을 넘나든다.

 

14시 30분.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고리스(Goris)에 도착했다.

 

역시 론니 플래닛(Loney Planet)에서 추천하는 B&B를 하나 골라 성큼성큼 들어간다.

내가 선택한 숙소는 Lyova B&B.

아주 간단한 영어를 할 수 있는 주인이 있었는데, 분명 혼자 왔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트윈베드룸을 내게 선물해준다.

 

 

 

드디어 중동에서 코카서스로 넘어왔다.

이란에서 아르메니아로.

 

두 나라는 국경을 접해있지만, 전혀 다른 문화와 종교, 인종, 사회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차이를 치마 유니폼, 스키니 진에 웨지 힐을 신은 여성에게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