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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코카서스(caucase)

(숙소/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고리스 숙소 - [LYOVA&SONS B&B]

by 빛의 예술가 2020. 7. 17.

 

이 B&B는 론니 플래닛(Loney Planet)에서 추천하는 아르메니아(Armenia) 고리스(Goris) 숙소 중 한 곳이다.

고리스(Goris)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 다니며 숙소를 골라볼 수 있다.

내가 묵었던 이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즈넉하고, 소음이 없고, 초록으로 빛발 하는 넓은 정원이 있으며(식사도 가능하다), 이국적인 풍경의 숙소 환경도 훌륭한 곳이다.

 

초보 여행자들에게는 B&B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 있지만,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Bed & Breakfast라고 해서 숙박을 할 수 있고, 아침을 제공하는 숙박업소를 B&B라고 부른다.

 

- 숙소 정보

 상호 : LYOVA&SONS B&B

 주소 : Gusan Ashot 12, Goris 3201, Armenia

 전화 : +37477033313

 가격 : 7,000 AMD (약 15 USD) (1박)

 위치 : 하기 지도 빨간 동그라미 참조

(2013년 9월 기준)

 

아르메니아 고리스 지도 (빨간 점 : Lyova&Sons B&B)

 

 

먼저 차분한 초록빛의 나무로 휩싸여있는 넓은 정원을 지나 숙소 내부로 들어오면 좌측에는 부엌이 보이고 넓은 거실에 탁자, 그리고 언제든 마실 수 있게끔 마련한 커피와 차가 준비되어있다.

보이는 탁자나 의자, 수납장 같은 가구는 온통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포근한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식탁에는 체스판이 올려져 있는데, 사실 체스판을 실제로 보는 건 내 인생 처음이었다.

아주 가끔 PC로 체스게임을 해본 적이 있어서, 룰은 알고 있었지만 첫째 날은 같이 게임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 지나친다.

그리고 장식처럼 놓여있는 피아노, 이 당시만 해도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몰랐기 때문에 도레미파솔라시도 정도 기본 음계를 눌러보는 정도에 그쳤다.

'지금처럼 간단한 곡을 연주할 수 있을 때 이 곳에 갔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지'라는 생각에 그리운 감정이 묻어난다.

 

탁자에는 정체모를 과실주(로 추정)가 있었는데, 당연히 마시지는 않았다.

인도를 여행할 때는 이것저것 길바닥에 있는 것을 주워 먹으며 다녔었는데, 결국 심하게 식중독을 앓은 적이 있었다.

이틀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앓아누웠었다.

 

그 후로 먹고 마실 것은 최소한의 위생이 검증된 걸 고르기 시작했다.

(물론 점점 더 길게 여행을 하며 위생 따위 개나 줘버려! 의 마인드를 다시 장착하게 된다, 일단 마셔볼 걸 그랬다. 독극물을 식탁 위에 올려둘 정도로 나쁜 주인 같아 보이진 않았으니까)

 

추후에 이 곳에 가게 될 여행자는 저렇게 생긴 과실주(로 추정되는 액체)가 있다면, 꼭 한번 마셔보길 권한다.

그리고 후기를 댓글에 남겨주시면 그랜절 한번 올리겠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데, 가장 큰 장점은 샤워를 할 때 벽면 위쪽에 달린 창 밖으로 짙푸른 녹음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라오스의 훼이싸이에서 경험했던 30m나무 위 오두막에서 샤워할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초록의 나무를 보며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이 숙소의 강점 중 하나다. (물론 따뜻한 물도 잘 나온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나 B&B, 백패커스, 호스텔이 그렇듯이 공용 부엌도 제공하고 있다.

아르메니아(Armenia)도 과거에 소비에트연방의 하나였으니, 혹시 '사모바르'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러시아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사모바르'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추후 러시아를 여행할 때를 위해 미뤄두기로 한다.

 

대신 이국적으로 생긴 주전자가 있고, 냄비 뚜껑도 긴 손잡이가 달려있어 색다른 재미를 주었으며, 조그만 식기나 컵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건 아마 내가 중동국가 이란에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걸 수도 있겠다.

환경이 급변하는 것은 일종의 충격이겠지만, 그 충격에서 점차적으로 헤어 나올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다른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장기 여행을 하고 있지만, 매일 새롭고, 즐거운 이유는 환경의 변화가 주는 충격 덕분이 아닐까?

 

 

B&B (Bed & Breakfast)이기 때문에 당연히 조식(아침식사)을 제공한다.

물론 조식만 제공한다. (점심이나 저녁은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자)

 

아침이 되면 이 숙소의 주인인 Lyova가 사뿐사뿐 움직이며 실내에 있던 나무 테이블을 거실 한가운데로 옮기고, 식사를 준비한다.

메뉴는 빵과 비스킷, 소시지, 계란, 버터, 치즈, 꿀, 그리고 커피처럼 단출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여행 온 친구들과 눈을 비비며 먹는 아침 식사는 훌륭한 경험을 제공한다.

 

추후 여행기에 적겠지만, 나는 이 곳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며 만난 이탈리아 여자와 프랑스 여자, 그렇게 두 명과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이처럼 즉석 여행이나 동행도 쉽사리 구할 수 있는 자리이니, 졸리더라도 꼭 참석해서 아침을 먹도록 하자.

 

 

이 곳에서 머무르던 2박 3일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숙소 주인 Lyova와 기억에 남는 일은 내가 요리를 하고 있을 때 스윽 들어와서 제대로 된 요리법을 알려줬던 일.

그리고 아르메니아 전통 음식(으로 추정되는)을 대접받았던 일이다.

 

나도 영어가 그리 능숙하진 않지만, Lyova는 나보다 조금 더 표현력이 부족하다.

해서 우리는 눈빛과 웃음으로 대화를 나눴는데, 이 전통 음식을 대접받을 때는 화창하고 밝게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웃음을 지어줘야 했다.

사실 예의를 차리기 위한 가식적인 웃음이었는데, 그렇게 웃고 나니 정말 내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게 어떤 음식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토마토로 추정되는 것과 분명 바나나처럼 생겼지만 바나나는 아닐 것으로 추정되는 채소를 무언가에 절인 음식이었는데, 훌륭한 맛이었다.

이렇게 색다른 음식을 대접받는 것도 이국의 가정집을 겸한 숙소에 머무르는 소소한 기쁨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얘기할 때 잠깐 설명했지만, 이 숙소에는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넓은 마당이 있다.

한 켠에는 벙커 베드도 있으며(실제로 술에 취하면 저기에 누워서 별을 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해먹도 있고, 그네도 있다.

 

야외 테이블도 따로 마련되어있어, 둘째 날 저녁에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과 엄청 독한 술을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었다.

독일 여자, 폴란드 커플, 이란 남자, 조지아 남자, 이탈리아 여자, 프랑스 여자, 그리고 한국 남자인 나.

그렇게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댔다.

 

술에 취하면 그네도 타고, 벙커 베드에 누워서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건 푸른 나무들이다.

마치 안락한 숲 속을 거니는 기분을 들게 만드는 이 숙소의 마당.

내가 이 곳에 머무를 때 가장 사랑했던 공간이다.

 

 

아마 이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이 곳처럼 넓고 멋지진 않더라도, 나만의 작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것 말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 "아르메니아"라는 국가의 얘기를 듣게 되면, 가장 떠오르는 풍경 중의 하나다.

Lyova&Sons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