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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코카서스(caucase)

(여행기/아르메니아) 고리스 마을 여행

by 빛의 예술가 2020. 7. 21.

이곳 아르메니아(Armenia)는 역사가 긴 나라다.

현(現) 아르메니아 고원에 가장 오래된 국가로 알려진 것은 히타이트 점토판에 언급된 하야사(Hayasa)라고 한다.

그리고 이 하야사(Hayasa)는 BC 1,500년경부터 존재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대략 반올림해서 4천 년을 지속해온 나라인 셈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 견주어봐도 손색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온갖 민족과 제국의 침략이 지속된 탓에 면적은 우리나라의 1/3 가량, 인구는 약 300만 명이 못 되는 소국으로 전락한 나라.

 

그 나라에서 처음으로 여행한 도시가 바로 이 곳, 고리스(Goris)였다.

 

좌측에 보이는 벽돌집이 내가 고리스(Goris)에서 이틀간 묵었던 Lyova&Sons B&B이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주변 경치는 '황량함'그 자체를 보여준다.

 

사실 이 곳에 도착했을 때, 아르메니아의 고리스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

분명 마을 중심지를 가로지르며 론니 플래닛에서 알려준 숙소를 찾아갔는데, 마주친 사람이 한 두 명 정도였으니 말이다.

 

조용하고 고즈넉함을 넘어, 대지는 메말랐고, 공기는 황량했으며, 쓸쓸히 불어오는 바람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그게 아르메니아(Armenia)의 첫 여행지, 고리스(Goris)에서 받은 첫인상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이란(Iran)의 테헤란에서 잘 닦여진 2번 고속도로를 달려 국경마을을 지나 도착한 이곳 풍경에 작은 문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분명 내 시야각에 존재해야 할 모스크가 없었고, 아잔이 울려 퍼지지도 않았으며, 여성이 자유로운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곳.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이란에서나 아르메니아에서나 나는 문맹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 (외려 미국과 관계가 좋지 않은 이란에서 더 쉽게 영어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어를 사용하고 아르메니아 문자까지 지키고 있었는데, 어원적으로 그리스어와 유사하다고 한다.

꼭 생겨먹은 건 러시아의 키릴 문자 같은데, 어차피 난 키릴 문자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을 멈추기로 한다.

이란에서 글씨를 못 읽어서 낭패를 본 경험은 없었으니까.

다행히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한다. 처음에 이란에 도착해서 글자는커녕, 숫자 조차 읽지 못해 받았던 문화 충격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방향을 지시하는 표지판

천천히 마을 끝에서 끝까지 산책을 했다.

고리스(Goris)는 반경 약 1~2km에 건물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 곳을 산책하는 내내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며 내게 다가왔는데, 광장에 가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고, 간판이 많이 붙어 있어 번화가처럼 보이는 길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약 4천 년을 지속해온 국가 아르메니아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많은데, 그것은 바로 외세의 침략이다.

 

역사의 희비에 상대평가는 의미가 없겠지만, 중국이나 몽골, 일본의 침략이 끝이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는 이들이 겪은 일에 비하면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 생각한다.

이 곳 아르메니아는 12세기부터 외침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이들을 침략한 나라, 민족이 너무 다양하다.

셀주크 제국에서 시작해 이집트 맘루크 왕조, 몽골 제국, 중앙아시아 민족, 페르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이 각기 침략했으며, 그때마다 아르메니아는 저항하고 항복하고, 다시 나라를 되찾기를 반복한 역사를 써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러시아 제국이 침략을 해오고, 1차 세계대전 중 대학살도 당하고, 다시 소련의 침략을 받아 국호가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연방'으로 바뀌는 20세기까지 외세의 침략은 끊이질 않았다.

 

약 천 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함락되고, 독립하고, 다시 침략받기를 반복해온 역사.

그리고 이들의 마지막 독립은 1991년으로, 그제야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제 이름을 되찾는다.

 

 

 

 

이 작은 시골마을은, 폐허로 변해버린 건물도 있고, 돌벽이 무너져 내린 담도 있지만, 교회만큼은 성실히 보수공사 중이었다.

코카서스 3국을 여행하며 느꼈던 사실 중 하나는, 이란에서 모스크를 찾아볼 수 있는 것만큼이나 교회가 많다는 것.

(아르메니아의 국교는 아르메니아 정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교회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심지어 시골이나 산간벽지에 가더라도 교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차이점이라면 이 곳의 교회는 십자가가 반짝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밤이면 붉은색으로 빛나는, 우리나라 십자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은 존중한다)

 

바닥부터 외벽, 기둥까지 모두 돌로 만들어진 석조 건축물이었는데 황량한 이 마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교회였다.

잿빛 건물과 푸른 하늘의 대비가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소련의 침략 혹은 1차 세계대전 중 파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들은 방치된 채 황량함을 넘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이런 황량한 마을에도 (당연히) 사람은 살고 있었다.

좁은 골목골목 구석을 산책하던 중 공터에서 놀고 있던 네 명의 꼬마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은 마치 동양인을 처음 본 것처럼, 나를 보는 순간부터 내게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이리 피해도 나를 보고 저리 움직여도 나를 보는 녀석들이 귀여워 가까이 다가갔다.

 

"안녕?"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들이 영어로 대답할 거라 조금 기대를 했던 사실을 반성한다.

 

손을 흔들어본다.

모두 내게 손을 흔들어준다.

 

짤막한 영어 인사 "Hi"도 통하지 않지만, 몸으로 마음을 전하는 건 가능했다.

그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들과 공도 차고, 줄넘기도 하며 놀기 시작한다.

 

하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 체력이 방전된다.

이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다.

오늘 나는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이 곳에 처음 도착했기 때문(이라고 자위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녀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내게 그들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것이다.

 

나는 아르메니아어를 할 줄도, 들을 줄도 모르지만 그들은 분명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게 나는 사진기를 들고 천천히 셔터를 누른다.

 

아르메니아, 고리스에 살고 있는 내 꼬마 친구들

 

오늘 오전에 잠깐 들렀던 아르메니아의 카판(Kapan)에서 봤던 것처럼, 이 곳에도 건물 사이를 줄로 연결해 빨래 건조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색깔의 옷가지가 공중에 붕 뜬 채 햇볕에 마르는 광경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꼬마 친구들과 놀아주다 H.P가 1 정도 남은 나는 저녁거리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식당을 찾을 수 없었으며(둘째 날 식당을 찾게 된다), 슈퍼마켓도 찾을 수 없었다.

 

H.P가 0이 되면 이 황량한 거리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급해진 마음이 나를 바른 길로 안내한다.

분명 바깥에서 본 유리창에 빵이 보였으니, 적어도 저곳에서 빵을 살 수 있겠다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이름이 적혀있진 않았지만 그곳은 작은 슈퍼마켓이었다.

난 빵과 버터, 치킨 소시지(?), 그리고 맥주를 두 병 구입하는 데 성공한다.

 

 

숙소의 호스트인 Lyova가 치킨 소시지를 팬에 굽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부리나케 달려와 냄비에 물을 받아 소시지를 몽땅 투하한다.

대체 왜 소시지를 냄비에 끓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곳에서 산 정체모를 소시지였기 때문에 현지의 레시피에 따르기로 한다.

그녀는 팬을 가리키고 No, No, 냄비를 가리키며 Ok, Ok라고 말했다.

 

그렇게 난 소시지를 끓인 후 접시에 담아 왔다.

한입 베어 물자 나는 Lyova의 행동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정체모를 치킨 소시지는 굉장히 짰다. 아마 팬에 구워 바로 먹었으면 더 짠맛이 났겠지.

 

웃으며 한입 베어 물고 맥주를 마신다.

이란을 여행하는 내내 알코올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이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걸 가진 기분이 들었다.

잿빛의 황량했던 이 마을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술 없이는 못 살 팔자인가 보다.

 

 

 

두 번째로 마신 맥주인 GYUMRI

둘 다 맛있다.

 

 


술이 금기시되는 나라에서 장시 강제 금주를 당해왔던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알코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동했던 긴 거리부터, 처음 아르메니아에 도착해 만난 세관 직원의 치마 유니폼, 잿빛의 고리스의 풍경과 그곳에서 해맑게 뛰어놀던 꼬마 친구들, 냄비에 삶아 요리한 눈 앞의 소시지까지 모든 것이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와 웃음 짓게 만든다.

 

오래간만에 마신 술에 벌써 취했나 보다.

 

그렇게 천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끝없는 침략에 시달려온 나라, 첫 번째로 도착한 을씨년스러운 도시에서 나는 술에 취해 기분 좋게 잠든다.

 

 

꿈에서 오늘 만났던 꼬마 친구들과 다시 만났다.

고리스(Goris)는 더 이상 잿빛이 아닌 따스하고 목가적인 모습이었다.

무의식이 재창조한 이 곳은 마치 로코코시대에 그린 파스토랄(pastrol) 한 폭을 보는 것처럼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