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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코카서스(caucase)

(여행기/아르메니아) 예레반(Yerevan) 오페라 광장 그리고 야경

by 빛의 예술가 2020. 7. 22.

오늘은 작은 마을 고리스(Goris)에서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으로 가는 날이다.

어제 안나 마리아와 저녁을 먹기 전, 그녀가 전화로 내 몫의 티켓까지 함께 예약해준 덕분에 교통수단을 따로 알아보지 않아서 굉장히 편했다.

우리는 아침 10시에 숙소 앞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했는데, 그녀가 예약한 교통수단은 무려 '택시'였다.

 

조금 당황했다.

이 곳에서 수도 예레반까지는 대략 4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코스인데 택시를 대절하다니. 혹시 안나 마리아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살고 있는 대부호가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지만, 그녀가 말해준 셰어 택시비는 터무니없이 저렴했다.

우리 둘과 길에서 한 사람이 더 탈 예정인데 12,000 드럼. 다시 말해 1인당 4,000 드럼(약 8~9 USD)에 예약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아르메니아에 입국한 첫날, 택시로 메그리(Meghri)에서 카판(Kapan)까지 약 1시간 거리를 이동하며 지불했던 10,000 드럼 (약 24 USD)이 사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택시는 길에서 한 사람을 더 태우고 예레반으로 향하는 Yerevanyan Highway를 달린다.

아르메니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 예게그나조르(Yeghegnadzor)에 도착하기 직전, 택시는 휴게소에 멈춰 선다.

대략 2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아르메니아 아이스 커피

 

휴게소 벤치에 앉아 안나 마리아는 적당한 곳에 앉아 사온 맥주를 마시고, 나는 arpi coffee라는 현지 커피를 마신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아침부터 맥주를 마셔도 괜찮은 거야?"

 

그녀가 대답했다.

"이게 여행이지!"

 

그리고 나도, 안나 마리아처럼 낮술을 즐기는 인간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택시는 대략 2시간을 더 달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에 도착한다.

안나 마리아는 이미 예약해둔 숙소가 있었으며, 나는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지만 론니 플래닛에서 발견한 저렴한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그녀와 작별 인사를 한다.

 

나를 꼭 끌어안고 비쥬를 한다.

내 인생 두 번째 비쥬다.

그녀는 이탈리아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해야 한다고 내게 당부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구경시켜주고, 다시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말하는 그녀 눈이 촉촉해 보였다.

 

우리가 만난 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여행 중 사람들과 만남, 헤어짐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은 Come and Go로 끝나지만, 어떤 사람들은 Come and Grow 한다.

과거, 필리핀에서 만난 내 친구가 해줬던 말이다.

 

그렇게 작은 시골마을 고리스(Goris)에서 만난 우리는 수도 예레반(Yerevan)에서 헤어진다.

 

예레반 Center Hostel

론니 플래닛이 알려준 Budget Hostel 중 하나인 Center Hostel.

지도를 보고 찾아가기 힘들었는데, 친절한 아르메니아 사람을 만나 이 곳까지 안내를 받았다.

그 사람은 내게 앞 뒤로 맨 배낭이 무겁지 않으냐고 질문했으며, 그렇게 앞 뒤로 배낭을 멘다면 균형이 맞을 수 있겠구나!라고 자문자답하는 수다쟁이였다.

별로 궁금하진 않았지만 수다쟁이의 말을 끊기 위해 무슨 일을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그 사람은 '의사'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한다.

평일 오후 2시에 거리를 활보하며 외국인 여행자에게 직접 길을 안내해주는 캐주얼한 옷을 입은 의사를 만나고 싶다면, 이곳 예레반에 오면 된다.

 

 

그렇게 나는 의사의 안내를 받아 Center Hostel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숙소 주변을 맴돌며 찾지 못했던 이유를 발견했다. 이 호스텔은 독립 건물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인의 안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이 곳이 맞는지 반신반의하며 올라간 건물에는 Center Hostel이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제야 안도하고 Hostel안으로 들어간다.

 

 

방이 있느냐는 질문에 호스트는 쾌활하게 웃으며 나를 방으로 안내한다.

Booking.com에서 보내준 평점이 적힌 포스터를 보여주며, 이 사이트에서 예약을 해도 된다고 얘기해주길래 먼저 이틀 동안 지내겠다고 이야기한다.

내부는 거실, 부엌, 방, 화장실로 나뉜 평범한 아파트먼트였다. 내가 머물 방은 6인 1실 도미토리였으며, 적당한 곳에 배낭을 던져두고 예레반 시내를 산책하기로 한다.

 

 

- 아르메니아 예레반 Center Hostel 정보

  주소 : 4, AM, 0010, Vardanants St, Yerevan 0010 아르메니아

  전화 : +37493444333

  가격 : 도미토리 (6인) 3,500 AMD (약 7~8 USD)

  사이트 : https://centerhostelyerevan.com/

 

 


아르메니아 예레반 KFC

예레반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먹은 음식은 KFC였다.

아르메니아를 산책하던 중 내가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진장 배가 고파졌으며, 흰색과 빨강 사이로 커널 샌더스가 보였다.

오 할아버지!

 

이란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맥도널드, KFC, 웬디스, 스타벅스 따위의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카페가 단 한 곳도 입점해 있지 않다. (2013년 기준)

그 덕분에 이란을 여행할 때는 거의 매 끼니마다 케밥 & 이란 현지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커널 샌더스 할아버지를 뵙자 감격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맛이구나.

그렇게 나는 고향의 맛을 느끼며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친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에는 다수의 KFC가 존재하는데, 내가 방문했던 점포는 이렇게 야외에 테이블과 어닝을 설치해둔 멋진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빨간 플라스틱 의자와 어닝만 바꾼다면 고급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쾌적한 환경이었다.

크리스피 치킨 3조각에 콜라를 마셨는데, 1,100 AMD (약 2~3 USD)로 가격도 무지하게 저렴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예레반을 어슬렁거리던 중 OPERA란 표지판을 발견한다.

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 그 나라나,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연극과 공연을 주로 관람하는 편이다.

중국 청도에서는 변검술, 북경에서는 전통 공연, 베트남 호찌민에서는 AO Show, 인도 다즐링에서는 현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즐거웠던 경험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문화 예술을 접해보면 거기서 받았던 좋았던 느낌으로 도시 혹은 나라가 기억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볼 수 있는 멋진 공연이 있길 기대하며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OPERA란 표지판은 예레반 오페라 극장(Yerevan Opera Theater)였는데, 예레반 중심지의 북쪽 '자유의 광장'안에 위치해 있었다.

자유의 광장 북쪽으로는 Cascade Complex라는 야외 박물관이 있고, 잘 꾸며진 조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예레반 오페라 극장

 

오페라 극장에 도착해 어떤 포스터가 붙어있는지,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공연은 언제일지 크게 한 바퀴 돌며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견한 Opera backstage Tour라는 상상만 해도 재밌어 보이는 투어 상품이 있었다.

Backstage에서 오갈 대화를 상상하며 혼자 웃는다.

 

"야 오늘, 너 아리아 부르다 삑사리 났지? ㅋㅋㅋ 그냥 나랑 바꾸는 게 어때?"

"지랄! 너는 오늘 연주한 인터메쪼 형편없었어, 내 6살 조카가 너보다는 잘 연주하겠다"

 

 

 

오페라 하우스답게 악기를 들고 이동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으며, 나는 티켓 예매소 위치를 찾았기 때문에 즐겁게 그곳으로 간다.

티켓 예매소 위치는 예레반 오페라 극장 서쪽에 위치해있다.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한 바퀴 돌다 보면 발견할 수 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공연이 없었지만, 다행히 내일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린다고 했다.

작은 마을 고리스와는 달리 이 곳은 수도여서 그런지,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 편했다.

얼마냐고 묻는 내 질문에 그녀는 1,000 AMD라고 말한다.

 

'뭐?? 오케스트라 공연이 2달러 밖에 하지 않는다고?'

 

내가 오늘 먹은 KFC 세 조각과 코카콜라가 1,100 AMD 였는데, 그것보다 저렴하다는 얘기에 믿기지 않아 다시 질문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 분명히 오케스트라 공연이란다.

 

조금 미심쩍었지만 한국돈 3천 원도 되지 않는 금액을 지불하고 티켓을 한 장 받아 든다.

내일이면 어떤 공연인지 알 수 있겠지.

 

예레반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 관람 티켓

 


 

고리스(Goris)보다는 역시 수도 예레반(Yerevan)이 번화한 곳이었고, 대형 슈퍼마켓도 존재했다.

그곳에서 저녁거리 장보기를 하고, 숙소 Center Hostel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먹는다.

 

딱히 할 일이 없어 호스텔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수다를 떨다, 그마저도 흥미를 잃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눈에 안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오후 8시가 지나고 있었다.

'저녁 산책을 가볼까?'

 

 

치안이 좋지 않거나, 잘 알지 못하는 지역을 여행할 때는 해가 지고 난 후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 좋다.

특히 코카서스 3국은 경제 수준으로 봤을 때, 후진국에 가깝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곳 사람들과 생김새가 완연히 다르니까.(오늘 오후 산책을 할 때, 이 곳을 여행하는 동양인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만약 범죄가 일어날 경우 타깃이 되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무료했고, 반듯하게 잘 닦여진 이 곳의 야경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출발한 산책, 낮과는 또 다른 밤의 예레반의 모습에 내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이 뛰었다.

 

나는 이날 공화국 광장부터 역사박물관, 정부청사 주변을 돌아봤는데, 온 건물에 노란 조명을 켜 두어 낮과는 또 다른 예레반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행인들이 기묘한 생김새의 동양인을 힐끗거리긴 했지만, 딱히 관심을 주거나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강도나 절도 따위의 위험은 깡그리 잊은 채 예레반의 야경 속 한 장면이 되었다.

 

거대 체스판을 가지고 노는 아기들

 

이곳을 여행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르메니아는 치안과 환경이 좋은 곳이었다. 

심지어 도시 곳곳에는 급수대가 많았는데, 이 곳 사람들이 거기서 물을 떠서 바로 마실 정도로 관리도 잘 되어 있는 듯했다.

내가 수도꼭지를 가리키며 물 마시는 시늉을 하며 "OK?"라고 물어보자 사람들은 웃으며 OK를 외친다.

거기서 용기를 얻은 나는 가지고 다니는 물병에 물을 담아 물을 마신다.

 

시원하고 달콤했다.

 

우리나라를 벗어나면 세계 어디서나 돈을 내고 물을 사 마셔야 했는데, 이 곳에서 처음으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물을 마신다.

정말 물 맛이 좋았기 때문에 물병 가득 물을 담아 가방에 집어넣고 발걸음을 옮긴다.

 

예레반 공화국 광장에는 멋진 야경에 분수쇼까지 감상할 수 있었는데, 스냅 카메라로 대충 영상을 담아봤다.

궁금한 분들은 아래 영상을 클릭하시면 볼 수 있다.

 

 


나는 예레반의 야경에 취한 나머지, 10시가 넘어서까지 예레반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그리고 치안과 야경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명 어느 여행지나 밤늦게 돌아다니는 일은 위험하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위험하니까, 무서우니까, 해가 진 후 산책을 나서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운 야경도 볼 수 없었겠지.

어떤 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조금 용기를 냈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야경에 취해 산책하는 내내 즐거웠다.

그래, 그거면 됐다.

지금 즐거우면 된 거지 내가 철학자라도 된 양, 상관관계 따위 불필요한 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의 야경을 보며 맞이하는 행복감에 젖어, 원래부터 이 곳에 존재했던 사람인 양, 즐거움을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