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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코카서스(caucase)

(여행기/아르메니아) 세반호수 그리고 송어 화덕 구이

by 빛의 예술가 2020. 7. 27.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에서 며칠 동안 시티 투어를 했더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사실 유명 관광지나 볼거리를 찾을 목적으로 이 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며칠씩 머물 필요는 없을 정도로 작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해서 오늘은 강연이와 그 여자 친구와 함께 예레반(Yerevan)에서 세반(Sevan)으로 당일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세반(Sevan)은 아르메니아의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인데(수도 예레반에서 약 60km 거리에 위치), 이 곳이 유명한 이유는 마을 우측에 광활하게 펼쳐진 아르메니아 최대의 호수인 세반 호수(Sevan Lake)가 있기 때문이다. 호수는 해발 1,9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서울시의 면적보다 1.5배 정도 넓다고 해서 이 곳을 '아르메니아의 바다'라고 부르는 현지인들도 있다고 한다.

 

웹에서는 민물 호수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라는 설명이 있는데, 러시아의 카스피 해(Caspian sea, 명칭은 바다지만 호수다), 터키의 반 호수(Van Lake)만큼 거대하고,  우리나라 백두산의 천지나 볼리비아&페루 경계의 티티카카 호수(Titicaca Lake)처럼 높은 고도에 위치해있다는 설명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 열거한 호수를 제외하더라도 더 높고, 더 넓은 호수는 세상에 많다)

 

 

아르메니아 오페라 극장

파랗게 맑은 하늘이 내 마음을 들뜨게 했으며, 우리는 약속 장소인 아르메니아 오페라 극장(Opera theater) 앞으로 향한다.

예레반에서 세반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저렴한 방법은 히치 하이킹, 두 번째는 오페라 극장 앞에서 259번 버스를 타고 북부 버스 터미널(Northern Bus Station)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세반으로 향하는 마슈르카를 탑승하는 방법이다.

 

히치 하이킹의 기본은 혼자, 혹은 두 명이 있을 때가 최적인데, 그 이유는 세 명이 넘어가면 일반 승용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차를 세울 가능성이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척박해져 가고, 인심도 그에 비례하니까.

 

 

그렇게, 우리 셋은 오페라 극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예레반 북부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259번 버스가 도착하는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놀랍게도 몇 번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었는데 인도를 지나 이란을 여행할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봤다.

우리나라에서는 버스나 지하철이 1분만 늦어도 뭔가 잘못된 게 아닌지 핸드폰으로 계속 확인하며 짜증내는 사람들도 많은데, 3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그런 짓은 하지 않게 된다. 1분이 아니라 10분, 혹은 (아무 설명 없이) 1시간씩 연착되는 교통수단도 비일비재했으니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분초를 다투는 그 모습에 적응하겠지만, 지금은 여행 중이다.

몇 번 버스가 몇 분 후 도착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수다를 떨며 천천히 259번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쉬이 도착했으며, 우리는 거기에 올라 북부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예레반 오페라 극장(Opera Theater)에서 북부 버스 터미널(Northern Bus Station)까지 가는 259번 버스 요금은 200 AMD, 소요 시간은 약 10~15분이다.

 

 


마슈르카(Marshrutka)

 

북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 우리나라의 스타렉스처럼 생긴 승합차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는데, 그 교통수단을 마슈르카(Marshrutka)라고 부른다. 필리핀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지프니'를 봤거나, 타본 적이 있을 텐데 그것과 유사한 대중교통수단이라고 보면 된다.

 

1938년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처음으로 운용되었으며, 21세기 현재도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들을 여행하면 이 마슈르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레반 북부 버스 터미널

이 곳 아르메니아(Armenia)도 과거 '아르메니아-소비에트 연방'국이었기 때문에 길을 걷다 보면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마슈르카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대중 승합차를 타고 여행하기 시작했는데,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터키의 세르비스, 불가리아에서도 이 마슈르카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아시아에서 유럽을 넘어가는 내내 발견할 수 있는 게 이 귀여운 대중교통이다.

 

이 곳 마슈르카 앞에는 목적지가 적혀있는데 다행스럽게도 영어 알파벳도 혼용 표기되어있어 쉽게 세반(Sevan)행 마슈르카에 탑승할 수 있었다. 

 

마슈르카에 탑승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처음이라고 쭈뼛거리지 않아도 된다.

(1) 행선지가 앞에 적혀있는 경우라면 운전사에게 혹은 마슈르카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직원에게 "Hi~!"라고 인사하고 그냥 타면 된다.

(2) 돈을 달라고 하면 주면 된다. (후불일 경우도 있다)

 

만약 행선지가 앞에 적혀있지 않으면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1) 나 : "(목적지)?"

(2) 상대 : "(목적지)! 끄덕끄덕"

 

탑승 끝.

 

예레반 북부 버스 터미널(Northern Bus Ternimal)에서 세반(Sevan)까지는 약 1시간가량 소요되며, 요금은 600 AMD이다.

세반에 도착하면 목적지인 세반 호수(Sevan Lake)로 가는 마슈르카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 셋은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산책하며 걸어가기로 결정한다. 지도를 보면 거리는 대략 2~3km정도 떨어져 있다. 

 

가는 길을 물어볼 때는 "Sevanavank?"라고 말하면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Sevanavank는 세반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정교회다.

 

차도 많이 다니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스팔트 도로 옆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한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몸과 마음도 지쳐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100 AMD내고 마슈르카 탈걸' 하고 생각하던 찰나, 강연의 여자 친구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왼팔을 쭉 뻗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것이다.

 

우린 세명이었기 때문에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걷자고 얘기하려던 찰나, 마법처럼 승용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며 우리 옆에 멈춰 선다.

0에 수렴하는 확률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아직 세반의 인심은 그리 척박해지지 않았나 보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아주 인심 넘치는 아저씨였다. 그렇게 히치 하이킹에 성공한 우리는 즐겁게 세반에서 세반 호수로 직행한다.

 

 


세반 호수 (Sevan Lake)

 

고마운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동쪽으로 조금만 걸어가자 바다처럼 넓은 세반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날씨는 일각일각 변해 다시 하얀 구름을 우리에게 선사했으며, 푸른 하늘과 그에 보태어 조금 더 푸른 호수는 그 경계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장엄한 광경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한 걸음씩 내딛어 가까이서 보는 바다처럼 넓고 푸른 세반 호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찬탄사를 연발했다.

그 다음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곳의 명물인 트루차(송어 화덕 구이 요리)를 먹으러 식당으로 직행한 것이다.

 

간판만 봐도 '우리는 이 옆에 있는 세반 호수에서 싱싱한 송어를 잡아, 항아리처럼 생긴 멋진 벽돌 화덕에 나무 땔감으로 불을 붙여 맛있게 구워 드리겠다'고 광고하는 레스토랑이 보였다.

마다할 이유도 선택할 겨를도 없었다.

 

세반 호수 레스토랑 Ashot Erkat 정보

 - 주소 : Sevanskiy p-ov, oblast' otdykha 4, Ulitsa 25, Sevan 1501 아르메니아

 - 전화 : +37426125000

 - 영업 시간 : 오전 10시 ~ 오후 10시

 - 기타 정보 : 바로 옆 같은 이름의 호텔도 있음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 Ashot Erkat내부 인테리어는 우리나라의 80~90년대 처럼 보였다.

분명 고리스나 예레반을 여행할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뭔가 친근하고 푸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리 문제되진 않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조금 촌스럽고, 좋게 말해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이 식당 테이블에 앉으면, 우측에 펼쳐진 아름다운 세반 호수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멋진 식당에서는, 싱싱하고 맛있는 송어 화덕 요리를 즐기며 세반 호수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늘 세반 여행의 목적은, 세반 호수를 보는 것, 세반 호수 옆에 있는 세바나방크를 가 보는 것, 그리고 송어 화덕 요리를 먹는 것. 이게 전부였다.

론니 플래닛이나 웹에서 찾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가장 맛있는 트루차(송어 화덕 요리) 먹는 법을 소개하자면, 빵(플랫 브레드)과 함께 먹는 것이다. (이름은 세반 송어(Salmo ischchan)이지만, 사실은 연어과에 속한다.)

 

우리는 메뉴에서 트루차와 라바쉬 플랫 브레드, 그리고 샐러드를 주문했다.

 

트루차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싱싱한 송어를 화덕에서 구웠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라바쉬 플랫 브레드(Lavash flat bread)를 곁들이면 천상의 맛이 난다고 하는데,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음식 재료 1001가지' 라는 책에서 1001가지 중 하나에 당당히 올라가 있다. (프랜시스 케이스 저술, 1001 Foods you must try before you die, 마로니에 북스)

 

프랜시스 케이스가 어떤 인간이고, 뭐라 지껄였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이 레스토랑 거의 모든 테이블에는 세반 송어 구이 요리가 올려져있었는데,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곳에 왔기 때문일 것이다.

 

라바쉬 플랫 브레드는 위 사진의 납작하게 접혀져있는 빵이다. 이란과 터키, 코카서스지방에서 자주 먹는 얇고 말랑하며, 탄력있는 빵인데, 우리는 이미 인도에서 난을 먹어봤고, 이란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플랫 브레드를 먹어봤기 때문에 그 맛을 유추할 수 있다. (모른다면 여행기를 처음부터 정독하면 된다)

 

하지만 이 곳에서 화덕에 구운 송어 요리를 라바쉬 플랫 브레드로 싸서 먹었을 때 나는 충격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존맛탱!"

 

그 순하고 향긋하며, 감칠맛 나는 훌륭한 맛은 내 허섭스레기 같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 대화하는 것도 잊은 채, 넓게 펼쳐진 세반 호수를 바라보며 이 훌륭한 요리를 즐기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뼈도 많지 않아 발라내는 작업도 귀찮지 않다. 하지만 뼈가 많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요리는 그냥 존맛탱이니까.

 

프랜시스 케이스란 누군지도 모르는 인물이 위대해지는 순간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함께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1001가지 음식 재료'란 책을 사서 정독해야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나게 맛있었다.

 

아르메니아를 방문할 일이 있거나, 여행을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 그리고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세반 호수의 송어 화덕 구이다.

이 요리에 음료나 술을 곁들이더라도 1인당 약 4,000~5,000 AMD (약 9~12 USD) 수준으로 저렴하다.

 


Sevanavank

 

훌륭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Sevanavank로 향했다.

이 곳은 세반 호수 전망을 잘 감상할 수 있는 위치에 지어져 있는데, 레스토랑에서 100m도 채 떨어져있지 않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이 작은 언덕을 오르면 교회가 두 곳과 수도원이 보이는데, Holy Mother of God(Surp Astvatsatsin) Church와 Holy Apostoles(Surp Arakelots) Church가 그 것이다.

 

날씨가 변덕이었다.

다시 구름이 밀려왔으며, 화창했던 하늘은 오간데 없이 회색 구름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세반에 도착했을 때처럼 화창한 날씨였다면 훨씬 더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묻어나온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였다. 광활한 호수 위에 지어져 있는 멋진 석조 교회는 날씨와는 상관없이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두 교회(Holy Mother of God(Surp Astvatsatsin) Church와 Holy Apostoles(Surp Arakelots) Church) 는 모두 팔각 기둥으로 만들어져 있고, 생김새가 매우 흡사하다.

교회 위쪽으로 계단이 있고, 짧은 산책로가 조성되어있었는데 우린 천천히 올라가 그 곳에서 세반 호수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 멋진 풍경 속에서 커플은 염장질을 하기 시작했고, 외톨이인 나는 쓸쓸히 사진을 찍어줄 수 밖에 없었다.

 

세반 호수와 염장질하는 커플

벌써 수 십장을 찍었는데, 이 커플의 포즈에 상상력이 있다면 아인슈타인 급이었다. 쉴 새 없이 찍었는데도 계속해서 포즈가 바뀌는 모습에 뱀처럼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계속 이 짓을 하다가는 이 커플 전용 사진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담배를 피겠다며 도망친다. (농담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변덕 심한 이 곳의 날씨는 다시 내게 조금 푸른 하늘을 보여주었고, 끝도 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맛있는 음식과 멋진 환경, 그리고 좋은 사람들.

그 순간, 그 풍경 속에서 난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만끽했다.

 

세반호수 그리고 송어 화덕 구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