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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코카서스(caucase)

(여행기/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 국경 넘기

by 빛의 예술가 2020. 7. 28.

 

나는 이번 세계일주에서 코카서스 3국 중 2개 나라를 여행했으며(국경선을 넘은 것 까지 포함한다면 아제르바이잔까지 포함해 모든 나라를 가보긴 했다) 두 번째 나라인 조지아(Georgia)로 떠나기로 했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조지아'보다는 '그루지야'라는 이름이 훨씬 더 익숙할 텐데, 우리가 지금 여행하고 있는 아르메니아처럼 조지아 역시 '그루지야 소비에트 연방국'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렇다. 조지아 정부는 지속적으로 세계 각국에 러시아 명칭인 그루지야 대신 '조지아'란 국명을 공식 요청했고, 우리나라 외교부에서는 2010년부터 공식적으로 이 나라의 이름을 '조지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국경을 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보통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이동한다. 나는 버스보다 기차를 훨씬 선호하기 때문에 출발 전날 예레반 기차역에서 표를 예매하기로 결정했다.

 

예레반 기차역은 도심 남쪽 약 2~3km 지점에 위치해있는데, Sasuntsi David 지하철 역으로 이동하면 바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어제부터 부쩍 날씨가 추워졌기 때문에 어떤 외투를 살지 고민 중이었는데, 기차역으로 이동하던 중 세차가 불어오는 바람이 멎으며 일순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분수를 바라보자 무지개가 보였는데, 문득 여름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꺼운 외투는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고 하염없이 무지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예레반의 건물들이 모두 그렇지만, 예레반 기차역도 꽤나 웅장하고 반듯하게 생긴 건물이었다.

 

예레반 기차역 내부로 들어가면 돔형의 천장에 거대한 샹들리에가 매달려있고, 거대한 창문과 돔 주위에서 충분한 채광이 이루어져 딱히 실내등을 켜지 않아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르메니아 예레반(Yerevan)에서 조지아 트빌리시(Tbillisi)로 이동하는 3등석 기차표를 예매했다.

가격은 편도 기준 7,460 AMD (2013년 기준)였고, 기차표의 특징은 매우 크고, 숫자와 내 여권 정보를 제외하고는 모든 걸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음 이란에서 티켓을 샀을 때는 문자는커녕 숫자조차 읽지 못하지 않았던가!'

 

유치원생처럼 (아랍어) 숫자 공부를 밤낮으로 한 끝에 결국 아랍어 숫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었다.

이 기차표를 읽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날짜와 출발 시간, 내 이름과 여권번호가 정확히 입력되어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물론 목적지가 맞게 적혀있는지는 모른다, 역무원이 내가 영어로 말한 'Tbillisi'를 제대로 알아들었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예레반 기차역에서 조지아 트빌리시행 기차표를 예매한 후 호스텔로 돌아온다.

저녁에는 강연이와 만찬을 즐겼다. 에그 스크램블과 소시지, 샐러드, 정체모를 생선 통조림(?), 치즈 따위를 곁들여 먹기 시작한다. 녀석은 아르메니아를 더 여행한 후 다시 조지아로 돌아와 나와 함께 터키까지 가기로 했다.

 

몇 달 전, 인도의 다즐링에서 처음 지나쳤을 때는 인사도 없이 서로 '동양인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타인과 함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르메니아의 예레반에서 이렇게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게 될 줄은 몰랐었다. 장기 여행을 하고, 또 그런 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기대된다. 물론 그런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반대의 감정이 들지만.

자꾸 여행지에서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는 이 녀석과 나는 Come and Go로 끝나는 관계가 아닌, Come and Grow의 관계가 되었다.

 

 

테이블의 정 중앙에 위치한 정체모를 생선 통조림은 '꽁치'로 추정되는데 확실치는 않다. 아래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현인이 계시다면 댓글 하나 남겨 주시라.

참.

저 생선 통조림, 추천하고 싶은 맛은 아니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조지아 트빌리시로 (From Yerevan, Armenia to Tbillisi, Georgia)

 

다음날 출발시간인 15시 25분에 맞춰 예레반 기차역에 도착한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깔끔해 보이는 기차 외관에 감탄하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중국이나 인도의 기차에 비해 훨씬 나은 컨디션으로 보였다.

 

아르메니아 예레반 발 - 조지아 트빌리시 행 기차

 

 

기차 내부도 생각보다 훨씬 깔끔한 편이었다.

신기했던 점은 모든 칸에 이불이 놓여있었는데, 나는 여행 중 침낭을 큰 배낭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과연 이 사람들이 저 이불을 제대로 세탁이나 하는지 궁금했다)

 

 

인도나 중국처럼 큰 나라에서 자주 사용하는 침대칸으로 이루어진 객실이었으며, 3등석 객실인데도 불구하고 무려 에어컨이 달려있었다. 물론 쌀쌀한 가을 날씨였기 때문에 에어컨을 가동하진 않겠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인도 사막을 달리던 SL(Sleeper Class) 기차 안에서 했던 화염지옥 체험이 생각나서 잠시 웃었다.

웃다 보니 인도에서 처음 기차를 탈 때, 내 배낭을 누가 훔쳐갈까 두려워 큰 배낭은 와이어로 칭칭 감아 객실의 튼튼한 기둥에 자물쇠로 잠가놓고, 작은 배낭은 아예 베개로 삼아 잤던 기억도 났다. 

 

이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큰 이유 따윈 없었고, 그냥 귀찮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큰 배낭은 이미 고리 고리마다 와이어로 감겨있고, 튼튼한 기둥만 찾아 자물쇠로 고정하는데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잠깐의 시간도 투자하지 않은 이유는 이 배낭을 잃어버려도 상관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일주 초기 때는 내 큰 배낭을 잃어버리면 큰일이 날 줄 알았다. 각종 세면도구와 옷가지, 침낭, 상비약, 몇 가지 도구와 비상금으로 넣어둔 100달러 지폐 몇 장이 전부였던 배낭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젠 이 배낭을 누가 훔쳐간다고 해서 내 여행이 도중에 끝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필요하긴 해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배낭은 얘기가 다르다. 이거 없어지면 여행 끝이다)

 

탑승인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유 있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벽에 기대 창 밖을 바라본다.

15시 25분.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핸드폰으로 GPS를 확인해보니 기차는 북동쪽에 위치한 트빌리시로 곧장 향하는 게 아니라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아르메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규므리(Gymuri)를 경유한다고 말했다.

 

버스로는 6~7시간이 걸리는데, 기차로는 대략 9~10시간이 소요되는 이유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나와 같은 기차 칸에는 그리스인 남자가 한 명 타 있었는데, 승객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우린 자주 눈이 마주쳤으며 남자는 호쾌하게 다가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여어~ 안녕! 이 지저분한 기차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 한잔 어때?"

 

그렇게 나는 처음 본 그리스인 남자와 함께 조지아로 향하는 기차 3등석 객실에서 낮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중년의 이 남자는 세계 곳곳을 많이 여행해봤다고 말하며 내게 추천 여행지를 설명해주는가 하면, 기차가 시궁창처럼 더럽다고 내게 불평을 해댔다. 그에게 인도를 여행하며 찍었던 기차 내부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우리는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술을 마시며 여행을 했던 얘기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며 놀았는데, 남자는 계속해서 내게 이 곳이 지저분하다고 이야기했다.

 

내게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폐허로 남아있는 파르테논 신전이라던가, 하얀 골목과 파란 지붕이 인상적인 산토리니,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 정도였다.

 

그러자 그리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났다.

소설 속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체의 초인'과 같이 가식과 위선을 벗어던지고 정면으로 세상을 마주한 이상적인 인간으로 그려져 있는데, 내 앞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 그리스인은 그렇지 않았다.

 

단지,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일을 하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기로에서 이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분했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자리에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차는 계속해서 평행의 레일을 질주했으며,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갔다.

 

 

 

잠깐 잠이 들었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종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랩탑을 들고 다니며 휴대용 여권 리더기로 출국 심사를 하고 있었는데, '당연히'기차에서 내려 출입국 사무소로 들어가 심사를 받고 다시 기차에 올라탈 줄 알았던 나는 그 광경에 잠이 달아났다.

국경을 넘으며 이렇게 편한 절차를 밟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비몽사몽 한 채로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고, 조지아 국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

짐을 대충 끌어모아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 기차 안에서 출/입국 수속을 다 밟는 거구나'

 

킹 굿이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가만히 기차에 앉아 있으면 세관 직원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며 수속을 밟아주는 시스템. 유럽 연합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편하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곳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졸기 시작했다.

 

기차 안에서 출/입국 수속을 해주는 직원

 

그렇게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에서 출발한 기차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lisi) 기차역에 도착한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당연히 역전에는 택시밖에 보이지 않았으며, 나와 같은 기차를 타고 도착한 승객들, 그 밖에 건달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잠에서 깬 직후이고, 조지아란 나라는 처음이라 안전하게 택시를 타기로 했다. (사실 이 시간에 택시를 타지 않고 숙소로 가는 방법은 걸어가는 것뿐이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는 Georgia Hostel이라는 곳이었는데, 일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조지아가 주는 첫인상인 야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기차역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는 대략 10분이 소요되었다.

별도로 연락 없이 새벽에 도착한 터라 호스트가 나와줄까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일본인 호스트는 새벽에도 문을 열어줬다.

히피처럼 머리가 긴 남자였고, 간단하게 체크인을 마친 후 나는 예약한 방으로 들어갔다.

 

Georgia Hostel

'이게 뭐야? 노숙자 임시 거주시설 같은 건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방이 조지아 호스텔(Georgia Hoste)에서 가장 넓고 좋은 방이다. (난 더 저렴하고 작은 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넓고 좋은(?) 방을 선택했다)

 

원래 2인실이라고 하는데,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넓게 자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비몽사몽 한 채로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넘어왔다.

 

침대에 누워 아르메니아를 생각했다.

중동 국가(그들은 중동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란에서 서구 사회와도 같은 아르메니아로 국경을 넘었을 때 받았던 충격.

드디어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고 즐거워했던 첫날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온 여자들과 세상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탔던 기억이며, 그들과 이별할 때 나눴던 비쥬.

세계 각국에서 온 숙소의 게스트들과 독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던 밤.

얘기도 통하지 않는 고리스 마을 아이들과 즐겁게 놀았던 일.

세반 호수와 송어 화덕 구이, 그리고 플랫 브레드.

오만가지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강연이와 그의 여자 친구.

조금 염장질은 했지만 그들과 함께해서 더 즐겁고 빛났던 추억이 된 아르메니아.

 

 

그렇게, 난 노숙자 임시 거주시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더블베드에 몸을 던진 채 잠에 든다.

꿈에서 그들이 등장했던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르메니아 여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