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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코카서스(caucase)

(여행기/조지아) 강철의 인간을 만나다

by 빛의 예술가 2020. 8. 4.

 

아르메니아 여행을 마친 강연이가 조지아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여자 친구 대신 홍콩 국적의 친구와 함께였는데, 나는 그들과 함께 1라리 비싸지만,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트빌리시 두 번째 숙소

'이게 뭐야?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야?'

 

허름했지만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 내에 위치한 첫 번째 숙소에서 지내던 내게 외관을 보자마자 터져 나온 생각이다. 하지만 애써 담담한 척 나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삐걱대는 나무 계단 소리에 영등포의 쪽방촌이 생각났다.

 

반신반의하며 들어간 내부는 생각보다 훌륭했는데, 첫 번째 숙소인 Hostel Georgia가 일본 히피 여행자들의 성지라면, 이 곳은 조지아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주택을 일부 개조해 숙박 시설로 영업하고 있는 곳이었다. 내가 여행하던 당시에는 Booking.com 이라던가 Agora 같은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계속 찾아오는지 의문이 들었던 곳이다.

 

우린 이집트에서 온 목적 불문의 남자 5명과, 영국에서 여행 온 여자 2명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목적 불문이라고 적은 이유는 저 남자들은 낮에 외출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밤늦은 시간에 어딘가를 나가 새벽이 되면 돌아오곤 했는데, 나와 강연이는 '원정 도박이라도 하러 온 걸 거야'라고 어림짐작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 숙소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청결한 공용 주방이었는데, 이 곳에서 거의 매일 요리를 해서 먹었고, 오랜만에 만난 강연이와 함께 조지아산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던 곳이다.

 

숙소에서 함께 지내던 정체불명의 이집트인 5명 중 하나는 본인을 요리사라고 소개했는데, 마카로니를 삶기 전에 팬에 볶기 시작하더니 쌀과 콩 같은 재료를 버무려 기묘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우리에게 먹어보라며 조금 나눠줬는데 기막히게 맛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집트를 여행할 때 거의 매일 저 요리를 먹게 된다.

 

요리의 이름은 코샤리였다.


트빌리시(Tbilisi)에서 고리(Gori)로

 

그렇게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를 산책하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 와 요리를 해 먹던 평범한 일상 중 강연이와 함께 온 홍콩 친구가 우리에게 당일 여행(Day trip)을 제안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고리(Gori)란 곳에 스탈린 박물관이 있대, 거기 한번 가보자."

 

스탈린.

우리나라 중등교육 과정을 밟은 사람들은 역사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이었다.

사실 '스탈린? 그거 러시아, 아니 소련 사람 아니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트빌리시(Tbilisi)에서 스탈린 박물관 가는 법

  1. 트빌리시 시내에서 디두베 버스 터미널(Didube Bus Terminal)로 전철 or 버스 이동

  2. 디두베 버스 터미널 Okriba버스 정류장 출구 방면으로 크게 왼쪽으로 돌아 우측으로 향하면 마슈르카 정류장으로 이동

  3. 마슈르카를 타고 고리(Gori)로 이동 (약 40~50분 소요, 3라리)

  4. 고리 버스 정류장에서 도보 약 10~20분 소요

 

Gori Municipality Administration, 고리 시청

 

카즈베기(Kazbek)에 갔을 때처럼, 디두베 버스 정류장에서 고리로 갈 수 있는데, 오늘도 역시 마슈르카를 이용해 고리(Gori)로 이동한다.

우리는 수도 트빌리시에서 약 45분 정도 소요되었다. 조지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고리(Gori)에 도착하면 장엄하게 생긴 소비에트 양식의 건물이 먼저 보이는데, 이 곳이 바로 스탈린 박물관은 아니고 고리 시청이다.

 

건물의 중앙을 보면 그리스 양식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반듯한 건물과 화창한 하늘의 대비가 마음에 들어 한참을 바라봤다.

 

Stalin Museum, 스탈린 박물관

고리 시청에서 대략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스탈린 공원이 있고, 공원 북쪽 끝에 스탈린 박물관이 위치해있다.

이 곳은 1951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초기에는 조지아(당시 그루지야) 태생의 이오시프 스탈린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난 이때 스탈린이 러시아나 소련 사람이 아니란 걸 처음 알게 되었다. '히틀러가 독일 사람이 아닌 오스트리아 사람인 것처럼 극좌든 극우든 철권통치를 하는 사람들은 닮아있구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아까 봤던 고리 시청 앞에는 2010년까지 스탈린의 동상이 서 있었다고 하는데, 철거된 이유는 역사적인 평가가 갈리기 때문이다.

조지아 입장에서는 조지아 태생의 스탈린이 소련 시절, 조지아를 침공하고 탄압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선 인물이었기에 기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스탈린은 "코카서스 민족들은 우월한 러시아 문화에 머리 숙이고 들어와야 한다!"라는 민족반역자 급의 발언을 날리기도 하셨는데, 조지아의 극우 집단이 2010년까지 동상 철거를 기다려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해서 이 곳의 이름도 스탈린 기념관이 아닌, '스탈린 박물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Stalin wagon

공원 한쪽 끝에 세워져 있는 이 초록색 기차는 스탈린 전용 객차인데, 비행기 타기를 싫어했던 스탈린이 1941년부터 사용했다고 한다. 2차 대전 종반에 연합국이 모여 독일의 문제를 의논했던 '얄타 회담'과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모였던 '테헤란 회담' 때도 이 전용 객차를 타고 갔었다고 하며, 현재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타고 다니는 열차처럼 방탄 기능이 탑재되어있어 무게가 80톤이 넘어간다고 한다. 

 

 

Stalin Museum, 스탈린 박물관

스탈린 박물관 입장권은 10라리 (약 3 USD)였는데, 국제 학생증이 있을 경우 반값 할인이 되니 참고하자. 나는 국제 학생증이 없어서 혹시나 하고 가지고 다녔던 대학교 학생증을 보여줬는데 할인이 되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세계 여행을 하며 숱하게 겪어왔기 때문에 그리 놀랍진 않았다) 졸업한 지 몇 해가 지나도 나에게 금전적 절약을 안겨주는 모교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강철의 인간, 이오시프 스탈린

 

당시 러시아 제국의 바쿠(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에서 스탈린의 첫 번째 부인이 티푸스로 병사한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약 2년밖에 이어지지 않았는데, 당시 죽은 아내와 같이 땅에 묻히겠다며 뛰어들었던 남자가 바로 스탈린이다.

후일 그는 이 중대 사건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첫 아내를 묻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 또한 묻었다."

 

Stalin Museum, 스탈린 박물관

이 것만 보면 '뭐야 이렇게 로맨틱한 남자였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역사적 평가는 그렇지 않다.

끔찍한 사실은 그의 회고처럼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첫째 아내가 사망하고 이후 약 50년 동안 그는 강철의 심장을 가진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자로 살아가게 된다.

 

 

Stalin Museum, 스탈린 박물관

 

이오시프 스탈린은 1920년 중반부터 1953년 죽을 때까지 소련을 집권한 인물인데, 젊은 시절 블라디미르 레닌의 총애를 받으며 러시아 혁명에 동참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소비에트 연방 건국에 일조한 사람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사후에(레닌도 스탈린이 암살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권력을 장악함과 동시에 대숙청을 통해 입지를 공고히 했는데, 동시에 1차 산업 기반이던 소련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중화학공업 위주의 국가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이처럼 산업 구조 재편을 통해 소련을 세계 초강대국으로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양면을 지닌 지도자로 평가받게 된다.

 

스탈린이 사용하던 침대

스탈린 박물관 내부에는 스탈린이 실제 이용했던 집무실, 사용하던 침대, 읽고 썼던 책들, 의복과 개인 소장품 따위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소박하네'라는 인상을 준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우리나라의 독재자 박정희가 떠오르는데, 결과만 따져볼 때 박정희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닌 인물임에 틀림없다.

권력을 쟁취한 과정도 합법적이었으며,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했으며, 사사로이 부정 축재를 하지 않고 소련을 세계 1,2위를 다투는 초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슷한 점도 많다. 정치적으로 정적을 숙청하고, 경제적으로 농업을 몰살시켰으며, 전 국민을 감시하고 수사하고 처형하는데 앞장선 비밀경찰 격인 KGB의 전신을 운영했다는 것들. 

 

스탈린 집무실

그렇게 이오시프 스탈린이란 인물을 생생하게 공부하고, 밖으로 나오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정적을 제거하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한 '살인마'이자 전쟁에서 승리하고 산업 구조 개편을 통해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지도자'.

어쩜 이렇게 극단적인 인간이 만들어졌을까? 고민하던 찰나,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첫 아내를 묻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 또한 묻었다."

 

 

 


스탈린 생가

 

스탈린 박물관 본관 정원으로 가보면, 적당히 높은 대리석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1878년 스탈린이 태어나 약 4년 동안 자랐던 곳이라고 한다. 이오시프 스탈린 생가는 지하 1층, 지상 1층의 목재로 만들진 작은 집인데, 훼손의 위험이 높아 현재는 그리스-이태리 양식 대리석 건물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스탈린 생가

 

 

안쪽의 흰색 목조 건물이 스탈린 생가

 

강철의 인간이라고 불리던 이오시프 스탈린도 말년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는데, 우울증에 빠졌으며 가족은 죽고, 고명딸과 사이는 극단적으로 비틀어졌다. 아첨꾼들에 둘러싸인 채 술에 빠져 시름을 잊었다고 한다.

그리고 강철의 인간은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3월에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에서 사망한다.

 

스탈린의 사후 고명딸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는 2010년, 미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이 내 인생을 망쳤다. 어딜 가든 나는 아버지의 이름 아래 언제까지나 정치범으로 남을 것이다."

 

 

스탈린 박물관을 나서며 후천적 소시오패스로 살아갔던 강철의 인간이 조금은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양 극단의 평가가 공존하는, 강철의 인간을 만났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혹시나 첫째 부인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다면 세계 역사 교과서는 다시 써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강철의 인간을 만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