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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코카서스(caucase)

(여행기/조지아) 고리(Gori) & 므츠헤타(Mtskheta) 여행

by 빛의 예술가 2020. 8. 5.

남오세티야 전쟁

 

고리의 스탈린 공원 남쪽 끝에는 박물관이 하나 있는데, 이 것도 스탈린과 관련된 곳인가? 하고 궁금해서 찾아가 봤던 곳이다.

조지아 문자를 해독할 수 없었지만 친절하게도 하얀 바탕에 WAR MUSEUM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에 성격을 유추할 수 있었다.

 

2008년 8월 8일, 중국 북경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당시 TV로 북경 올림픽 개막식에서 와이어를 매단 채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날은 러시아의 남쪽 끝에 위치한 조지아에서 분리 독립을 원하던 남오세티야와 조지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당시 남오세티야에 UN평화군으로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이 몇 명 사망했다고 하며, 러시아는 무서운 화력으로 닷새만에 조지아를 제압한다. 조지아가 항복한 것이다.

 

The Great Patriotic War Museum, 고리 전쟁 박물관

 

세계 평화의 상징이라는 '올림픽'과 동시에 열렸던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설 앞에서 나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하여 입장료가 무지 저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들어가지 않았다.

 

The Great Patriotic War Museum, 고리 전쟁 박물관

대신 '전사한 전쟁 용사'(로 추정되는)의 추모관 앞을 둘러보는 것으로 고리 전쟁 박물관 일정을 마무리한다.

홍콩 친구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왔었는데, 감상을 물어보니 단순하게 한 문장으로 답변했다.

 

"Nothing special"


고리 요새(Gori Fortress)

 

고리 전쟁 박물관을 나와 주위를 빙 둘러보면 작은 야산 위에 '천혜의 요새'처럼 생겼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건물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고리 요새(Gori Fortress)다. 박물관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가는 것도 좋다.

 

Gori Fortress, 고리 요새

 

Gori Fortress, 고리 요새

고리 요새(Gori Fortress)는 13세기부터 역사에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고고학자들은 분석을 통해 이 곳에 요새나 성곽이 지어진 것은 기원전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무려 2,0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물론 조지아의 특성상 잦은 전쟁과 지진으로 인해 파손되고 복구되었다)

 

처음에는 5분이면 정상에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가파른 경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괜히 '요새'란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Gori Fortress, 고리 요새

그렇게 도착한 고리 요새 정상에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잔디와 풀만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는데, 구석에 뭔가 더 있지 않을까 요새를 크게 한 바퀴 둘러봤지만 무너진 성벽만이 우리를 반겼을 뿐,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게 맞았다.

 

Gori Fortress, 고리 요새

하지만 낙심하긴 아직 이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올라왔으니 고리의 전경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을 기회를 얻은 셈이니까.

그제야 고리 요새 각 모서리에 망원경이 설치되어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망원경으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작은 고리의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고리 전경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저 강은 쿠라 강(Kura River)인데, 내 여행기를 읽었던 사람은 이상한 기분이 들 것이다. 분명 트빌리시(Tbilisi)에서도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강 이름이 '쿠라'였으니까. 

두 가지는 같은 강이다. 사실 이 쿠라 강(Kura River)은 터키의 아르메니아 고원에서 발원해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을 넘어 러시아의 카스피해까지 통하는 1,364km의 강이다. 

 

고리 전경

우린 그렇게 강철의 인간 스탈린이 태어나 4년 동안 자랐던 곳인 고리를 한동안 감상한다. 코카서스 특유의 잿빛 건물이 반듯하게 진열되어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Gori Fortress, 고리 요새

고리 요새를 내려갈 때는 올라왔던 길 반대편으로 내려가 봤는데,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던 요새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혹시나 뭐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길로 내려가면 안 된다. 정상에 아무것도 없는 고리 요새를 두 번 오르는 기이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리 요새 막다른 길

분명 사람이 밟고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길에는 풀이 아예 없거나, 많이 밟혀 눌려있는 부분을 보고 길을 찾아가게 되는데, 이 곳도 분명 그랬다. 아래쪽에 주차된 차들도 보이고, 이 방향으로 내려가면 고리 시내에 도착할 줄 알았다.

 

고리 요새 막다른 길

이 곳으로 내려가면 이런 개구멍(?)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부터 사실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출구가 맞을까?'라고 혼자 생각했지만 강연이와 홍콩 친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셋은 개구멍까지 통과해가며 고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열심히 내려간 길의 끝에는 출입구가 없었다.

말 그대로 막혀있는 곳이었다.

 

대체 왜 이런 식으로 길을 만들어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막다른 길에서 '이해'란 걸 해 봤자 별 소용없다.

다시 고리 요새를 오르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고리 요새를 하루에 두 번씩이나 오르는 경험을 한다.

이 여행기를 읽고 고리 요새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위 사진을 잘 기억해두면 좋겠다. 사람이 가는 길처럼 보여 걸어가더라도 개구멍이 나오는 순간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고리(Gori)에서 므츠헤타(Mtskheta)로

 

홍콩 친구가 제안한 당일 여행 두 번째 도시는 므츠헤타(Mtskheta)였다. 이 곳은 고대와 중세시대 유적들이 많은 도시인데, 1994년 UNESCO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고리에서 므츠헤타로 이동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도착했던 고리의 버스터미널로 가면 므츠헤타(Mtskheta) 행 마슈르카가 많이 있다. (요금 3라리, 소요시간 약 4~50분)

므츠헤타는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20km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마슈르카

버스 정류장에는 인도, 네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컨디션의 마슈르카가 아직 운행 중이었다. 갑자기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갈 때 지옥처럼 느껴졌던 그 버스 이동이 생각나서 웃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힘들었던 기억도 좋았던 추억으로 바뀌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므츠헤타행 마슈르카에 올라탄다.

 

 

 

므츠헤타(Mtskheta) 역시 작은 마을인데, 오늘 오전 방문했던 고리(Gori)에 비교해도 훨씬 작은 규모의 크기였다. 당연히 도보로 고대, 중세 시대 유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처음으로 갔던 곳은 삼타브로 수도원(Samtavro Convent)이었는데, 삼타브로 교회와 성 니노 수녀원을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었다.

4세기경 미리안 왕이 처음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성 가브리엘(St. Gabriel Urgebadze)이 이 곳에 묻혀있다고 한다.

 

대체 성 가브리엘이 누군지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다. 조지아 정교회에서 2012년 그를 성자의 반열에 올렸다고 하는데, 그가 말년에 지냈던 곳이 바로 이 곳이라고 한다.

 

 

Samtavro Convent, 삼타브로 수도원

성 가브리엘의 무덤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도 유명한데, 이 곳에 묻힌 그의 무덤에는 작은 램프의 꺼지지 않는 불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삼타브로 수도원 외에도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을 비롯한 작은 수도원과 성당이 도처에 위치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천천히 둘러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마지막 일정으로 쿠라 강 건너 나지막한 산에 위치한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ery)에 가기로 했는데, 지도상으로는 굉장히 가까워 보였지만 걸어가기 힘든 거리라고 한다. 이유는 므츠헤타와 즈바리 수도원을 가로지르는 쿠라 강에 다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크게 우회해서 갈 수밖에 없었는데, 고리 요새를 두 번씩이나 올랐던 우리로서는 먼 거리를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에 질세라 해도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주변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을 붙잡고 흥정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 곳 므츠헤타에서 즈바리 수도원까지 가서 30분 기다린 후 트빌리시의 디두베 정류장까지 이동하는데 60라리 (약 20 USD)에 협의를 봤다.

놀랍게도 차는 BMW였다.

 

므츠헤타에서 즈바리 수도원까지는 자동차로 약 15~20분이 소요된다.

 

 

즈바리 수도원(혹은 성당)은 '십자가 성당'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조지아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고 하는 성녀 니노(St. Nino)가 므츠헤타의 가장 높은 언덕인 이 곳에 기도를 한 후 십자가를 세웠고, 그곳에 들어선 교회가 이 곳이라고 한다.

 

Jvari Monastery, 즈바리 수도원

사실 여기까지 왔으면 코카서스 지방에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게 교회라는 걸 알 수 있다.

UNESCO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과는 별개로 이제 교회나 기도원은 그만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머릿속에 사탄이 가득 깃든 것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곳이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곳으로 걸어간다.

 

즈바리 수도원에서 본 므츠헤타 전경

전망대였다.

쿠라 강과 아라그비 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보이고, 우측에 므츠헤타 전경이 펼쳐졌는데 따뜻하게 내리쬐는 붉은 석양에 푸른빛의 강물이 장관을 연출했다.

 

'괜히 성녀 니노께서 이 곳에 앉아 기도하신 게 아니구나'

 

예나 지금이나, 성녀에게나 범속한 내게나 자연이 한결같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같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해가 보이지 않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까지 즈바리 성당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당일 여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