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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226

(20071026)골드베르크 변주곡 오랫만에 글렌굴드가 1955년에 첫번째로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연주가 잔인하다. 어떻게 피아노를 이렇게 잔인하게 연주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남자는 정말로 사랑을 해보지 않은걸까? 그래서 그런걸까? '미친놈'의 연주는 모두가 이런식일까? 2013. 4. 16.
(20071021)재습격 극도로 미세한, 어쩌면 먼지 티끌크기의 1/10조차 되지 않을. 극도로 지독한, 나의 인격과, 이성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릴. 극도로 날렵한, 면도칼보다 날카로워, 피라미드조차 잘라버릴. 극도로 섬세한, 전이에 이은 또다른 전이. 극도로 화려한, 최소한의 역치로, 최대한의 효과를 일으키는. 극도로 미미한, 그에 대한 방어책. 극도로 비참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의 최후. 그렇기에 감기는 예술이다. 2013. 4. 16.
(20071011)A Short Fiction #8. 내 나이는 서른 두살이다. 결혼할 남자는 찾지 못했고, 조그만 회사에서 홈페이지 관리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혼자서 살고 있는 전세방은 작지만, 생활하기에 편하다. 그래서 4년째 이 곳에서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이 나이가 되면 만날 친구가 없다. 가끔씩 내 자리를 배회하며 추근덕거리는 노총각들이 있을 뿐. 물론 싫어하는 표정을 짓지만,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걸 은연중에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긴,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가 알고있다고 착각했던 것은 '마르크스'뿐이니까. 그것도 1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이야기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했던 일이 적색분자들에게 섞여 몸을 붉게 만드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정말로, 그때는 '마르크스'가 전.. 2013. 4. 16.
(20071008)일각(一刻)에 휘갈겨쓴 러브레터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창 2악장은 쳐주지 않으셔도 되요. 그것까지 연주해주시면 심각할 정도로 당신을 좋아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도 제 자신를 제어할 수 없게 되버리니까요. 2013. 4. 16.
(20071004)네번째 낙서 '사랑도 병'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나는 지금 악성 질병에 걸려있다. 벌써 3주 째. 기침을 계속해서 목이 쉬고, 말을 하려하면 목소리가 갈라진다. 그와 연동해 가끔씩 산발적인 두통을 선사하고, 이겨보려 약을 먹으면 잠이온다. 잠에 들 수 없고, 머리가 아프고, 어디엔가 하소연하려하면 목이 아프다.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지만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매년 가을마다 조우하는 감기지만, 올해 가을은, 악성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양이다. 심각할 정도로 독한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결국 시간이 해결하리라 씁쓸히 웃는다. 그런 내가 쓸쓸해 보인다. 나무와 헤어져 사람들의 신발창에 짓밟혀 뭉개진 낙엽보다도 더. 2013. 4. 16.
(20070926)두번째 낙서 누가 그랬던가? '간절히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재회하게된다고' 난 자주 그런 역설적 상황에 처한다. 어제도 그랬다. 우연찮게. 순간적으로. 급작스럽게. 물론 낙뢰라도 쳐맞은양 쭈삣쭈삣하게 서 있는건 나 뿐. 머저리같은 나만 그렇다. 다른 사람들에게 헤어짐이란, 칼로 무우를 썰어버리는 것과 같으니까. 머저리같은 나에게 헤어짐은 이가 빠지고, 녹이 슬어버린 칼로 소의 힘줄을 자르는 것과 같다. 그냥 그러하다. 감상적일 뿐이다. 내가 못나서 그렇다. 정말로 다른사람들이 교활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내가 멍청해서 그렇다. 201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