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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226

(20070724)구례로 향하는 길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세 갈래 길 가운데 하나. 구례로 향하는 길.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구례로 향하는 행위는 운명을 거부하고 계연과 재회하겠다는 의미로, 주인공은 끝내는 구례로 향하는 길을 등지고 운명에 순응하며 하동을 택한다. 그래서 난 구례로 향했다. 운명을 거스르는 대가를 톡톡히 해 두고 싶어서. 과연 운명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어서. 처음 가 보는 구례라는 고장에서 난 섬뜩한 적막함을 느꼈다.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길을 쏘다니며 주위를 둘러봐도, 60평 가까이 되는 찜질방 안에서 한참을 두리번 거려도, 사람이 없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경력 6년 동안 이런 적은 없었다. 무서웠다. 아픔이 밀려왔다. 눈물이 날 정도로. 사실, 나란 놈은 사람을 .. 2013. 4. 16.
(20070720)청춘은 지나가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스물 셋. 이젠 '어느 기업 노조'처럼 마트에 주저앉아 떼를 쓰고 어리광을 부릴 수 없는 나이다. 장난 삼아 사랑을 시험할 수도 없는 나이이고, 집안 경조사 때 간편한 복장으로 참석할 수 없는 나이다. 세상은 시속 18,360km의 속도로 변모하고, 시대는 더 이상 우리의 발걸음을 기다리지 않는다. 23년동안 분명 만들어 놓은 건 있겠지만, 잣대를 냉엄하게 들이댄다면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 23살이라면 더 이상 전투경찰에게 돌을 던져서는 아니되고, 이성에게 장난삼아 사랑을 속삭여서는 아니되고, 자기 몸에 맞는 수트를 한벌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며, 마하 15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을 수 있는 두 다리를 만들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더 이상 '애들'이 아니니까. 하지만 '북극곰.. 2013. 4. 16.
(20070717)죽은 사람 더 빨리 죽이기 현대는 시간의 시대다. 사람들은 패스트 푸드를 입 속에 구겨넣으며, 약속 장소에 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야하며, '기다림'따위 잊고 산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아무 행동도 아니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행동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나 처럼 기차를 한번 타려고 8시간씩 대합실에 앉아있는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닌 사회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조차 기다리지 않는다. '화장'을 하러 화장터로 향하는 길은 전쟁터다. 띠를 두른 수십 대의 장의차가 이미 돌아가신 고인을 먼저 죽여보겠다고 추월에 가속을 거듭한다. 늦을 수록 기다려야하니까. 내 앞에 차 한대가 있을 때마다 1시간 30분을 더 기다려야하니까. 빛보다 약간 느린.. 2013. 4. 16.
(20070714)헤드폰이 내게 말했다 헤드폰이 내게 말한다. "너는 왜 지나간 음악을 듣는거지?" 내가 말한다. "그게 정론이거든" 헤드폰이 말한다. "물론 난 음향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수치를 계산해 그 것을 멜로디로 변형해 너에게 들려줄 의무가 있어. 하지만 편식은 금물이야." 내가 말한다. "헤드폰 주제에 참견하지 말라구. 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싶으니까." 헤드폰이 말한다. "물론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니야. 하지만 내 주인이 좀 더 다양한 음악을 접해봤으면 좋겠어." 내가 말한다. "이봐, 난 지구별에서 흘러나오는 거의 모든 음악을 들어봤어. 이건 거짓말이 아냐. 가까이 있는 일본음악에서 부터, 멀게는 남미음악까지. 이 정도면 충분히 다양하다고 생각되는데?" 헤드폰이 말한다. "내가 말 하는 것은 '시제'야. 넌 항상 과거의 음악을.. 2013. 4. 16.
(20070713)아직도 모르겠어? 아직도 모르겠어? 백남준씨도 말한 적이 있는데.. 예술의 절반은 '사기'라고. 그것도 고등사기.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머지 절반을 말해주지 않고 떠나가버렸지. 이 세상에 '예술'이란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온갖 것들 중. 절반은 사기이고. 절반은 그럴싸한 거짓말이야. 중요한 건 대중 앞에서 얼마나 뻔뻔하게 사기를 치고, 거짓말을 하는냐에 있다는 거지. 내가 한 말을 믿지 못하는 당신은 예술을 할 자격이 없어. 시대가 끊임없이 양산해내는 대중문화에 심취한 채 썩어들어갈 뿐이지. 2013. 4. 16.
(20070709)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이건 오늘 오후 2시 21분 경 "햄 치즈 앤 에그 샌드위치"를 만들던 중 냉장고에서 '모과향 머스타드 소스'란 희한한 소스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험적으로 뿌려보고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난 후에 나름대로 멋진 선택이었다고 회상하며 문득 느낀 생각이다. 물론 내가 개발한 '햄 치즈 앤 에그 샌드위치'와는 상관관계가 조금밖에 없다. 나를 미치게 하는 몇 가지. 첫 번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 두 번째. 햄 치즈 앤 에그 샌드위치 세 번째. '밀러'를 6병 쯤 마신 후 비어 체이셔로 마시는 블랙 러시안. 네 번째. 세번째 상황과 함께 하는 땅콩. 다섯 번째. 필립 모리스 여섯 번째. 제 멋대로 떠나는 여행 일곱 번째. 천둥보다도 더 큰 소리로 울려퍼지는 록 뮤직(Fucking같은 단어.. 201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