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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226

(20070404)A Shoft Fiction #4. "1년 전인가? 만취한 상태로 횡단보도를 걷다가 차에 치인적이 있거든? 다행이도 마티즈..인가? 그 쬐그만 차 있잖아. 그게 천천히 다가오다 나를 툭 쳤는데 나는 붕 날아가다 무릎부터 떨어져 무릎이 깨졌어. 심했던건 아니고 이 정도 찢어졌었어. 무지무지 아파서 무릎을 껴안고 잠시 있었는데 피가 흐르잖아? 흰색 치마에 피가 묻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혀로 피를 핥아버렸는데, 우습게도, 피에서 술맛이 났어. 나 그때 무지 울었잖아. 이게 뭐냐고. 정말 죽고 싶다고. 그래, 정말 죽고싶다는 생각은 그때 했었어. 피를 핥았는데 술맛이 나길래.. 내가 술을 마시는 기계처럼 느껴져서..." 2013. 4. 16.
(20070306)A Model "TV나 잡지에 찍혀 나오는 모델을 보고 '감탄'하는 남자는 있을지 몰라도, '사랑'에 빠지는 남자는 없다." 갖가지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요란한 화장으로 티를 감추고, 빛을 이용한 결상(結像)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객체에 불과할 뿐. 세상이 사과처럼 쪼개져도 주체가 될 순 없다. 백색의 네글리제를 입은 청초한 소녀건, 누더기로 가까이 몸을 가린 흑색의 난민이건, 내가 주체로서 행동할 '어떠한' 가능성은 같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모델. 이상. 2013. 4. 16.
(20070223)寂寥 내 눈엔 분명 빛(光)이 보이는데 적당히 밝은 빛이 보이는데 남들은 아니라 한다. 보이지 않는다 한다. 그러니, 내게도 보이지 않을거라 한다. 내가 보는 것은 빛이 아니라 한다. 보인다고 우겨도 믿지 아니한다. 그들의 믿지 않음을 믿을 수 없다. 내 눈은 개눈깔도, 의안(儀眼)도 아닌데, 어쩌면 그들의 의심은 본질적인 것인지 모른다. 거기에서, 난 두려워진다. 어떠한 류의 고독감이나 적요감에 빠져버린 듯.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적요의 늪으로 침강한다. 중력에 순응한 채 끝도 없이 침강한다. 하지만 적요의 늪에서도 빛이 보임을 누설하지 않으련다. 그게 사실임을 부정(不正)하련다. 적요의 늪 안에서 숨죽인 채 고요히 낙하(落下)하련다. 2013. 4. 16.
(20070220)수면제 과다 복용 요즘들어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몇 가지 느낀 사실들과, 그 사실에 비춘 현실의 내 모습과 과거의 모습을 비교하고, 아주 조금의 틈 조차 없는 지금의 내 입지로 담배연기처럼 흩뿌려버려 말라버린 이상이 나를 비웃듯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수면제를 과다복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그 본연의 임무에 맞춰 내 머리를 서서히 마비시키고 각성의 영역 밖으로 벗어나버리는 내 모습이 아주 조금은 개탄스럽지만 아직까지 세상과 완벽한 단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그 모습에 아주 조금의 애증을 느끼고,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 입가에 꼭 그 정도의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2013. 4. 16.
(20070213)결말 (結末) 여자가 울부짖는다. 요란한 눈화장이 방울방울로 변해 눈 밑을 검게 물들이고, 한 줄기의 검은 눈물이 코를 휘감고 입 주위에 집결한다. 이미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왼손으로 부여잡고, 몸을 둥글게 구부리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달팽이가 생각날 지경이다. 껍질이 존재하는 달팽이. 그녀의 울부짖음에는 약간의 해학과, 허구, 그리고 부정(不正)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불일정한 흐느낌이며, 흐르지 않는 콧물, 입 주위에 표면화 되는 침의 분비가 그를 뒷받침하니까. 울부짖음에도 단계가 있다. 발단, 전개,위기, 절정, 결말의 5단계가. 지금은 '절정'단계임에 틀림 없다. 어쩌면 넋이 나가버린건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소란스럽기 그지없으니. 하지만 이내 결말에 이르겠지. 머리 카락을 부여잡고 있는 왼.. 2013. 4. 16.
(20061203)A Short Fiction #3. 작정 기차를 타고 세상의 끝까지 갔다. 그 곳에 도착해서 동서남북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으려니 비참한 기분이 든다. 배도 조금 고팠으며, 잠이 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치 내 두 발은 내가 원하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는 양 의기양양하게 행진하기 시작한다. '나'는 내 발에 이끌려 그 곳으로 간다. 터벅 터벅.. 광활한 바다였다. 이미 밤은 깊어가고 있었지만 이 곳이 바다라는 사실은 알 수 가 있는 것이다. 색깔이야 어떻든, 백사가 있고 파도소리가 들리니까, 이 곳은 바다인 것이다. 허여멀건 백사에 쭈그리고 앉아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저 곳에 뛰어들면 스텔라 바다소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어쩔 수 없나보다. 생의 끄트머리에서도 공상으로 시간을 죽인다. .어느 덧 시간이 .. 201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