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226 (130211)graveyard spiral 비행 나는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날고 있다. 희미하게나마 월광이 비춰줬으면 좋았으련만, 날씨가 흐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화려한 스카이라인도, 밤 하늘의 별도, 저 멀리 파도를 견디고 있을 희미한 등대 불빛도, 모두 어둠에 가려 찾을 수 없었다. 믿을 것은 경비행기의 조종관, 그리고 나의 직감 밖에 없었다. 첫 번째 의문 나는 어떠한 이유로 날고 있는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미 이륙한 상태의 경비행기와 조종관을 부둥켜 앉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내 의지로 날아오르지 않았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날고 있었고, 내부의 유리창은 온통 암막 커튼에라도 가린 양 어떠한 빛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난 혼자였다. 난기류 일순 나와 경비행기가 동시에 덜컹거리기.. 2013. 2. 11. (130101) 2012년의 마지막 달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회사를 뛰쳐나온 난 세렝게티를 떠도는 얼룩말과 같았다. '여기까지는 좋다.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선이 임계점이다. 더 이상 내게 강요한다면 난 당신들 곁을 떠나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다.' 그와 동시에 얼룩말은 외로움을 탄다. 오랫만에 돌아갔던 뜨거운 남국의 섬에서 겪었던 기분은, 수년 전 지리산자락 이름 모를 찜질방에서 겪었던 극한의 고독과 동류의 것이었다. 내 옆을 춤추며 지나가는 사람에게서도, 어쩌면 내 곁에 누워 나를 바라보고 있던 존재에게서도, 내게 돈을 받고 음식을 내어주는 이름 모를 낯설음에서도 난 고독을 느꼈다. 역설이다. 내게 있어 방랑과 고독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띄처럼 무한히 얽혀있었다. 무수히 많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무수히 많은 존재와 .. 2013. 1. 1. (121217) 낭만적 밥벌이 '귀국' 한국이다. 아주 조금 걱정했던 Re-entry Culture Shock도,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며 두리번 거리는 일 따윈 없었다. 내가 살았던 한국이다. 외국에서 몇 년간 떠돌다 왔다 하더라도 온 몸의 세포가 이 나라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지갑에는 이 곳에서 쓸 수 없는 지폐가 무작위로 꽂혀있지만, 난 능숙하게 세종대왕이 인쇄된 지폐를 꺼내 계산을 했다. 기특했다. '사장님' 종업원을 부를 때 Hello라고 하지도 않았고, 服务员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이미 난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곧 사장님이 된다. 그 전까지 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카페를 찾던 중 종로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거리다. 종로 2가 어딘쯤, 거대 자본에 의한, 중고서점이.. 2012. 12. 17. (121011) D-51 어제는 확답을 받았다. "그래서 아직 생각 안바뀌었니?" 그렇다고 대답했다.그리고 사내의 추천 채용 공고에는 내 직무를 담당하는 경력직원을 뽑는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이제 두달 남짓 남은 회사 생활이다. 분명 그 때문은 아닐텐데, 오늘은 하루 종일 힘이 빠져있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사업 계획 뿐이다. "Do what thou wilt"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준비, 시작. 2012. 10. 11. (120919) 사직서와 라이트 블루 사직서를 썼다. 제출하진 않았다. 멀지 않은 미래, 난 이 종이를 제출할 예정이며 그보다 멀지 않은 미래, 이 회사는 나를 놓아줄 것이다. 빠르면 올 겨울 난 백수가 된다. 이유를 쓰라고 한다면 세계일주다. 반드시 세계일주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난 이유를 그 것으로 꼽는다. 이종의 메타포인 셈이다. 내가 세계일주를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유는 세계일주여야 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운전 기사가 있고, 강이 보이는 12층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나를 과장이라고 부르며 지시를 기다리는 직원도 있다. 세후 연봉이 5천 만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숙식에 교통, 통신비가 지원되어 돈이 나갈 일도 별로 없다. 주재원들은 모두 내게 친절하며, 현지인들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 아버지 뻘의 임원들과도.. 2012. 9. 26. (120627) 지속 가능한 노름질 모처럼 연휴다. 이틀간 이 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한국보다 이 곳이 좋은 점 중 하나는, 한국에선 쉽게 갈 수 없는 곳에도 슬리퍼를 끌며 쉬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홍콩이나 마카오. 홍콩이나 마카오. 홍콩이나 마카오.. 홍콩이나 마카오... 마카오로 결정했다. 결정은 빠를 수록 좋고, 생각은 없을 수록 좋다. 내 머리의 깊은 곳에서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도시, 마카오였다.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세계 각국에서 노름질과 분탕질을 행하러 온 사람들이 뿌려대는 돈으로 움직이는 도시. 그들이 슬롯 머신의 레버를 한번 더 당길 때마다 소비는 가속화되고, 그 만큼 꿈과 희망은 부풀어 오른다. 꿈과 희망의 팽창은 신자유자본주의의 밀도를 견고하게 만든다. 그들이 카드.. 2012. 9. 26. 이전 1 ··· 33 34 35 36 37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