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斷想)226

(20110517)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틀 동안 한바탕 난지 매립장을 뛰어 다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른쪽 손목에 5cm정도의 얇고 긴 상처가 나 있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묘했다. 힘이 부쳤다. 좀 더 젊은 시절의 나는 2박 3일 동안 개처럼 슬램을 해도 끄떡없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월요일 저녁까지 끄떡없던 내 신체가 무너지는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침대에 몸을 뉘인지 한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오한이 밀어닥치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웠다. 뭐라도 먹어야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존 메이너스 케인즈가 말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 밖에 케인즈가 위대한 점은 삶의 종지부를 찍은 뒤 반 세기가 지난 현재도 그의 주장엔 조금의 헛점.. 2013. 4. 16.
(20110510)피카츄가 과연 포켓몬스터의 주인공인가? 하인리히 칼 맑스의 저서 자본론 제 3권에 따르면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는 인간들은 비생산적 노동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난 생산적 노동을 하고 있는 훌륭한 인간이라 말할 수 있다.(토대-상부 구조로 날 분석해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사실 난 생산자의 탈을 뒤집어 쓴 자본가에 불과한데, 나의 개별적 자본을 축적해 가는 일련의 과정을 그는 이렇게 비판할 지도 모른다. "이 작태는 봉건사회 영주가 농노의 잉여노동에서 파생된 초과이윤(surplus-profit)을 약탈하는 방식보다 더 큰 문제를 갖는다. 권문경이란 농노도 아닌 영주도 아닌 제 3의 존재가 등장함으로 인해 인격적 종속관계는 계층을 갖게되고, 상품교환경제는 더더욱 발달하여 그 성장을 막을 수 없다. 결국 그 계층은 종과 횡.. 2013. 4. 16.
(20110411)월하독주 기력을 차려보니 어느 덧 반 년 누군가 호령하는 구호에 맞춰 기계음을 내며 허청댄다. 비틀대지 아니함은 세강속말이요 넘실대지 아니함은 속거천리로소 아는 넘어질 새라 견부를 곧추세운다. 척추를 바르게 펴고 세를 준다. 지단의 완력은 일위의 무력이었다. 몇 회나 타루하고 소태한다. 작경하는 내게 세상이 작교한다. 휘엉청 푸른 달이 홀현홀몰하여 별은 온데간데 없다. 인간이 시계에 나타난다. 겁의 시간 질주해야 외경을 횡단한다. 넓디 넓은 공간, 시간은 무의미했다. 세차게 떨쳐내고 오렌지 블러썸을 위에서 바라보니, 이 것이 달디 단 술이요, 광관을 머금은 달이었다. 이백이 노래했던 월하독주를 되뇌이며 아는 신선이 된 것 마냥 즐거이 암루를 쏟아낸다. 2013. 4. 16.
(20110308)꽃샘추위와 몇 가지 단상 #1. 공부 당신이 공부하라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술을 좋아하고 여성 편력이 있으며, 역설적 순결을 지키고 있는 당신이 공부하라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단 말이다. 인생 2막을 활짝 열어젖힌 채 술을 좋아하고 여성 편력이 있으며, 역설적 순결을 지키고 있는 당신이 직장인이 된 내게 공부하라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이런 쌍팔년도 가감법을 이용한 작문이 나와 당신의 이야기엔 걸맞다. 내가 칵테일을 연구하며 몇 장의 사진, 레드홀스, 말보로 블루 그리고 워터프론트 호텔과 공존했던 뜨거운 남국의 섬보다 조금 더 뜨거운 곳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을 당신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해본다. #2. 박칼린 박칼린은 과대포장 되어있다. 어쩌면 이 시대가 포장해준 모습을 선물로 받은 채 의기양양할 지도 모른다. #3. 공룡고.. 2013. 4. 16.
(20110226)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며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몸을 뉘었다. 왼손 새끼 손가락부터 오른쪽 새끼 손가락까지 차례대로 굽혀본다. 특별히 행하는 훈련을 배제한다면 지구에 현존하는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들은 그 손가락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냈다. 태초에는 이름 모를 장비를 타악기로 변모 시켰으며, 점차적으로 멜로디를 만들 수 있는 악기로 변신시켰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한 채 감탄하며 마일즈 데이비스의 So What을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만물의 영장이신 인간들에겐 그다지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워낙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생명체이니 말이다. 음악은 스테레오파닉스로 바뀌었고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사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는.. 2013. 4. 16.
(20110129)당신과 내 사랑을 멸하는 시간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만난 이래로 지금까지 일기를 써왔다고 한다. 그런 지리멸렬한 이야기는 듣지 않는게 상책이지만, 그 때는 들어야만 했다. 사람이 숨을 쉬며 살아가다보면, 주먹만한 소행성이 이웃집에 수직 낙하하는 마음 아픈 일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무슨 사랑노트 같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유치한 컨셉트였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적었노라고 음성을 높였다. 그 순간 효율적인 내 두뇌에선 '정말 대단하다' '애틋하다' '진정 사랑했구나'따위의 감상적 이미지가 떠오른 게 아닌, '과연 당신이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기를 적었나요?' 라는 괘씸한 생각이었다. 풀이 죽은 채 계속 이야기 했다. 나 역시 풀이 죽은 채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소주를 마신 후 더더욱 죄가 없는 소줏잔을 탁자에 내리쳤다. .. 201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