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斷想)226

(20050331)여름날 헤어진 애인을 닮은 섬 이게 어느 '시'의 구절이었는지.. 아니면 여행 소개 잡지의 헤드라인이었는지, 또는 아마추어 여행작가가 여행기에 적어버린 제목 또는 부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이다. '여름날 헤어진 애인을 닮은 섬.. 선유도' 운 좋게도 우리는 불 필요한 것들이 없는 선유도를 여행할 수 있었다. 휴일이 끼지않은 3월의 평일날에 그런 곳으로 여행갈 사람은 당연히 없는지도 모르겠다. 자전거를 타고 이틀간 일주를 하는 동안 섬 주민을 제외하고는 단 한명의 관광객도 보지 못했으니.. 가장 번화한 선유도, 청아한 이름의 무녀도, 멋들어진 이름의 장자도, 굳센 이미지를 갖고 있는 대장도. 총 4개의 섬을 여행했다.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며 말이다. 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기.. 2013. 4. 16.
(20050318)고백과 링게이지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반지'로 고백을 하는 장면이 많다. 내가 본 그런 장면 중 99%는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을 하며 반지를 끼워줬다. 그 중 여성의 87%가량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거나 미소를 짓고, 12%가량은 반지를 집어 던져버리거나 다시 돌려주는 행위를 했다. 12%의 여성을 상대하는 남성의 97%는 어색한 표정, 또는 단호한 표정으로 뻔한 대사를 남발한다. 그 대사를 남발한 후에 78%가량의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뻔한 대사로 응수해댄다. 그리고 78%의 여성이 내뱉는 말에 65%의 남성이 포옹을 시도한다. 65%의 남성이 시도하는 포옹에 응하는 여성은 86%이다. 65%의 남성과 12%의 여성은 뻔한 스토리를 대변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87%이든 12%이든 반지를 끼워줄 때는 치수가 틀.. 2013. 4. 16.
(20050316)티벳 기어서 히말라야를 오르고싶다. 팔꿈치는 돌에 터져 피가 흐르고, 무릎은 바닥에 짓이겨 전부 찢어지더라도.. 가슴팍 땀샘에는 땀 대신 피가 솟구쳐 오르고 손바닥에는 피와 모래가 엉켜 굳은살이 되어버리더라도. 머리카락은 회색으로 변하고 눈에서는 눈물, 코에서는 콧물, 입에서는 침까지 흘리며 기어가더라도.. 한번쯤은 기어서 히말라야를 오르고싶다. 기어서 히말라야의 낮은 봉오리에 닿는다면 모든게 해결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모든것을 용서해 줄 것 같은 그 곳. 티벳이다. 2013. 4. 16.
(20050309)사서 그림동화와 한없이투명에가까운블루, 절망이란 여자와의 섹스 이 3권의 책을 대출 할 때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서를 만났다. 맘 껏 비웃어주겠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고 스탬프가 찍혀있는 '한없이투명에가까운블루' 이름부터가 외설적인 '절망이란 여자와의 섹스' 게다가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림동화' 장담할 수 있다.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서는 이 책들을 읽어보지 않은 사서이다. 2013. 4. 16.
(20050302)#2. Story - 선생님 죄송합니다 내가 그 분과 만난 시기는 중학교 2학년때다. 그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겠다. 하지만 직업은 꽁트를 부전공으로 하는 시인이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여자분이었다는 것 밖에는.. 그 당시는 공립 중학교에 다니던 때라 특별활동시간에는 무조건 교과목 이외의 수업을 받아야했다. 솔직히 말해 제일 만만하게 보이던 것이 '문예창작반'이었다. 그래서 들어갔다. 그리고 버르장머리 없게도 선생님께서 아무생각 없이 들어온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을때 손을 번쩍 들어버렸다. 웃으시며 수업을 차차 받게되면 문예창작이 좋아질거라고 말씀하시던 그 분. 일주일에 한 시간씩 문예창작의 기초를 배우고 글을 썼다. 그 분의 소개로 모 잡지에 내 단편소설이 실린적도 있었고 원고료라는 것도 난생 처음으로 받았다. 많은 액수가 아니.. 2013. 4. 16.
(20050302)#2. Story Epilogue 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뷰파인더 틈새로 눈물이 흘러들어가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어깨가 들썩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반셔터를 잡을 수도 없다. 수 십개의 샨드리아가 뿜어내는 밝은 광량만 믿고 트라이포트를 가져가지 않은게 실수였다. 스튜디오에 흔해빠진 루페조차 없었다.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멋진 사진가가 되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수전증 따위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춘삼씨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흔들린 사진을 얻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진 초보자가 흔들린 사진을 찍는 것과, 전문 사진가가 흔들린 사진을 찍는 것의 차이. 한 달동안 시간이 나서 이 소설을 쓴다면 단 한명의 악인도 만들 생각이 없다. 입구가 있는 소.. 2013. 4. 16.